자급자족 유기농 라이프의 시작

Episode 4. 자연의 리듬을 따르는 삶

by 송은정



몬그랜지에 오기 전 나는 1 년여 동안 채식을 했다. 사람들 앞에서 나는 굳이 ‘채식’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았다. 어떤 이유로든 채식주의자라는 고백은 유난스러운 사람 취급을 받기에 충분했다. 고기를 먹어야 힘을 쓴다는 둥, 채식은 비싼 취미라는 둥, 주변 사람들에게 필요 이상의 조언과 염려를 듣는 것 또한 고역이었다. 마치 유행하는 가방을 따라 드는 것처럼 채식을 트렌드의 일종으로 치부하며 비아냥대는 이도 더러 있었다.


채식은 확실히 돈이 드는 행위였다. 나는 회사 근처의 생활협동조합에 가입했고, 장을 볼 때마다 유기농과 무농약, 일반 채소 사이에서 갈등하며 가격을 따졌다. 벌이에 비해 식비가 많이 드는 것 같아 마음이 불편했던 적도 있다. 하지만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몸으로 절감한 뒤로 나는 생각을 고쳐먹었다.


서서히 달라지는 몸의 변화는 놀라웠다.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채식을 시작하자 몸이 구름처럼 가벼워졌다. 사무실 책상에 앉아 병든 닭처럼 졸던 아침도 사라졌다. 채식을 겸해 인스턴트 식품을 끊고 야식을 먹지 않은 것이 한몫했다. 변화를 자각하고 나니 제대로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자진해서 주말 산행에 나섰고 평일에는 꾸준히 운동했다.


채식은 놀라운 연쇄작용을 일으켰다. 시작은 그저 ‘고기를 먹지 않는 것’이 목표였지만 점차 건강한 식생활에 초점을 두게 됐다. 더불어 내가 먹는 음식의 생산, 유통 방식에 관심을 가지면서 동물 학대에 대해서도 자연히 깨달았다. 식습관의 변화가 나의 사고 영역 또한 한 뼘 더 넓혀주었다.


그런 와중에 만난 캠프힐의 자급자족 유기농 라이프는 나를 매혹하기에 충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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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선 식빵을 직접 굽고, 샐러드에 들어갈 양상추와 샐러리를 재배하며, 소와 양들을 초원에 풀어놓고 키운다. 베이커리에서 사용하는 모든 재료에는 오가닉 마크가 붙어 있고, 바이오다이내믹Biodynamic이라는 유기농법을 적용해 화학비료를 쓰지 않는 방식으로 작물을 재배한다. 수확한 감자와 오이, 파, 토마토, 각종 허브가 담긴 채소 상자는 손수레에 실려 집집마다 주기적으로 배달된다. 탱글한 노른자를 품은 계란 역시 닭들의 보금자리에서 매번 염치없이 훔쳐온 것이다.


마을에서 나는 식자재 중 내가 가장 좋아한 것은 목장에서 짠 우유였다. 살균 소독을 마친 신선한 우유는 만화 <플란다스의 개>의 한 장면처럼 주둥이가 좁은 양철통이나 커다란 저그에 담긴 채 부엌으로 도착했다. 사랑스럽기 이를 데없는 풍경이었다. 새벽마다 파머들이 손수 짠 우유는 공장 제품보다 훨씬 풍미가 진하고 고소했다. 누런 지방 띠를 두른 오래된 우유는 약한 불로 미지근하게 끓이고 하루를 묵히면 홈메이드 요거트로 재탄생했다.


먹는 것을 스스로 일구는 삶은 멋졌다.


사계절 내내 지속되는 고단한 노동을 단순히 ‘멋짐’으로 미화하는 것이 적절할 리 없지만 달리 대체할 말을 찾지 못했다. 진흙으로 더럽혀진 웰리부츠를 신은 채 사방으로 땀 냄새를 풍기며 귀가하는 가드너들과 마주칠 때마다 나는 그들의 활기에 속으로 매번 감탄했다. “내일쯤이면 양들이 새끼를 낳을 거야. 새벽에는 보초를 서야 할것 같아”라고 말하며 의연하게 밤샐 채비를 하는 파머들은 또 얼마나 듬직한지. 몸과 마음이 함께 움직이는 정직한 노동을 눈앞에서 목격할 때마다 절로 겸허해졌다.


적어도 그들은 자신들이 해야 할 일을 정확히 알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지금 이 시기에 땅이 필요로 하는 것과 사과의 수확 시기를 놓치지 않았다. 실제로도 이들은 천체의 움직임과 계절의 변화를 섬세하게 포착한 특별한 달력을 활용했다. 우수, 청명, 입춘 등 24절기에 맞춰 벼농사를 짓는 것과 닮았다. 도시의 속도에 떠밀려 엉거주춤한 자세로 매일을 해치우듯 보내던 나의 지난 서울 생활에 비하면, 먹는 것을 스스로 일구는 삶은 자연의 리듬에 맞춰 춤을 추듯 가볍고 경쾌했다.






자주는 아니지만 내게도 그 리듬을 따라 몸을 움직일 기회가 몇 번 있었다. 감자와 블랙커런츠를 수확하는 시기였다. 품앗이를 하듯 그날은 모든 주민들이 워크숍을 쉬고 오로지 작물 수확에 매달렸다. 외할머니의 밭에서 엄마와 함께 단단히 여문 고추를 따거나 주말 농장에서 고구마 캐기를 ‘체험’해 본 것을 제외하면 나는 식물보다 낮은 자세로 허리를 굽혀본 일이 거의 없었다. 좀처럼 쓸 일 없는 근육을 사용한 바람에 온몸은 천근만근이었지만, 그날의 수고는 달콤한 블랙커런츠 주스와 잼으로 변신해 1년 내도록내 혀를 즐겁게 해줄 예정이었다.


어쩌면 몬그랜지의 일상에 익숙해진다는 건 자연의 리듬을 하나씩 체득하는 과정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