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인사 방식

Episode 3. 세상에는 사람들의 수만큼 다양한 인사법이 존재한다

by 송은정




몬그랜지는 마치 하나의 완결된 세계를 축소해 놓은 듯했다.


마을 안에는 빵을 굽는 베이커리, 베틀로 러그와 앞치마, 가방을 짜는 위버리, 과일 주스와 잼 등 저장 식품을 만드는 푸드프로세싱, 작물을 재배하는 드넓은 밭, 소와 돼지 등 가축을 키우는 목장이 있다. 80명이 넘는 마을 구성원은 워크숍이라 불리는 저곳으로 매일 출근해서 노동을 한다. 각종 행사와 파티, 콘서트가 열리는 강당, 미사가 열리는 성당, 테라피스트와 전문 간호사가 상주하는 의료 시설인 헬리오스, 생필품을 구입할 수 있는 작은 상점도 빠짐없이 갖춰져 있다. 일상생활에 필요한 거의 모든 것들이 마을 안에서 해결되는 셈이다.


또 다른 한국인 코워커 해영이 노련한 가이드처럼 나를 마을 구석구석으로 안내했다. 동년배인 해영이 3년차 코워커라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적잖이 놀랐다. 대학생이었던 그녀는 졸업을 위해 잠시 귀국했다가 다시 이곳에 돌아왔다고 한다. 캠프힐의 무엇이 그녀를 단단히 붙잡았던 것일까. 듣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지만 우선은 마을의 규모를 파악하는 데 급급했다. 혼자였다면 길을 잃었을 게 분명할 정도로 마을은 넓고 까마득했다. 비록 일차선이긴 하지만 차가 다니는 도로가 있고, 점점이 흩어진 집과 집 사이에는 들판과 나지막한 언덕, 사과나무 밭, 오솔길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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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삼거리 앞에선 잠시 걸음을 멈춰야 했다. 어디선가 느닷없이 등장한 소 떼가 길을 막은 것이다. 형광 주황색 작업복을 걸친 파머들이 방목해 두었던 소들을 축사로 돌려보내는 중이었다. 빠르게 달리는 오토바이나 횡단보도의 정지 신호가 아닌, 소 행렬에 몸을 피하는 눈앞의 상황에 웃음이 배시시 흘러나왔다. 긴장감으로 똘똘 뭉쳐 있던 마음이 시골의 느린 풍경 앞에서 여지없이 녹아내렸다. 해영이 그랬듯 어쩌면 예정보다 더 오래 이곳에 머무르게 될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언뜻 스쳤다.


마침 워크숍을 여는 시간이라 발길이 닿는 몇 곳을 찾아가 보기로 했다. 사진속에서만 존재했던 인물들을 직접 대면할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첫 방문은 우드 워크숍. 목재를 사용해 마을에 필요한 가구와 기구 등을 만들거나 아트워크를 하는 곳이다. 분진이 폴폴 날리는 작업장은 날카롭고 육중한 기계들로 채워져있었다.


“어제 한국에서 새로운 코워커가 왔어.”


해영의 소개에 조용히 티타임 중이던 워크숍 멤버들의 시선이 내 쪽으로 쏟아졌다.


“반가워, 내이름은 송은정이야. 그냥 쏭이라고 부르면 돼. 그게 부르기쉽거든.”


자동응답기의 안내 메시지처럼 나는 망설임 없이 자기소개를 시작했다. 성에서 따온 ‘쏭’은 친구들 사이에서 불리던 나의 오랜 별명이었다.


가드너들이 쉬고 있는 밭 한귀퉁이와 소똥 냄새가 은은하게 퍼지는 축사 앞에서도 수줍은 소개는 계속됐다. 그중 어떤 이들은 오히려 내가 먼저 한발 뒤로 물러설 만큼 살가웠다. 심드렁한 표정의 대꾸만큼이나 선뜻 가슴을 내주며 어깨를 감싸 안는 다정한 인사가 나는 아직 어색했다. 세상에는사람들의 수만큼 다양한 인사법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렇게 한바탕 마을 투어가 끝나자마자 나는 기절하듯 침대에 뻗고 말았다. 누적되어 있던 피로가 새 떼처럼 몰려와 어깨 위에 걸터앉았다.





얼굴을 베개 밑에 파묻자 조금 전 만난 얼굴들이 두서없이 떠올랐다. 베레모를 쓴 하관이 긴 남자의 말을 단번에 알아듣지 못해 몇 번이나 되물은 게 계속 마음에 걸렸다. 정확히는 그의 영어가 아닌 이야기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었지만. 그의 문장 속에는 내가 짐작할 수 없는 어떤 상황과 등장인물이 담겨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기엔 우리가 공유한 시간이 턱없이 짧았다. 자전거를 멈춰 세우고 환영 인사를 건네던 할아버지의 기운찬 목소리도 여전히 귓가에 남았다. 덥수룩한 수염을 가진 그의 이름은 존이었던가.


불과 몇 시간 사이에 주고받은 수많은 인사들이 내 마음속에 저마다의 흔적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