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isode 1. 우리는 각자 인생의 다른 시간표를 가지고 살아간다
직장인이라면 누구나 가질 법한 일상적인 불만들이 겹겹이 쌓이면서 내게도 퇴사와 이직을 고민하는 시기가 찾아왔다. 회사는 인문역사서를 만드는 작은 출판사였고 나는 그곳의 유일한 직원이었다. 편집이라는직무는 만족스러웠다. 월급은 턱없이 적었지만 책을 만든다는 자부심이 물질적인 공허함을 채워주었다. 물론 그 순진한 마음은 반년을 채 넘기지 못했다.
이직 준비는 쉽지 않았다. 출퇴근길 지하철과 회사의 화장실 양변기에 앉아 틈틈이 구직 사이트를 훑어보았다. 적당한 요건을 지닌 출판사는 좀처럼 눈에 띄지 않았다. 지금보다 조금 더 높은 연봉이나 휴가를 자유롭게 쓸 수 있는 분위기를 바라는 것마저 욕심인 듯했다. 평균치의 삶을 살아보겠다는 마음은 마치 일확천금을 꿈꾸는 것만큼이나 헛되게 느껴졌다.
하루는 병원에 다녀오겠다고 거짓말을 한 뒤 반나절 동안 파주로 면접을 다녀왔다. 저녁 식사를 겸한 2차 심층 면접까지 치렀건만 끝내 합격하지 못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회사로 출근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못하는 무기력한 오늘이 매일 반복됐다.
사무실 한편에 마련된 식탁에 홀로 앉아 점심 도시락을 먹던 중 문득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왜 그렇게 이직을 하려고 안달인 걸까. 회사를 옮기고 나면 지금의 불평불만이 눈 녹듯 사라질까. 연봉이 조금 더 오르고, 휴가를 자유롭게 쓸 수 있게 된다면 삶이 만족스러워질까. 확신이 들지 않았다.
어쩌면 질문이 잘못된 건 아닐까. ‘어느 회사로 이직하고 싶으냐’가 아니라 ‘회사를 관두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를 물어야 했던 건 아닐까. 그동안 나는 ‘퇴사는 곧 이직’이라는 공식을 철저히 따르고있었다. A와 B, C 출판사를 놓고 저울질하는 것 외에 다른 선택지는 상상조차 해본적 없었던 것이다.
한때는 간절히 원했지만 내 것이 아니라 생각했던 어떤 꿈들이 떠올랐다. 파리에서 다큐멘터리 사진을 공부하고 싶은 나, 세계 일주를 떠나는 나. 까맣게 잊고 있던 과거의 내가 어느 정류장마다 남겨져 있었다. 적어도 나는 이직과 세계 일주와 파리를 동일선상에 놓고 고민할 순 없었을까. 여전히 그 꿈이 불가능한 일일지라도. 몇 개의 가능성을 더 추가해 보았다. 대학 졸업과 동시에 일을 시작한 나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선물하거나, 파리 대신 한국의 대학원에 입학할 수도 있다.
판도라의 상자가 열린 것처럼 상상의 나래는 끝없이 펼쳐졌다. 선택을 기다리는 수많은 가능성이 내 앞에 나타났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제자리를 맴돌던 이직 고민에 출구가 보이는 듯했다. 스물일곱 살.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좋은 나이라는 생각이 막연히 들었다. 스물아홉이라면 지금보다 더 몸을 사렸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결정은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주변의 생각은 조금 달랐다. 스물일곱 살은 시작이 아니라 현재의 자리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데 힘써야 할 나이라고 조언했다. 직장은 물론 애인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였다. 서른이 닥치기 전에 결혼과 출산을 준비할 필요가 있다는, ‘내가 해봐서 아는데’ 식의 우쭐함이 벼려 있는 충고였다. 듣는 내내 고개를 끄덕였지만 한편으론 마음이 석연치 않았다.
우리는 각자 다른 인생의 시간표를 가지고 살아간다. 삶이 유한하다는 이유로 누군가는 성취를 향해 부지런히 달리겠지만, 반대로 나는 천천히 이 삶을 음미하고 싶었다. 내 앞에 놓인 정류장에 하나씩 들르며 그곳에 무엇이 있는지 들여다보고 싶었다.
캠프힐Camphill을 처음 알게 된 건 어느 온라인 커뮤니티의 호주 관련 게시판이었다. 평소 탐탁지 않았던 웹사이트에서 내 앞길을 인도할 한 줄기 빛을 발견할 줄이야.
공식적인 문장을 빌리자면, 캠프힐은 인지학Anthroposophy의 창시자 루돌프 슈타이너의 철학을 기반으로 카를 쾨니히가 설립한 장애인 공동체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한데 어울려 사는 작은 마을을 떠올리면 된다. 이런 형태를 띤 수백여 개의 공동체가 영국과 아일랜드를 중심으로 세계 전역에 흩어져 있다. 그곳에서는 나와 같은 자원봉사자를 일컬어 코워커라고 부른다. 이들에게는 숙식과 용돈 개념인 포켓머니가 지급되기 때문에 생활비가 거의 들지 않는다. 혹독한 노동력에 대한 작은 보상일 뿐 마냥 공짜는 아닌셈이다.
고민의 시간은 길지 않았다. 공동체 생활에 대한 막연한 호기심, 유럽의 시골 생활에 대한 동경, 지친 심신을 정화해줄 것만 같은 유기농 식단,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 캠프힐로 가야 하는 매력적인 이유들이 나를 손짓했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지금과는 다른 삶이 저곳에 있을 것이라는 희미한 기대가 나를 사로잡았다. 무엇이 다르고, 무엇이 달라질지는 아무도 알 수 없었다. 혹은 모든 것이 여전할지도 모른다. 알 수 없는 일을 향해 몸을 던지는 그 긴장감이 마음에 들었다. 꽤 오랫동안 느끼지 못한 감정이었다.
비행기 티켓을 결제하고, 볼런티어 비자를 받기 위한 서류를 차곡차곡 준비해 나갔다. 동시에 필리핀 선생님과의 전화 영어강습도 시작했다. 매일 아침 11시 스카이프로 진행된 그녀와의 수업은 긴장감이 넘쳤다. 대화가 오가는 30분 동안 겨드랑이는 땀으로 흠뻑 젖었고, 통화가 끝나자마자 기진맥진해 침대에 드러누웠다. 아, 이런 허접한 상태로 가도 괜찮은 걸까. 자주 실의에 빠졌지만 스피킹 연습을 위해 따라 외우던 미드 속 주인공의 대사를 중얼거리며 마음을 다독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 역시 저 주인공처럼 사람들과 화기애애한 농담을 주고받고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