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은 아니지만 살 만한

Episode 2. 서른을 코앞에 둔 내가 정상궤도를 이탈할 수 있을까

by 송은정



벨파스트 공항으로 마중 나온 사람은 없었다.

수화물 무게 규정을 간신히 맞춘 대형 캐리어만이 허전한 내 옆자리를 지켜주었다.


늘 혼자 여행을 다녔고, 그 외로움마저 흔쾌히 받아들이던 나였지만 이번만큼은 마음 한구석이 못내 쓸쓸했다. 낯선 땅에서 일상을 살아내야 한다는 부담감이 뒤늦게 파도처럼 밀려왔다. 일상을 산다는 말만큼 다정하지만, 또 겁나는 게 있을까. 출근길 지옥철과 야근, 다달이 빠져나가는 카드 값과 게으른 자신과의 싸움이 일상의 맨얼굴이었다. 언제나 여행을 갈망했던 건 소란스러운 일상에서 잠시나마 나를 분리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몬그랜지의 하루는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웃음과 즐거움이 넘치길 바라지만 속단하긴 일렀다. 단 한 번도 경험해 본 적 없는 장애인과의 생활이 마냥 쉬울 리 없다. 아직 영어가 입에 익지 않은 것도 걱정이었다. 한국어를 사용하는사람들과도 수시로 감정이 상하고 마음이 비껴가기 일쑤인데, 어설픈 영어로 내 감정과 상황을 잘 전달할 수 있을까.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생각은 자꾸 부정적인 방향으로 흘러갔다.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티켓을 끊지 않았다는 현실이 어수선한 마음을 간신히 붙잡아 주었다.


벨파스트 공항 밖 하늘은 잿빛 구름으로 덮여 있었다. 달갑지않은 첫인상이다. 머뭇거리던 눈치의 하늘은 내가 밖을 나서자마자 곧장 비를 쏟아붓기 시작했다. 우산이 있었지만 쓸 형편이 못 됐다. 한 손에는 무거운 캐리어가, 다른 한 손에는 뉴리로 가는 법이 적힌 종이가 쥐여 있었다. 이메일을 통해 먼저 인사를 나눈 카인은 나를 뉴리에서 픽업하겠다고 했다. 어색한 발음의 지명과 이름이 낯설면서도 동시에 묘한 흥분이 일었다. 문득 생애 첫 배낭여행을 떠나던 때가 떠올랐다. 긴장한 탓에 기내 화장실에서 토할 만큼 어리숙했던 내가 어느새 이만큼 자랐다.





몬그랜지에서 약 30킬로미터 떨어진 뉴리는 큰 버스 터미널이 있어 벨파스트와 더블린을 오갈 때 중간 거점이 되는 도시다. 주변 풍경을 살펴볼 여력도 없이 나는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아는 것이라곤 이름이 전부인 우리가 서로를 알아볼 수 있을지 노파심이 들었다.


“헤이!”


짧고 굵은 외침이 등 뒤에서 들려왔다. 고개를 돌리자 50대 후반의 인상 좋은 남자가 번쩍 든 손을 흔들며 내 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몇 발짝 뒤로는 동행인 듯한 남자가 고개를 숙인 채 따라 걸어왔다.


“네가 응종이지? 난 몬그랜지에서 온 조라고 해.”


어눌한 발음으로 ‘응종’을 찾는 그가 얼마나 반가웠던지 나는 과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바로 그 ‘응종’인지 어떻게 알았느냐고 물을 필요는 없었다. 아무리 둘러봐도 이 주변에 동양인이라고는 나 하나뿐이다. 운전을 하는 동안 조는 내게 조곤조곤 말을 붙였다. 마치 영어듣기 평가라도 하듯 나는 그의 목소리에 온 신경을 집중했지만, 곧 그럴 필요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과하다 싶을 만큼 느린 속도로 대화를 잇는 그의 배려 덕분이었다. 긴장이풀리면서 그제야 북아일랜드의 풍경이 하나둘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여전히 쓸쓸한 하늘, 이끼로 덮인 담장, 여왕의 티아라를 부조한 붉은 우체통, 한가롭게 풀을 뜯는 양 떼. 구글맵의 스트리트뷰로 보았던 황량한 벌판 대신 그 자리에는 푸른 초원이 드넓게 펼쳐져 있었다. 배턴터치를 하듯 초원의 끝은 아일랜드해와 자연스레 연결됐다. 엇비슷하게 이어지는 풍경 속을 30여 분쯤 달렸을까.


“바로 저기야.”


조가 가리킨 손가락 끝에는 빛바랜 표지판 하나가 서 있었다. 캠프힐로 들어가는 입구였다. 기어코 여기까지 오고야 말았다니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고군분투했던 지난 시간들이 머릿속을 빠르게 스쳤다. 불과 1년 전까지만 해도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들이 거짓말처럼 벌어지고 있었다. 누구의 강요도 아닌, 스스로의 결정으로 여기까지 온 것인데도 지금의 낯선 상황을 의연하게 받아들이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설렘과 두려움은 마치 한 몸처럼 움직였다.


심란해진 나를 눈치챈 것일까. 뒷자리로 슬며시 고개를 돌린 조가 의미심장한 말을 던졌다.


“여긴 파라다이스는 아니야. 하지만 살기에는 꽤 괜찮은 곳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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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써 숨겨온 속마음을 들킨 사람처럼 순간 당혹스러웠다. 그의 염려처럼 나는 이곳이 고단했던 서울살이를 위로해 줄 지상낙원이길 바랐는지도 모른다. 실패와 거절로 점철된 멍든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 그런 막연한 기대가 나를 낯선 땅으로 이끌었다. 하지만 만에 하나 그 환상이 산산조각 난다면? 뒤늦은 후회를 수습하며 남은 시간을 한탄해야 할까.


캠프힐 입구를 향해 부드럽게 좌회전하는 차 안에서 내가 취할 수 있는 조치란 달리 없었다. 예측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모든 판단을 1 년 뒤의 내게 맡기는것 뿐. 섣부른 짐작으로 미리 울상 지을 필요는 없었다. 이제 겨우 나는 첫발을 내디뎠을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