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서 아름다운 사람들

Episode 8. 지금처럼 엉터리여도 괜찮아

by 송은정


크리스토프의 여든 살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마을 사람들이 그의 집 앞으로 모였다. 손마다 그에게 건넬 장미꽃이 한 송이씩 들려 있었다. 주인공 크리스토프가 모습을 보이자 여기저기서 환호성이 쏟아졌다. 몬그랜지의 설립자인 그를 향해 누구 하나 빠짐없이 존경의 박수를 보냈다.


1900년대 중반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는 여전히) 장애인은 숨겨진 존재였다. 이들의 삶의 반경은 집과 자신의 정원 주변, 혹은 병실에 한정되어 있었다. 방 한 칸 크기에 불과한 이들의 세계가 보다 넓어지길 꿈꾸며 시작된 것이 바로 캠프힐이다.


유난히 키가 작은 사람과 유난히 키가 큰 사람, 혼자 있을 때 더욱 편안한 사람, 말이 없는 사람, 나이를 먹을수록 어린아이처럼 천진한 사람, 영원히 나이 들지 않는 사람. 서로의 다름을 기꺼이 끌어안은 사람들이 캠프힐로 모여들었다.


크리스토프를 처음 만난 건 스토어에서였다. 머리카락이 하얗게 샌 키 작은 노인이 안으로 들어서자 스토어의 모든 사람들이 하던 일을 멈추고 반갑게 그를 맞았다. 영문을 모르던 나는 그가 몬그랜지를 세운 장본인이라는 소개를 듣고서 뒤늦게 놀라 그만 말까지 더듬고 말았다. 풍문처럼 들어온 역사 속 인물을 눈앞에서 목격한 느낌이랄까. 새로 온 코워커인 내게 다정히 인사를 건네던 크리스토프는 보통의 소탈한 할아버지와 다름없었다.


그를 만날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았다. 건강이 좋지 않은 그는 대체로 집에 머물러 있었고, 아주 가끔 아내인 안나마리와 함께 스토어에 들러 필요한 물건을 사 갔다. 하루는 니콜과 함께 크리스토프의 집으로 물건을 배달할 기회가 있었다. 멀리서 지켜만보던 그의 사적인 공간에 발을 디딘다는 사실에 가슴이 설레었다. 실내는 놀랄 만큼 빛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날의 화사한 날씨 탓이었는지 아니면 그가 뿜어내는 아우라 때문이었는지는 여전히 알수 없다.





라디에이터가 고장 난 바람에 저녁이 되자 집 전체가 냉동실처럼 꽝꽝 얼어붙었다. 커다란 2층 주택의 유일한 온기라고는 거실의 벽난로뿐이라 9명의 식구들이 자연스레 그 앞으로 모여앉았다. 이런저런 대화가 오가던 중 지금보다 시설이 열악했을 몬그랜지의 옛 시절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수십 년 전의 풍경을 들려준 것은 뜻밖에도 토마스였다. 그는 크리스토프와 함께 몬그랜지의 토대를 닦은 멤버 중 한 명이었다.


“몹시 추웠지, 몹시.”

읊조리는 듯한 말투로 토마스가 띄엄띄엄 말을 이었다.


“작은 집에 다 같이 모여 모닥불을 쬐어야 했어.”

그날의 상황을 재현하듯 양팔로 몸을 감싸 안는 토마스를 바라보며 나는 벅찬 감동에 휩싸였다.

맞아, 그렇지. 지금의 캠프힐이 어느 날 갑자기 짠 하고 생겨났을 리 만무했다.


한 채의 집과 난롯불에서 하나의 마을을 이루기까지 지난했던 시간을 생각하면 나는 함부로 부러움의 시선을 던질 수 없었다. 이곳에서 느낀 모든 평화와 아름다움, 안온함은 치열한 투쟁 끝에 얻어진 것이었다. 여성의 투표권조차 간신히 쟁취했던 시대에 장애인 공동체가 결코 환영받지 못한 존재였음을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았다.


크리스토프의 생일이 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캔들마스Candlemas가 찾아왔다. 끝나지 않을 것 같았던 크리스마스 무드가 드디어 종료되는 시점이었다. 소와 양을 키우는 축사 앞으로 사람들이 한데 모였다. 가톨릭에서 비롯된 캔들마스가 문화적으로 어떤 의미를 갖는지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나는 그저 어리둥절한얼굴로 행사를 관망했다.






가든의 책임자 다니엘이 얕게 패어 있던 땅속에 양초 하나를 반듯이 세웠다. 불을 밝힌 그가 낮은 목소리로 노래를 시작하자 하나둘 사람들의 목소리가 덧입혀지기 시작했다. 일용한 양식을 기꺼이 내어준 땅에게 감사의 마음을, 어김없이 찾아올 봄에게 반가움의 인사를 건네는 노래였다. 사람들의 합창은 자리를 옮겨 채소밭과 허브가 자라는 작은 화원에서도 계속됐다. 캔들마스는 밭과 과수원, 축사를 순례하며 초를 켜고 다가오는 봄을 축복하는 날이었던 것이다.


눈을 껌뻑이는 소들을 향해 노래를 불러주는 사랑스러운 사람들이라니. 이따금씩 그들이 보여주는 이런 작은 마음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노래가 끝난 뒤 하우스패런츠 대니가 스피치를 위해 한 발짝 앞으로 나왔다.


“All the difference are here.”


저마다 다른 이들이 지금 이곳에 함께 있다는 말. 그 자명한 사실이 새삼스러워 나는 홀로 감격에 겨웠다. 지금처럼 엉터리인 채로 살아도 얼마든지 괜찮다는 것을 확인받은 기분이었다.


유난히 키가 작은 사람과 유난히 키가 큰 사람, 혼자 있을 때더욱 편안한 사람, 말이 없는 사람, 나이를 먹을수록 어린아이처럼 천진한 사람, 영원히 나이 들지 않는 사람. 그 모두가 여기 함께, 그리고 나로서 살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