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 없는 삶

Episode 9. '데드라인' 없는 일상의 기쁨

by 송은정


빌리저들 중에는 시계를 보지 못하는 이들이 더러 있었다. 가끔 이들의 손목에 채워진 시계를 빌려 볼라치면 분침이 멈춰 있거나 엉뚱한 숫자를 가리키고 있는 경우가 허다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다들 시계 따위는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 자신이 움직여야 할 타이밍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언제쯤 출발해야 목적지에 제때 도착하는지 제대로 아는 것이다. 안나와 헬렌이 자리를 털고 일어나 성당으로 향하는 시간을 매번 확인해보면 더도 말고 딱 미사 10분 전이었다.


이들의 몸에는 시간의 흐름을 감지하는 섬세한 센서가 장착되어 있는 게 아닐까. 혹은 몇십 년 동안 몬그랜지에서 생활하며 터득한 삶의 지혜인 것일까. 시시각각 휴대전화에 의지해 시간을 확인하는 나로서는 흉내 낼 엄두조차 나지 않는 감각이다. 천적이 없어 굳이 날아오를 필요가 없는 뉴질랜드의 키위 새처럼 어떤 사람들은 시계 없는 삶이 가능했다.





3월이 가까워지자 코워커들의 신변에 조금씩 변화가 생겼다.

더스틴과 대니가 머잖아 독일로 돌아갈 예정인 반면, 마그다는 미국의 캠프힐 지원을 위한 서류 준비가 한창이었다. 이곳에서 2 년을 보낸 그녀는 미국으로 건너가 심도 깊은 교육을 받고 싶다고 했다. 폴란드가 아닌 타국의 삶도 어느덧 익숙해진 듯 보였다. 새로운 자극과 외로움 사이를 적절히 오가며 스스로를 도닥일 줄 아는 마그다는 내게 닮고 싶은 인생의 선배와 같았다. 그녀는 결코 눈치채지 못했겠지만.


여하간 다들 각자의 사정에 따라 어떤 선택을 내리는 와중이었고, 누구도 그 결정을 대신해 줄 수는 없었다. 3월, 봄. 끝과 시작이 교차하는 계절. 나 또한 더 이상 고민을 미룰 수 없는 시점이었다.


티타임을 가지려고 찾은 정원에는 처음 보는 얼굴들이 먼저 자리를 잡고 있었다. 부활절 휴가를 앞두고 한 달여간 임시 근무를하게 된 엑스-코워커(ex-coworker)들이었다. 이들은 휴가를 떠난 하우스패런츠를 대신해 집을 돌봐주는 대가로 주당 보수를 받으며 일을 했다. 자유롭게 국경을 오갈 수 있는 유럽인이기에 가능한 단기 아르바이트인 셈이다. 코워커 이력이 있으니 하우스패런츠는 안심하며 이들을 고용했고, 엑스-코워커들 역시 방학을 이용해 용돈을 벌 수 있으니 서로의 이해관계가 잘 맞아 떨어졌다. 엑스-코워커들의 근황부터 변함없는 몬그랜지 라이프에 대한 소소한 감상까지 대화의 주제는 다채롭게 흘러갔다. 잠자코 이야기를 듣던 나는 마음이 못내 쓸쓸해졌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몬그랜지를 찾을 수 있는 그들의 여건이 부러웠다.


한국인인 나는 겨우 1 년짜리 체류 비자를 받기 위해 지난 10년치 주거지 이전 기록과 열 손가락의 지문, 범죄 내역을 증명해야 했다. 그뿐인가. 지금까지의 해외 출입국 기록, 전기세와 인터넷 요금 청구서까지 낱낱이 제출했다. 서류를 준비하는 내내 더럽고 치사하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복잡한 비자 문제 때문에 나와 같은 아시아인을 거절하는 캠프힐도 수두룩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나는 운이 좋아 여기에 올 수 있었던 것이나 다름없다.





국적과 인종, 경제력, 사회적 위치에 구애받지 않고 원하는 곳에서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경험이 얼마나 귀한지 저들은 알고 있을까. 코워커 생활이 끝나면 스페인으로 건너가 오렌지 농장에서 돈을 벌 것이라는 소피아의 들뜬 얼굴이 떠올랐다. 그녀는 또 다른 선택지로 프랑스 남부도 염두에 두고 있었다. 모두 한두 시간 안에 오갈 수 있는 거리다. 3 개월 뒤 한국으로 돌아가는 나는 두 번 다시 몬그랜지로 돌아올 일이 없었다. 설사 그런 일이 생긴다 한들 그때는 손에 쥔 많은 것들을 포기한 뒤일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이곳에 도착한 나와 소피아의 결말은 이토록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여기서 살다간 한없이 게을러질 것 같아.”


신혜는 몬그랜지에 대해 곧잘 이렇게 평하곤 했다. 나는 그것이 이 마을에 데드라인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까닭에 어떤 이들에게는 몬그랜지의 심심한 일상이 권태로 향하는 지름길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순간의 집중력으로 아드레날린을 폭발시키는 데 익숙한 사람들과 방송국에서 일한 적이 있었다. 그 쾌감을 동력 삼아 내일을 위한 에너지를 얻는 동료들과 달리 나는 매번 급격히 소모되어 갔다. 에너지가 재충전되기도 전에 다음을 향해 뛰는 것이 늘 벅찼고, 그런 스스로가 심약하게 느껴져 좌절했다.


그때 우리가 다른 호흡을 가진 사람임을 누군가 알려주었더라면. 저들이 단거리 주자라면 나는 장거리에 걸맞은 선수라는 것을 깨달은 건 몬그랜지에서였다. 데드라인이 없는 이곳에서 나는 아무런 압박 없이 내게 맞는 속도를 찾아갈 수 있었다.


하지만 한국의 트랙 위에서도 지금의 속도를 유지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 어쩌면 그것은 몬그랜지라는 섬 안에서만 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날 수 없는 새가 생존할 수 있었던 건 그섬에 천적이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그동안 옳다고 믿은 이곳의 방식들이 오히려 독이 되어 내게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더 이상 전력 질주를 하지 않겠다는 다짐이 서울에서의 사회 복귀를 망칠 것만 같은 두려움이었다.


동시에 몬그랜지에 계속 남고 싶다는 막연한 바람이 가슴 한편을 두드렸다. 하지만 그것이 미래의 두려움을 회피하기 위한 선택이라면? 이직과 퇴사를 두고 갈팡질팡하던 게 엊그제인데, 질문은 메아리처럼 다시 돌아와 내게 따져 물었다. 네가 바라는 삶의 방향은 어디를 향해 있느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