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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은정 May 15. 2018

우아한 백조의 고백

여행책방 일단멈춤 소멸기

공간은 나와 함께 호흡하고 움직였다. 


내가 풀이 죽어 있으면 책방의 공기도 무겁게 가라앉았다. 굼뜨게 움직이는 동안에는 책방도 멈춰 서 있다. 두 번째 봄을 맞은 나는 일단멈춤을 건강하게 꾸려가기엔 몸과 마음이 무너진 상태였다. 자주 불행한 얼굴을 지었고 사람들은 피곤해 보인다며 걱정스러운 시선을 보냈다.

나는 시간의 물리적인 힘을 믿는 편이다. 하지만 시기상조인 것일까. 책방을 둘러싼 모든 일에는 여전히 서툴렀다. 점심으로 사 온 만두를 퇴근 때가 돼서야 먹는 책방의 예측 불가한 상황이, 이제 막 말문을 튼 낯선 이와 한 시간씩 대화를 주고받는 분위기가 좀처럼 적응되지 않았다. 벌컥 열리는 문소리에 깜짝깜짝 놀라는 순간도 빈번해졌다. 


심지어 돈 버는 재주마저 여태 늘지 않았다. 재주는 둘째치고 돈 앞에선 쫄보가 된다. 돈이 돈을 부른다는 사람들의 말에 대출을 고려한 적도 있다. 목수에게 책장을 의뢰하고 해외 서적을 늘리는 등 획기적인 변화를 줘볼까 고민했지만, 결론은 빚을 지는 상상만으로도 겁이 났다. 자영업자로서 낙제점에 가까운 내가 용케 여기까지 왔다. 


그렇다고 세상 잃은 얼굴을 한 채 앉아 있을 수만은 없었다. 미래야 어찌 되든 아쉬움이 남는 건 싫다. 몇 주 전에는 거금 60만 원을 들여 책방 안쪽의 콘크리트 침대를 철거했다. 공간을 넓혀 워크숍에 지금보다 더 많은 인원을 받기 위해서였다. 그래 봐야 의자 대여섯 개를 더 놓을 수 있는 정도지만 숨구멍을 튼 것처럼 속이 시원했다. 철거 공사가 끝나자마자 북토크를 줄기차게 열었더니 저녁마다 사람들로 시끌벅적이다. 전해 듣기로는 그 어느 때보다 일단멈춤이 활기차 보였다고 한다. 그래서였을까. 만나는 이들마다 나더러 잘나가는 책방 주인이라며 추켜세웠다. 민망했다. 수면 아래에서 발버둥 치는 우아한 백조가 바로 나라는 사실을 아무도 모르는 것 같다. 





망설였던 ‘탐방서점’ 행사는 결국 참여하기로 했다. 금정연 서평가와 김중혁 소설가가 각자 네 곳의 서점을 방문해 운영자와 공개 대담을 나누는 자리로, 그날 녹취된 내용은 단행본으로 엮일 예정이었다. 곧 폐업할지도 모를 위기의 책방을 기록으로 남겨도 괜찮은 것일까. 발전적인 대화가 오가도 부족한데 아직 정리되지 않은 내면의 갈등만 까발리는 시간이 될 것 같아 걱정됐다. 그런데 일단멈춤의 한 시기를 공유하는 것 또한 어떤 면에선 의미 있는 작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올해 겨울에도 책방이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물러 있든 사라지든 말이다. 


이윽고 대담을 치른 그날. 애초의 낙관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채 나는 땅을 치며 후회했다. 횡설수설하는 내 모습이 잘못 편집된 영상처럼 두서없이 떠올라 이불 속에서 내내 뒤척였다. 내 안의 천사와 악마의 대결을 관중 앞에서 생중계한 것과 다름없었다. 마침내 승패를 좌우하는 결정타 한 방이 날아왔다. 


“책방에 손님이 오시면 귀찮기도 하고 그런가요?”

 글 쓸 시간이 없어 괴롭다는 나의 하소연에 김중혁 작가가 되물었다. 


“음....”
 “가끔은요.”

애써 감춰왔던 속마음이 구멍 난 바지의 동전처럼 우수수 바닥에 떨어졌다. 내 대답에 가장 놀란 사람은 다름 아닌 나였다. 어디로든 숨고 싶었다. 


철없는 욕심이었을까. 책방을 운영하며 전업 작가의 길을 닦고 싶었다. 가족과 J에게 기대지 않을 만큼의 경제력을 갖추고 싶었다. 이왕이면 이 모든 바람의 해답을 일단멈춤 안에서 모색해보고 싶었다. 결국은 무엇 하나 제대로 즐기지 못한 채 여기저기 책임을 전가하는 지경에 이르고 말았다. 책방을 기꺼이 찾아준 손님에게는 아무런 잘못이 없었다. 


더 나은 삶을 살겠다는 다짐은 기어코 나를 코너에 몰아세웠다. 단 한 번도 쉽게 길을 터준 적이 없다. 









안녕하세요, 글을 쓴 송은정입니다.


(눈치채셨다시피) 일단멈춤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사라진 책방입니다. 다만 그곳의 이야기는 여기에 남아 세상과 다시 책으로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글을 쓰는 동안 어쩌면 세상 모든 책방은 그 자체로 유일무이한 책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종종 하곤 했습니다.


지금까지 <오늘, 책방을 닫았습니다>를 읽어주신 브런치 독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남은 이야기는 종이책을 통해 들려드리도록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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