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살, 나 홀로 중국 유학기 (8)
스쿨버스를 타고 학교에 도착하니 한 가지 기쁜 소식이 날 기다리고 있었다.
어제까지 가족여행 일정이 있어 등교를 하지 않았던 한 친구가 있었는데,
그 친구가 바로 한국친구라는 사실이다.
게다가 그 친구는 이미 중국에서 생활한지 2년 여 된 친구여서
소통에 아무런 장애가 없는 상태였다.
나는 마치 ‘천군만마’를 얻은 듯했다.
그 친구의 이름은 ‘종건’이었다.
종건이는 그날부터 내 귀가 되어주고, 입이 되어주었다.
종례 시간에 담임 선생님이 학생들에게 공지할 내용이 있으면 꼭
‘종건아, 지훈이한테도 얘기해줘.’라고 덧붙여 말씀하시곤 했다.
나는 무슨 말을 할 때마다 ‘종건아, OO 중국어로 뭐라 해야 돼?’ 하고 물어보았고,
종건이는 귀찮은 내색 하나 하지 않고 나를 도와줬다.
그날도 예외는 아니었다.
학교의 정식 학생 신분으로는 첫날이었기 때문에
당장 매 시간 무슨 교과서를 꺼내야하는지도 몰랐고,
수업을 마무리하는 선생님이 뭐라고 말씀하시고 나가셨는지가 너무 궁금했다.
그래서 쉬는 시간마다 종건이를 괴롭혔다.
그날 결심했다.
하루 빨리 중국어를 잘하는 학생이 되기로.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첫 번째 이유는 중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종건이가 너무 멋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중국 학생들과 아무렇지 않게 농담을 주고 받고 웃을 수 있다니 나로서는 먼 이야기만 같았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가 나로 하여금 학구열에 불타게 한 더 큰 이유였다.
종건이를 그만 귀찮게 하고 싶어서였다.
자라온 환경과 내 성격이 그랬다.
남에게 도움을 주면 주었지, 받고 싶어하지 않았고
더욱이 감수성이 예민한 시기였기 때문에 더 그랬던 것 같다.
생각해봐라.
당장 화장실을 간다 해도 친구의 도움을 받아야만 갈 수 있다니.
종건이도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분명 귀찮았을 거다.
본인이 챙겨줘야 하는 동생이 한 명 생긴 격이니.
하루 속히 종건이의 도움으로부터 독립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학교를 마치고 스쿨버스를 타고 집에 돌아오니
어머니의 빈 자리가 새삼 크게 느껴졌다.
‘내가 돌아올 때 즈음이면 이미 한국에 도착하셨겠지,’ 라고 생각은 했지만
내 눈으로 어머니가 떠난 걸 확인하고 나니 더 쓸쓸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어젯밤처럼 울지 않았다.
씩씩하게 이겨내기로 약속했기 때문에 울지 않았다.
어제 어머니와 부둥켜안고 울면서 밤을 지새운 터라 피곤했다.
게다가 새벽같이 일어나 학교에 가 오늘 하루도
소음에 시달렸기 때문에 굉장히 지친 상태였다.
간단히 샤워를 마치고 그대로 곯아떨어졌다.
그래도 어젯밤처럼 걱정이 되진 않는다.
적어도 내일 학교에 갔을 때 우리 반에 ‘종건이’가 있다는 사실 때문일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