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살 많은 친구 ‘태훈’, 그리고 옆 반 ‘진호’

11살, 나 홀로 중국 유학기 (9)

by 스토푼

중국어 고수가 되고자 했던 다짐은 얼마 가지 못했다.

구세주 ‘종건’의 계속된 도움으로 ‘종건의존증’이 생겨버린 나였다.

덕분에 의사소통에 별다른 어려움을 느끼지 않고 학교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리 반에 새로운 전학생이 한 명 더 오게 되었다.

나보다 키도, 덩치도 훨씬 큰 친구였다.

나는 그 친구 역시 한국에서 온 친구라는 사실을 단번에 알아차리지 못했다.

내가 전학 첫날 그랬던 것처럼,

그 친구 역시 다른 친구들로부터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그 친구는 쉬는 시간마다 복도를 돌아다니곤 했다.

그 친구가 어디에서 왔을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한 건 중국인은 아닐 거란 생각이었다.

나는 ‘한국은 아닐지도 모르지만.’이라는 생각으로

용기를 내어 ‘웨얼 알유 프롬?’하고 영어로 물어봤고,

그 친구는 ‘부산’이라고 대답했다.

나랑 종건이가 한국어로 얘기하는 걸 보고

우리가 한국인이라는 사실은 알았지만

숫기가 부족한 탓에 먼저 말을 걸지 못했던 것이다.

그 친구의 이름은 ‘태훈’이었다.

태훈이가 중국에 온 건 한 달 전이었지만

가족여행으로 ‘하이난’을 다녀오는 바람에 입학은 나보다도 늦었던 것이다.


몇 달이 지나서야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나와 종건이보다 한 살 형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친구로 지냈다.

변명을 하자면 태훈이가 우리에게 나이를 밝히지 않았었고,

같은 5학년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우리보다 형일 거란 생각을 못했다.

이미 친구로 몇 달이나 지내온 나머지 우리는 이미 돌이킬 수 없었다.

몇 달 동안의 친구가 갑자기 형•동생이 될 수는 없었나 보다.

남다른 덩치에서 알아봤어야 했는데

그냥 덩치가 또래보다 큰 친구인 줄로만 알았다.

그렇게 우리 셋은 절친한 친구가 되었다.


중국에서 학교생활을 하면 학교에서 ‘오침’ 시간을 활용해

학생들에게 점심식사 후 두 시간의 수면시간을 보장해준다.

다만 안락한 침대를 생각하면 안 된다.

나무로 된 2층짜리 침대였고 얼마나 부실했는지,

2층에서 자고 있던 친구가 1층으로 폭삭 주저앉건 일도 이따금씩 벌어졌다.

역시 ‘메이드 인 차이나’인가.

심지어 십여 명의 학생이 한 곳에서 잤기 때문에 떠드는 소리,

코 고는 소리에 처음에는 잠에 들기 힘들었다.

그래서 우리 셋은 오침 시간에 몰래 도망쳐서 수다를 떨곤 했다.

문제는 학교 학생부 주임 선생님들한테 걸리면 감점을 먹기도 하고,

크게 혼나기도 했다는 점이다.

지금 생각하면 그 좋은 오침 시간에 왜 그랬나 싶지만,

그때는 왜 그렇게 그 시간이 싫었는지 모른다.

하루는 셋이 몰래 옥상 뒤편 환풍기 뒤에 숨어 떠들다가

선생님께 걸려 호되게 혼난 적도 있었다.

학생부 선생님을 부르던 우리의 은어가 있었는데,

바로 ‘빨카’였다.

학생부 선생님들이 보통 빨간색 배경에

‘주임’이라고 쓰여있는 명찰을 패용하고 다녔기 때문에 그렇게 불렀었다.

‘빨카’와의 쫓고 쫓기는 스릴 넘치는 추격전이 지금까지 우리의 추억이 되어버렸다.


하루는 오침 시간에 도망치지 않고 얌전히 잠을 자던 날이었다.

옆 침대에 누워 있던 친구가 종건이와 인사를 나누고 떠들기 시작했다.

그것도 한국어로.

우리 학년에 또 한 명의 한국인 친구였다.

그 친구 이름은 ‘진호’였다.

태훈이와 종건이, 그리고 내가 살던 아파트는 모두 달랐는데 반해서

진호는 나와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어 우리 둘은 금세 친해질 수 있었다.

다만 학교에서는 진호 혼자 4반이고 우리 셋은 3반이어서

점심시간, 오침 시간 그리고 집에 가는 버스 안에서 말고는 자주 어울릴 수가 없었다.

그래도 종건이 말고 새로운 친구를 두 명이나 더 사귀어 기분이 좋은 요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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