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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토푼 May 24. 2022

서열 앞에서의 비굴함

명심해 우린 계급이 아닌 직책으로 일하는 거야

초등학교 일 학년  일이었다.

반에서 키가 제일 크고 덩치도 제법 있는 친구가

한 친구에게 계속 시비를 걸고 있었다.

괴롭힘을 당하는 친구는 키도 나와 비슷한 정도의 작은 키의 친구였고, 몸집이 크지도 않았다.

괴롭힘이 멈추지 않자  친구는 ‘그만해라.’라고 이야기하고   친구를 노려봤다.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친구를 향해 고개를 치켜들고서 말이다.

나는 의아하게 생각했다.

뭔가 믿는 구석이 있는 친구인가.’

  친구의 괴롭힘이 계속되자 

 친구는 발차기  방으로   친구를 쓰러트렸다.

  친구는 바닥에 널브러져서는 울기 시작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친구는 태권도장을 다녔던 친구고 자그마치 ‘초록띠’에 해당하는 실력자(?)였다.

시간이 꽤 오래 지난 일임에도 생생하게 기억이 나는 것은 그 친구의 당당함이 멋져 보였기 때문이다.

나였다면 잠자코 괴롭힘을 당하고 있었을 텐데 말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당당함이 부족했다.

어려서는 나보다 신체조건이 우월하거나 힘이 센 친구들에게 당당함이 부족했고,

어른이 되고서는 권력자에게 당당함이 부족했다.

강자에게 대항하기보다는 순응하며 살아왔다.

이런 내 비굴함을 합리화하기 딱 좋은 말이 두 가지가 있다.

좋은  좋은 거지.’ ‘그러려니 해야지 .’


이런 내 모습이 싫지는 않았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렇게 산다고 생각했으니깐.

그런데 내가 이런 내 모습이 싫어지기 시작한 건

군에 입대하고 나서부터였다.


내가 아는 한 군대만큼 계급구조가 뚜렷한 집단은 없다.

상명하복(위에서 명령하면 아래에서는 복종하는)의

상하관계가 분명한 곳이 바로 군대다.

때로는 상급자가 잘못됐더라도 잘못됐다고 말할 수 없는 곳

그곳이 군대다.


처음 갓 임관한 소위로 자대에 갔을 때였다.

선배와 점심식사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부대 정문에서

헌병대 병사가 대형 트럭 운전자와 실랑이를 벌이는 모습을 목격했다.

나는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해서 신경을 쓰지 않았는데,

선배가 터벅터벅 걸어가서는 무슨 일이야?’ 하면서 헌병대 병사에게 물었다.

헌병대 병사는 ‘사전에 허가받지 않은 차량이라 들어오실  없다고 안내했는데 막무가내로 들어오려고 해서 막았더니 계속 저러고 계신다.’고 하소연했다.

선배는 그 얘기를 듣고는 운전자에게

들어오실  없구요. 출입 신청하고 다시 오세요.’라고 대답하고는 나가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운전자는 ‘ 어디 소속이야? 내가 지금  실고 있는지 알아?  여기 부대 OO 아는 사람인데 

 어디 소속이냐고. 늦어지면 너가 책임질 거야?’ 라며 호통을 치기 시작했다.

선배는 차분한 어투로 ‘ 소속은 말씀드릴  없구요. 저희 절차가 이러하니 따질 거면 다른 곳에 따지시고 일단은 나가세요.’라고 답했다.

운전자는 씩씩거리면서 ‘ 두고 .’ 하고는 트럭을 돌려 나가고 내려서는 어딘 가에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선배는 옅은 미소를 띠고서 자리를 피하지 않고 기다렸다.

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나와 똑같은 소위 계급장을 달고서 선배는 어떻게 저렇게 당당할 수 있었을까.

장교교육대대에서 늘 듣고 배운 것이 ‘장교는 늘 당당해야 한다.’는 거였는데

나도 저렇게 당당해질 수 있을까?


시간이 어느 정도 흘러서 중위 계급장을 달고 있을 때의 일이다.

다른 능력을 내세울 건 없지만 딱 하나 자랑할 게 있다면

일처리가 남들보다 조금 더 꼼꼼하다는 거다.

정기적으로 상급부대에서 내려오는 내용이 있었는데,

내가 할 일은 이 내용을 작성해서 비행대대 조종사들에게 다시 배부하는 거였다.

그런데 보다 보니 내용이 틀린 부분을 몇 가지 발견하게 되었다.

나는 우리 부서장에게 보고했고, 부서장은 내게 상급부대 담당자에게 전화를 하라고 했다.

‘그분은 중령인데, 제가 전화를 하는 게 맞습니까?’ 여쭸더니

부서장이 이야기했다.

우리는 계급으로 일하는  아니야. 직책으로 일하는 거야.’

아주 큰 울림이 있는 말이었다.


그 말에 힘을 입고서는 호기롭게 전화했다.

필승! 중령님, OO부대 OOO중위입니다. 다름이 아니라…’ 자초지종을 설명드렸더니 그가 답했다.

잘못 내려간  알겠는데, 일단은…’

잘못은 맞지만 바로 수정을 할 수 없으니 일단은 보내준 대로 하라는 이야기였다.

알겠습니다 하고 통화를 종료할까 하다가 나를 울렸던 말이 떠올라

한 발자국만 더 나아가기로 했다.

근데 잘못 내려온  그대로 저희가 배부하면 

실제 상황에선  문제가 되지 않을까 생각이 돼서 연락을 드렸습니다.’

이 정도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항명이었다.

그랬더니 그가 ‘뭐가 문제지?’라고 되물었다.


문제가 뭔지 몰라서 묻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 상황에서 그에게 문제를 되짚을 수 있는 용기와 당당함이 내겐 없었다.

‘일단은 부서장께 보고 드리고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계급이 아니라 직책으로 일한단 말이 참 멋있는 말이긴 한데 실제로 삶에 적용하기에는 약간의 괴리가 있는 듯하다.

만약 나와 그의 계급이 반대였다면 이렇게 말했을 것 같다.

이런 식으로 내려 보내면  어떡하라는 거죠?

잘못된 내용으로 배부하고, 나중에 수정해서 다시 내려오면

 수정해서 배부하라고?    하라는 건가요?’

그러나 계급이 낮으면 마땅히 해야 할 말도 하기 어렵다.


군대를 벗어나 직장 생활을 하면서는 뭔가 달라졌을까?

‘계급’이라는 단어가 ‘직급’으로 바뀌었을 뿐 실상은 달라진 게 없다.


상대가 잘못한 걸 발견해서 이야기해줄 때도 늘 을의 입장에서 이야기하는 기분이 들고

마땅히 받아야 하는 걸 늦게 받았음에도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의 표현을 하곤 한다.

이렇게 군대를 벗어나서도 ‘당당함’을 갖추고 일하는 게 쉽지 않다.

그래서 스스로 당당하지 못할 때마다 자기 암시를 하곤 한다.

직급이 아니라 업무로 이야기하는 거다.’


그러나 현실에선 늘 쉽지 않은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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