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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토푼 Mar 19. 2020

조기 졸업은 했는데 조기 입영은 과연?

필승! 신입사원입니다

예비장교 후보생 합격 통지를 받은 건 대학교 2학년 여름 즈음이었다.

그 날부터 졸업할 때까지 정말 열심히 살았다고 자부한다. 방학 때마다 갖은 아르바이트를 다 하고,

대학교 4학년 때는 교생 실습까지 나가면서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기도 했고,

여러 상황이 맞아서 운 좋게 조기 졸업을 하게 되었다. 졸업을 남들보다 앞서 하게 되니

시간적인 여유가 생겼고, 나에게는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다.

한 가지는 ‘졸업을 앞당겨 한 만큼 일찍 입영하는 것’이었고, 또 다른 한 가지는

‘나 자신에게 주는 선물로 미국 여행 다녀오기’였다.     


‘관성’이라고들 하지 않나. 4년간 열심히 달려온 터라 갑자기 멈추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선뜻 놀러 갈 생각이 들지 않았고, 결국 첫 번째 옵션을 택하기로 했다.

나는 곧바로 서울 지구 모병관에게 전화를 걸었다. 며칠 전 ‘조기 입영을 원하는 인원은 연락 바랍니다.’라는 문자가 왔었고, 예비장교후보생 오리엔테이션 시간에 ‘실제로 조기 졸업으로 인한 조기 입영을 희망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기에 ‘조기 입영’은 내 의지로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모병관이 ‘조기 입영은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닌가.

예비장교후보생 제도 자체가 전역 인원을 대체하기 위해서 계획된 인원을 선발한 것이기 때문에

조기 입영이 안 된다는 얘기였다. 충분히 납득이 되지는 않았지만, 나에게는 플랜 B가 있었기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그렇게 8월 무더운 여름 어느 날,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그러고 정확히 2주 뒤에 모병과로부터 문자가 한 통 왔다.

‘조기 졸업으로 조기입영을 원하시는 분은 유선으로 연락 바랍니다.’


나는 이미 모든 일과 걱정을 접고 미국에서의 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더없이 만족스러운 이 생활을 접고 조기 입영을 위해 2주 만에 다시 한국에 돌아갈 정도로

입대가 간절하진 않았다. ‘어차피 내년에 갈 건데 뭐.’     

미국에서는 아무런 걱정도 하지 않고 시간을 보냈다. 유일한 걱정거리라고 하면 ‘입대’인데,

‘내년의 나’의 고통이라고 생각하니 지금 당장 와 닿지 않았다. 내가 당장 해야 할 일은 맛있는 걸 먹으러 다니고, 관광 명소를 찾아 떠나는 일뿐이었다.

그렇게 두어 달 살다 보니 인생 최대 몸무게를 찍게 된 건 필연적인 일이었다.     


원래 계획은 연말까지 이러한 생활을 즐기는 것이었다. 적어도 크리스마스는 미국에서 보내고 싶었다.

어릴 적 ‘나 홀로 집에’ 영화를 본 그 날부터 남몰래 품어온 소망이었다.

그러나 원래 소망은 간절할수록 이뤄지지 않는 것이다.

10월에 온 한 통의 문자로 내 ‘4개월 미국 생활’은 반토막이 되어버렸다.

‘예비장교후보생 장려금 지급 체력검정 가능 여부 연락 바랍니다.’     


내 귀국 일정은 두 달이나 앞당겨졌다. 그것도 비행기 표 변경에 대한 위약금까지 물어가면서.     

한국에 돌아와서 급하게 다이어트를 해봤지만 역부족이었다.

나는 비대해진 몸을 이끌고 체력검정을 하러 대방동에 위치한 공군 부대에 갔다.

종목은 1.5km 달리기, 팔 굽혀 펴기, 윗몸일으키기 3가지였다.

세 종목 다 합격은 했지만, 중하위권의 성적이었다. 특히, 달리기 등수는 앞에서보다

뒤에서 세는 게 더 빠를 정도였다. 그때 우리의 체력검정을 구경하러 대방동 부대 소속 ‘중위’가 한 명 왔다.

나를 포함한 모든 후보생들이 선망의 눈으로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서울 대방동에서 근무하면 자신이 군인이라는 사실도 망각하지 않을까?

그때 우리 중 한 명이 용감하게 질문했다. ‘대방동에 있는 부대 오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그때 그 이름 모를 중위가 한 마디 남기고 시크하게 자리를 떴다.

‘졸라 열심히 하면 돼요.’


그때 다짐했다. 다른 누구보다도 열심히 해서 꼭 수도권으로 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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