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승! 신입사원입니다
내가 입대하기 전만 하더라도, 예비장교후보생 이외에는 별도의 장려금 지급 혜택을 받을 수 없었다.
예비장교후보생은 필기고사 성적 70%, 체력검정 30%를 반영하여 장려금을 받을 수 있었고,
모병과에서 종합성적을 고려하여
상위 20%에게는 300만 원, 나머지에게는 145만 원을 차등적으로 지급해줬다.
나는 당연히 145만 원을 받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필기고사를 엄청 잘 봤던 건지
300만 원이라는 거금을 받을 수 있었다. 근데 이 돈이 입대하기 불과 한 달 전에 들어와서
제대로 써보지도 못하고 입대를 하게 되었다. 물론 훗날 내 종잣돈의 일부가 되었지만.
미국에 다녀오고 나서 입대하기 전까지 약 4개월이라는 시간이 남았다.
집에서 마냥 쉬기만 하는 것도 그렇고 해서 ‘아르바이트하면서 돈이나 벌자.’ 하는 생각에
집 주변 아르바이트 자리를 물색했다. 지원서를 제출한 회사 중 두 곳에서 연락이 왔고,
내가 선택한 곳은 집에서 버스로 20분 정도 걸리는 곳에 위치한 조그마한 회사였다.
알바천국에서는 ‘무역회사’라는 설명 이외에 어떠한 소개도 없었기에 면접하러 가서야
비로소 어떤 회사인지 알 수 있었다. 회사에 들어가니 여성 속옷이 진열되어 있었고
그제야 사장님께서는 ‘여성 속옷 판매하는 회사예요.’라고 알려주셨다.
회사의 구성원은 사장, 부장, 대리, 사원 그리고 아르바이트생이었던 나, 이렇게 총 5명이었다.
내가 맡은 업무는 중국어 통·번역 일이었다. 분명히 그 일만 하러 간 거였는데, 갈 때마다 새로운 일을
배우게 되면서 회사를 나올 때 즈음엔 ‘포토샵’, ‘html 태그’, ‘쇼핑몰 관리’에 이르기까지
모든 업무를 능통하게 할 수 있는 팔방미인이 되었다.
원래 입대 한 달 전까지만 일을 할 생각이었지만, 사장님의 간절한 부탁에 못 이겨 입대 한 주 전까지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다. 물론 이때만 하더라도 여기서 배운 포토샵과 디자인 기술이 훗날 군대에서
유용하게 쓰일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이 곳에서 일하면서 ‘사람은 참 간사한 동물이다.’라고 느끼게 했던 에피소드가 하나 있는데,
하루는 나를 못살게 굴던 대리님이 ‘너는 대학교 갈 생각 없어?’라며 물어봤다.
이게 무슨 소리지. 나는 ‘저 대학교 나왔는데요?’하고 대답했다. 그러니 대리님은 ‘아, 2년제?’하면서 되물었고, 나는 ‘저 4년제 대학교 졸업했는데요?’라고 답했다.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는지, ‘너 스물세 살이라며?’라고 다시 물었고, 나는 ‘조기 졸업했어요.’라고 답했다.
지금까지 내가 고졸이라고 생각했나 보다. 정확히 그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대리님이 유독 나를 대할 때 얕잡아보거나 무시하는 투의 발언이 많았고, 심지어 욕을 하는 일도 종종 있었다.
내가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부사관으로 입대하는 줄 알았던 모양이다. 우연의 일치인지 필연인지,
대리님은 그날부터 나를 무시하는 투의 발언을 삼가면서 조심스럽게 대하기 시작했다.
나는 학력에 따라서 사람을 판단하는 게 우스웠다. 내가 못해서 나를 무시한 게 아니라, 내 학력이 낮다고
생각해서 나를 무시했다고 생각하니깐 더 우스웠다.
사람의 업무능력과 상관없이 학력의 높고 낮음으로만 사람을 판단하다니.
그날부터 나는 더 당당해질 수 있었다. 학력 주의자는 아니었지만, 저 사람이 그렇게 생각한다니깐
나도 그에 걸맞은 행동을 하기로 했다. 이날 얻은 교훈은 이후 군대에서도 똑같이 적용되었다.
공군에는 유독 SKY 대학 출신 병사들이 많다. 그러나 나는 절대로 학력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기로 했다.
그 사람의 능력과 태도만 보기로 했다. 결론적으로 이야기하면 대학을 나오지 않은 병사들 중에도 업무능력이 뛰어나면서도 성실한 친구들이 많았고, 유수의 대학을 나온 병사들 중에도 근무 태만하고
노력하지 않는 친구들이 있었다. 다시 말해서 학력이란 잣대로 선입견을 가지고 사람을 판단할 필요가 없다는, 아니 판단해서는 안 되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