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승! 신입사원입니다
당신이 하루 종일 앉아서 공부만 해온 사람이라면 1.5KM 달리기가 가장 큰 난관일 것이다.
팔 굽혀 펴기랑 윗몸일으키기는 집에서도 틈틈이 할 수 있지만, 달리기는 집 밖으로 나가지 않는 한 할 수가 없다. 장려금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입대 후 3차 전형에서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면, 하루에 최소 3KM라도
꾸준히 뛸 것을 권장한다.
입영한다고 모두 임관할 수 있는 건 아니고 이 중에서도 상당수가 집에 돌아가게 된다.
귀가 사유를 모두 나열할 수는 없지만 대체로 아래와 같은 이유들로 퇴영하게 된다.
첫 번째로, ‘인성 검사’에서 퇴영하는 경우가 간혹 있다. 여기서 불합격하는 사람은 두 부류로 나눌 수 있다.
첫 번째 부류는 사고 요인을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되는 사람들이다.
가령, ‘나는 최근에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다.’, ‘가끔 죽어버리고 싶은 생각이 든다.’라는 항목에
‘매우 그렇다.’라고 응답한 후보생을 3개월 동안이나 데리고 있고 싶을까?
강도 높은 훈련을 받는 상황에서 혹시라도 잘못된 선택을 하면, 매스컴은 사실관계와 무관하게
군대의 잘못으로 몰아갈 게 뻔하다.
두 번째 부류는 일관된 선택을 하지 않은 사람들이다. 인성 검사라는 게 내가 방금 이야기한
‘사고 요인 내포’ 항목을 제외하고는 특별히 ‘정답’이라고 할만한 문항이 없다.
예를 들어, 개인의 성격이나 취미활동에 대한 내용은 합·불에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다.
다만 여기서 나오는 불합격자는 일관성 없이 문항에 응답한 사람들이거나 자신을 포장하려다가
어느 부분에서 실수가 발생해 결국 거짓 응답을 한 것으로 판명된 사람들이다.
따라서 질문에 대한 응답은 반드시 ‘일관성’을 유지해야 한다.
두 번째로, 3차 전형 ‘1.5KM 달리기’에서 귀가하는 경우가 있다. 전체 인원 중 10여 명 정도가 여기서 탈락해서 집에 돌아가게 된다. 1.5KM 거리가 짧아 보이지만 생각보다 길다. 약 7분 여를 멈추지 않고 뛰어야 하는데,
공부만 하느라 운동을 소홀히 한 사람들은 달리던 중간에 멈추곤 한다.
본인이 단거리 선수처럼 빠른 게 아니라면, 단 한 번도 멈추지 않고 뛰어야 간신히 6~7분대 기록이 나오게 된다. 걷는 것보다 조금 빠른 수준으로 천천히 뛰어도 무방하다. 다만 ‘절대 멈추면 안 된다.’ 우리 기수에서는 한 친구가 첫 달리기 때 불합격해서 두 번째 기회를 부여받았는데, 결승선 골인과 동시에 쓰러져서
의무대대에 실려가기도 했다. 그 일로 그 친구는 장교대 유명인사가 되었다.
마지막으로, 훈련 중에 귀가하는 경우가 있는데 두 가지 경우이다.
하나는 ‘자발적인 귀가’를 선택하는 사람들이며, 또 다른 하나는 ‘반강제적인 귀가’를 당하는 사람들이다.
훈련이 시작되면 빨간 모자를 쓴 훈육관들이 맨날 하는 얘기가 있다.
‘집에 가라, 누가 못 가게 하냐?’
저 얘기를 24시간 내내 듣다 보면 문득, ‘아, 진짜 집에 가버릴까?’하는 생각이 든다.
그럴 때마다 정신줄을 꼭 붙잡고 ‘안돼.’라고 멘탈을 다잡는 사람은 남는 거고,
뭔가에 홀린 듯이 ‘자진 귀가’ 신청을 하는 사람들은 집에 가서 따뜻한 밥과 포근한 침대에서 잠을 잘 수 있다.
물론 이후 병사로 ‘재입대’ 신청을 해야 할 것이다. 마치 그들이 승자인 것처럼 보이지만,
어려운 시간을 이겨 내고 임관을 하면 누가 승자인지 알게 된다.
우리 소대에는 카투사를 붙고 온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특별 내무 기간 2주 내내 진지하게 귀가를 고민했다. 그리고 지금은 연장 복무 신청을 해서 곧 대위를 달게 된다. 솔직히 나였으면 카투사에 갔을 텐데.
나머지 부류는 ‘반강제적인 귀가’인데, 유격 훈련 같은 격한 훈련을 받다 보면 간혹 ‘큰 부상’을 입어서 훈련을 못 받을 상황이 되어 강제 귀가 조치를 당하는 경우가 있다.
우리 때는 체육대회 도중 ‘피구’를 하다가 발목을 크게 다쳐 귀가 조치된 후보생이 있었다.
결론이다. 먼저 ‘인성 검사’는 문항에 대한 응답을 할 때 ‘일관성’을 지니고 솔직하게 한다면
집에 갈 일 없을 거다. 물론 ‘자살을 생각하고 있냐’는 응답에 지나치게 솔직할 필요는 없다.
‘1.5KM 달리기’는 적어도 입대 전 일주일부터는 준비해야 한다.
미리 몸을 워밍업 시켜놓지 않으면 실전에서 과호흡이 올 수도 있고,
실전이라 몸이 더 긴장한 상태여서 원하는 기록이 나오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훈련 중 귀가’ 항목이다.
‘반강제적인 귀가’는 의지로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기 때문에 큰 도움을 줄 수는 없지만
간단한 팁을 주자면, 모든 훈련에 최선을 다하되 몸이 상할 정도로 미련해서는 안 된다.
적당한 요령이 필요한 부분에서는 요령도 부릴 줄 알아야 큰 부상을 피할 수 있다.
‘자진 귀가’는 멘탈적인 부분인데, 집에 가면 마냥 좋을 것 같아도 그렇지 않다.
가족들이나 친구들이 환영해주는 건 첫째 날 뿐이다. 아니, 어쩌면 돌아온 첫날부터 왜 돌아왔냐며
구박할 수도 있다. 게다가 이 2주도 못 견뎌낼 정도의 유리 멘탈이라면, 남은 10주의 훈련도 못 이겨낼 거다.
운이 좋아 훈련을 받고 임관했다 치자. 자대 생활이 그렇게 만만한 게 아니다.
초임간부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이 뉴스에 보도된 걸 본 적 있지 않나.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 그런 거다.
힘드니깐.
그러니 이조차 못 이겨낼 사람이라면 하루빨리 집에 가는 편을 적극 권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