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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토푼 Mar 19. 2020

요즘 군대는 군대도 아니에요.

필승! 신입사원입니다

입대 일주일 전까지만 하더라도 ‘다음 주에 입대하면 누구보다 잘할 수 있을 거야.’라는 안일한 생각을 하게 된다. 그건 아직 입대가 피부로 와 닿지 않아서 할 수 있는 생각이다. 심지어 이 기간에는 치킨, 피자, 햄버거 등 입대하면 못 먹게 될 정크푸드를 찾아 먹을 정도로 식욕이 왕성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입대 하루 전부터는 180도 달라지게 된다. 밥맛이 뚝 떨어지고 모든 의욕이 사라진다. 마치 내일 죽으러 가는 사람 마냥. 마치 꿈을 꾸고 있는 듯하고, 내일 입대가 도저히 다가올 현실로 느껴지지 않는다. 그리고 결국에는 “이 꿈에서 깨고 나면, 나는 훈련소가 옛날 추억 이야기가 되어 버린 ‘군필자’일 거야. 아니, 수능을 다시 봐도 좋으니깐 군대가 먼 미래 이야기인 ‘갓난아기’가 되어도 좋아.” 이런 과대망상을 하는 지경에 이른다. 하지만 절대 내일 입대를 미룰 수도, 현실이 되어 버린 입대를 부정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입대 전날 저녁이 되었고, 나는 집에서 가족들과 최후의 만찬을 즐겼다. 식사를 마치고 난 뒤, 어머니께서는 ‘엄마가 머리 잘라줄게.’라고 이야기하셨다. 나는 입대하면 어차피 머리를 다시 자를 텐데, 굳이 자를 생각이 없었다. 어쩌면 내일 입대가 실감이 나지 않는 이유가 ‘이발’을 하지 않아서였을지도 모르겠다. 하여튼.


고등학교를 다닐 적에 학교 두발규정이 매우 엄격해서 집에 바리깡을 구비해두었는데, 이걸 이때 써먹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나는 거울 앞에 앉았고, 어머니께서는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으시며 바리깡을 들었다. 고요함 속에서 바리깡이 홀로 ‘위잉’ 거리며 울기 시작했다. 박박 깎여진 내 머리를 보니깐 내일 입대가 비로소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기본군사훈련단은 경상남도 진주에 있다. 나는 진주까지 혼자 갈 생각이었다. 첫 번째 이유는 우리 집이 일산이라 왕복 8시간의 부담을 부모님께 끼치고 싶지 않아서였다. 두 번째 이유는 ‘가족들과 함께 가면 더 가기 싫을 것 같아서.’였다. 혼자 가고 싶었던 근본적인 이유이기도 했다. 그러나 부모님 마음은 그게 아닌가 보다. 가족들에게 혼자 갈 거라고 누누이 이야기했지만 어떻게 혼자 보내냐고 하시며 나를 진주까지 데려다주셨다. 진주까지 가는 길은 생각했던 것보다도 더 멀었다. 중간에 휴게소에 도착해서는 호두과자를 파는 아주머니께서 ‘군인이죠?’하면서 호두과자와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무료로 제공해주셨다. 군인이 되는 게 마냥 안 좋은 것만은 또 아닌가 보다.


그렇게 먼 길을 달려서 진주에 도착했다. 어머니는 ‘뭐 먹고 싶어?’하고 물어보셨고 나는 ‘아무거나요.’라고 대답했다. 실은 밥 생각이 눈곱만큼도 없었다. 괜히 뭔가를 먹으면 체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우리 가족은 일반 분식집에 들어가 간단한 메뉴를 몇 개 주문하고 앉았다. 나는 죽을 상을 하고 메뉴가 나오기만을 기다렸다. 그때 우리 옆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던 아저씨가 ‘아들이 오늘 입대하나 봐요.’라고 우리 아버지에게 말을 걸었다. 그러면서 자신이 진주에서 근무하는 부사관이라며 본인 소개를 했다. ‘요즘 군대는 군대도 아니에요. 캠프예요. 캠프.’ 누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그렇게 이야기했다. 우리 아버지는 ‘얘는 그래도 장교로 들어가서 훈련을 3달이나 받나 봐요.’ 그 얘기를 들은 아저씨는 ‘어휴, 장교 훈련도 옛날 같지 않아요. 걱정할 필요가 없어요.’ 아저씨의 말 한마디에 우리 가족은 한바탕 웃고 나서 이렇게 얘기했다. ‘야, 캠프 잘 다녀와.’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우리가 주문한 음식이 나오지 않았다. 어머니가 혹시 주문이 누락된 건 아닌가 싶어서 식당 아주머니에게 ‘혹시 음식 언제 나오나요?’하고 물어보셨다. 근데 아니나 다를까, 주문이 누락되었던 거다. 어머니는 당신의 아들이 입대하는데 밥 한 끼 못 사 먹이고 보낸다는 사실에 무척이나 속상해하셨다. 우리 가족은 식당에서 나와서 ‘햄버거라도 먹고 들어갈래?’하고 물어보았고, 나는 괜찮다고 했다. 그래도 비록 밥은 못 먹었지만 식당에서 만난 부사관 아저씨 덕분에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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