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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토푼 Mar 20. 2020

너 군생활 3년 할래 3개월 할래?

필승! 신입사원입니다

정신없이 지내다 보니 어느덧 2주간의 특별 내무 기간도 끝이 났다. 2개월 같은 2주였다. 그동안 너
무나도 많은 일이 있었지만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다. 그중 일부는 이미 기억에서 지워버렸다.


그렇게 특별 내무 기간이 종료되면 '선배와의 만남’ 행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우리는 이 행사를
'선배와의 만남'이라고 쓰고 '치킨, 피자 먹는 날’이라고 읽는다. 사회에서는 치킨, 피자를 안 먹고도 2주 정도야 충분히 버틸 수 있었지만 이곳에서는 자극적이고 기름진 음식이 얼마나 간절한지 모른다. 특히 '탄산음료'에 대한 갈증이 엄청나다. 시원한 콜라 한 잔을 들이켜면 이곳에서 코와 입으로 삼킨 흙먼지를 곧바로 정화시킬 수 있을 것만 같았고, 마셔보니 실제로 그러했다. 우리는 그렇게 선배들보다는 치킨과 피자만 바라보고 2주라는 시간을 이겨냈다.


선배와의 만남에 오는 선배들은 대부분 6개월 먼저 임관한 바로 한 기수 위의 선배들이다. 이들은 이제 막 임관한 갓 소위들이며 불과 몇 주 전까지만 하더라도 교육사에서 우리와 같은 후보생 신분으로 훈련을 받은 사람들이다. 지금이야 '갓 소위들이 뭘 알겠어.'라고 생각하지만, 후보생 시절에는 앞서 12주 간의 훈련을 무사히 마친 선배들이란 생각에 뭔가 대단하다는 느낌이 든다. 우리는 아직 화생방도, 유격도, 행군도 안 했는데 그들은 모든 퀘스트를 클리어한 사람들이지 않은가.


처음 선배들을 맞이했을 때는 눈 앞에 있는 치킨, 피자만 보이기 때문에 그들의 말이 귀에 들어오지 않는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다 먹고 나서 이야기하지.' 싶다. 하늘 같은 소위 선배님들이 말씀하시는데 맘 편히 음식에 집중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그렇게 걸신들린 사람 마냥 음식을 먹다 보면 어느새 눈앞의 음식이 모두 사라지는 마술을 경험할 수 있다. 그제야 우리는 선배들에게 궁금했던 것들을 물어보기 시작한다. '화생방은 얼마나 힘들어요?', '유격은 어때요? 행군은요?’ 당장 우리 앞에 놓인 훈련에 관한 질문이 대부분이다. 이때 선배들은 두 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전자는 '겁주기'형이다. '너네 어떡하냐. 아마 화생방 하면 죽을 걸?' 이런 식으로 경험자가 미경험자에게 겁을 주는 유형이다. 후자는 '거들먹'형이다. '야, 그 정도는 누구라도 다 해. 아무것도 아니야.' 먼저 해본 자의 여유를 한껏 풍기는 유형이다. 개인적으로는 둘 중 후자가 조금 더 의지가 된다. ‘별거 아니야.'의 마음가짐으로 훈련에 임하는 것과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의 마음으로 접근하는 것은 천지차이기 때문이다. 전자의 마음으로는 못할 것도 할 수 있게 되고, 후자의 마음으로는 할 수 있는 것도 못하게 될 것이다.


당시에는 ‘임관'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통과해야 하는 3개월간의 '훈련'들이 전부인 것 같아 보인다. 사실 본 게임은 '군 생활'이라는 3년의 인고의 시간인데 말이다. '임관'은 스스로 포기하지 않는 한 누구나 다 할 수 있다. 그러나 일개 '알소위'계급장을 달고 있던 후보생들이 그러한 '진리'를 알 리가 만무하다. 마치 수능이 인생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고3 수험생과 똑같다고나 할까. 좋은 성적을 받아 원하는 학교에 가더라도 자신의 적성과 맞지 않아 학교생활이 힘들다면 과연 그 학생이 행복할 수 있을까? 3개월간의 훈련성적을 두고 일희일비하지 마라. 매사에 최선을 다하고 결과에 너무 목숨 걸지 말라는 이야기다. 원하는 특기에 가더라도 또는 원하는 자대에 가더라도, 그곳에 행복이 보장되어 있다고 맹신하지 마라.

3개월 훈련 개판치고 낙후지역에 배치받아도 3년 행복하게 군 생활한 사람이 있는 반면, 1등 해서 수도권 배치받아도 3년 내내 힘들게 군 생활한 사람이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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