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토푼 Mar 20. 2020

꼴등 사수의 오지랖 ‘쫄지 마!’

필승! 신입사원입니다

사격이란 단어를 떠올리면 어떤 생각부터 드는가. 짜릿함? 쾌감? 하지만 나는 그런 쪽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다. 나는 '사격'하면 두려움부터 떠오른다. 다른 말로, 과도한 안전 과민증을 앓고 있는 이른바 '걱정인형'이라고 할 수 있다. '혹시 사격하다가 사고라도 나면 어떡하지?' 하는 생각에 대한민국 건국 이래로 발생한 '군대 총기 사고'에 관한 기사는 모조리 읽고 입대를 했던 게 바로 나라는 인간이다.


나에게 두려움을 상기시키는 '사격'이 임관 종합평가 중 하나의 항목인 것이 못 마땅했지만, 전쟁을 준비하는 군인이라면 마땅히 총을 쏠 줄 알아야 하다는 사실에는 조금의 이견도 없다. 그냥 나라는 사람이 '쫄보'라는 게 한스러울 뿐.


사격장에 가면 원래도 성격이 불같았던 '훈육관'들이 한층 더 난폭해진다. 그 전이 '불'이었다면 사격장에서의 그들은 '마그마'라고나 할까.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다른 훈련에서 사고가 날 경우 '생명'에 직결될 정도의 부상이 드물지만 '사격 훈련'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사격 훈련에서 사고가 날 경우 그대로 '사망'이다. 그런 불상사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후보생들의 정신 상태를 단단히 무장해주어야 한다.


첫 사격 훈련이 있었던 그 날에도 훈육관들은 후보생들을 쥐 잡듯이 잡고 있었다. 나는 첫 사격을 앞두고 온갖 쓸데없는 걱정 탓에 불안감이 고조되어 있었는데, 거기에 훈육관들의 샤우팅이 더해지면서 긴장감이 최고조 상태가 되었다. 이 상태로는 사고가 날래야 날 수가 없게 된다. 더군다나, 총기에 '안전 고리'를 장착하는 순간 사고 발생률은 '0%'에 수렴하게 된다. 이렇게 '사고'에 대한 두려움은 불식되었지만, 태생적인 '겁'은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처음에는 '영점 사격'을 진행한다. 영점 사격은 기록 사격을 하기 전에 조준점을 일치시키기 위한 과정이다. 따라서 50m, 100m 거리에서 진행하는 기록 사격과 달리 영점 사격은 25m라는 초근거리에서 실시하게 된다. 10발이 다 들어가야지 탄착군을 확인하여 영점을 맞출 수 있다는 얘기이고, 가까운 거리에서 쏘기 때문에 원래라면 10발이 다 들어가야 하는 게 맞다. 그런데 내 영점 사격 결과는 처참했다. 기록지를 확인했는데 고작 2발이 들어가 있는 게 아닌가. 그렇다면 나머지 8발은 다 어디로 간 거지? 아마 25M 거리에서는 10발을 넣는 것보다 못 넣는 게 더 어려울 것이다. 그나저나 영점 기록지에 있는 2발로는 영점이고 뭐고 조절을 할 수가 없는데, '사격은 역시 내 길이 아닌가.' 두려움이 엄습하던 날이었다.


그렇게 첫 영점 사격을 마치고 다음 기록 사격을 하기까지 수십, 수백 번, 원인을 분석해보았다.
그렇게 해서 내린 결론은 '쫄지 마!'였다. 사격을 할 때마다 뻗어나가는 탄환을 끝까지 추적하지 못하고 '질끈' 눈을 감아버린 게 가장 큰 문제점이었다. 그리고 나로 하여금 눈을 감게 한 주범은 총기가 뿜어내는 '굉음'이었다. 그 소리는 내가 방아쇠를 당길 때뿐 아니라 옆 사람이 방아쇠를 당길 때도 나를 움츠러들게 했다. 하지만 문제점을 찾은 것과, 그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 일이었다. 다시 사격장에 올라가 사격을 했을 때도 문제를 인지하고는 있었지만, '공포심’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 결국 망상 속에서 해결책을 찾아낼 수 있었다. 눈앞에 있는 과녁을 '적군'이라고 상상하고 내가 쏘지 않으면 저 과녁이 나를 쏠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저놈을 맞추지 못하면 당장 내 목숨이 위태로운데 어찌 눈을 감고 쏠 것이며, 어찌 총소리에 화들짝 놀랄 것인가. 당장 내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데. 이런 생각으로 사격에 임하니 놀라운 결과가 나왔다. '만발이다.’


이 글을 읽으면서, '에이, 설마 그렇게 되겠어? 허언 아니야?'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사격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단언컨대 '두려움 제거’이다. 조준을 하는 방법이야 누구나 따라 할 수 있지만 두려움을 없애지 못한다면 결코 목표물을 맞힐 수 없다.

영점 사격 때 두 발을 맞힌 후보생이 훗날 기록 사격 때 일반 사격 야간 사격, 방독면 사격 모든 사격에 있어서 특등 사수가 될 수 있을지 누가 알았겠는가.
매거진의 이전글 너 군생활 3년 할래 3개월 할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