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특한 개성과 아련한 감성. 검정치마에 대한 이야기와 단독콘서트 후기
록에 빠져 산다.
나의 플레이리스트에선 여전히 퀸(Queen)과 그린 데이(Green Day), 오아시스(Oasis) 등 전설들이 노래한다. 학창 시절엔 펑크록 밴드 그린 데이의 곡에 매료돼 곧장 밴드부에 들어가 드럼 스틱을 잡기도 했다.
그러나 쟁쟁한 전설들을 앞에 두고 최근 가장 빠져 있는 밴드는 검정치마다.
검정치마는 1인 인디 밴드로, 싱어송라이터 조휴일이 단독 고정 멤버다. 인디 밴드라는 특성상 생소할지 몰라도 검정치마는 16년 차 베테랑 밴드다. 촌스러운 밴드 이름과 <201>이라는 독특한 앨범으로 데뷔했다. 2008년 인디 신에 등장하자마자 인디 음반 판매 1위와 평론가들이 선정한 ‘올해의 신인 뮤지션’ 1위에 꼽히며 돌풍을 일으켰다. 검정치마 1집<201>은 '한국 대중음악 명반 100'에서 73위를 차지했다.
검정치마의 매력은 가사와 음색이다. '나는 개 나이로 세 살 반이야 모르고 싶은 것이 더 많아'라는 장난스러운 가사를 쓰다가도 '넌 내 모든 거야 내 여름이고 내 꿈이야' 같은 달콤한 가사를 자유롭게 구사한다. 특유의 낭만적인 가사가 성별을 불문하고 팬들의 마음을 적신다.
음색은 약간의 귀찮음이 전해지기도 하는, 가공되지 않은 날것의 느낌을 준다. 그의 발성은 고음이나 성량이 뛰어난 건 아니지만, 특유의 목소리로 인한 촉촉한 감성으로 아련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다양한 장르를 다루면서도 '검정치마 스타일'이 명확할 수 있는 이유다.
검정치마는 기본적으론 펑크록 밴드지만 장르를 한정 짓지 않는다. ‘불세례’는 펑크록으로, ‘기다린 만큼, 더’는 어쿠스틱 음악으로, ‘Love Shine’은 컨트리록으로 들린다. 다양한 장르로 음악을 만들고 싶은 조휴일 본인의 장르 욕심에서 비롯된 듯하다.
현시점에서 검정치마의 음악은 새로운 장르로 느껴진다. 다른 아티스트의 음악을 듣고 검정치마가 떠오를 수는 있어도, 검정치마의 곡을 듣고 다른 곡이 떠오르진 않는다. 그의 유니크한 개성이 대중을 설득시켰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검정치마를 알고 싶다면, 대중적으로 유명한 곡부터 들어보길 권한다. 대중적으로 가장 유명한 ‘Everything’, 그리고 드라마 <또 오해영>의 OST ‘기다린 만큼, 더’를 추천한다. 두 곡만으로도 검정치마의 촉촉한 감성을 어느 정도 느낄 수 있다.
'검정치마 콘서트 가기', 여자친구의 버킷 리스트였다. 나도 검정치마의 곡을 좋아하지만, 아직 콘서트를 가본 적은 없었다. '찐팬'인 여자친구의 제안으로 콘서트에 가게 됐다. 아티스트에 대한 예의로, 나는 검정바지를 입고 갔다.
늦게 도착한 우리는 티켓에 적힌 순번에 입장하지 못했다. 번호와 상관없이 입장했을 땐 공연장은 이미 숨 쉬기 어려울 정도로 사람이 가득했다. 우리는 입구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공연을 보게 됐다. 키가 작은 여자친구가 무대를 전혀 보지 못했다는 걸, 공연이 끝난 후에야 알았다.
무대는 3집 Part 3 <Teen Troubles> 재킷 속 집처럼 꾸몄다. 조휴일은 미국에서 살던 10대 시절을 그리워하며 이 앨범을 제작했다고 밝혔다. 공연의 시작과 끝, 집으로 꾸민 세트의 문으로 드나드는 그의 모습에서 미국 생활에 대한 그리움을 엿볼 수 있었다.
3집 Part 1 <Team Baby> 수록곡 '난 아니에요'로 공연이 시작됐다. 잔잔한 통기타 솔로와 조휴일의 매력적인 음색으로 수많은 관중이 단숨에 그의 노래에 빠져들었다. 음색이 특색인 밴드는 보통 라이브에 어려움을 많이 겪는다. 검정치마도 라이브 실력이 단점으로 꼽히곤 했는데, 이번 공연에선 오히려 음원보다 좋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훌륭했다.
가장 좋았던 곡은 단연 ‘Everything’이다. 2016년 싱글 앨범 발매 곡으로, 한때 조휴일은 스스로 가장 좋아하는 곡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곡이라 콘서트장을 찾기 전부터 이 곡을 언제 부를지 기다렸을 정도다.
반면 좋아하는 곡이라서 꼭 불러줬으면 했는데 듣지 못한 곡도 있다. ‘기다린 만큼, 더’와 ‘나랑 아니면’, ‘섬’, ‘Hollywood’가 그렇다. 그럼에도 콘서트는 알찼다. '이 맛에 콘서트 오지'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콘서트 중 조휴일이 “올해 안에 한 번 더 할게요”라고 확신 없이 말했다. 다음 공연도 가고 싶다. 그때는 공연장에 일찍 가서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서 공연을 즐겼으면 좋겠다.
공연 중 1집 수록곡 ‘Kiss and Tell’을 연주하면서 '사탕 타임'을 가졌다. 곡을 반복하면서 관객에게 사탕을 뿌렸다. 우리가 자리한 곳은 무대와 너무 멀어 무대에서 던지는 사탕이 닿을 리 만무했다. 애초에 기대가 없어 손조차 뻗지 않고 있었는데, 난데없이 날아온 사탕이 내 가슴을 때렸다. 받은 사탕은 여자친구에게 줬는데, 여자친구의 표정이 한결 밝아졌던 걸로 기억한다. 그렇게 우리는 첫 콘서트의 축복을 다소 강력하게 받았다. ‘찐팬’임에도 불구하고 공연을 제대로 즐기지 못한 여자친구에게 심심한 위로가 되었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