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실에 벌이 한 마리 들어왔다.
꽃기린 앞에서 넘실넘실 떠 있다.
한 눈 팔 때 해치워야 한다.
전단지를 두 번 접어 탁 내려치니
툭 떨어져 엉금엉금 거린다.
손에 넘치게 뽑아 든 티슈로 재빨리 놈을 덮쳤다.
꾸욱 눌러 녀석의 전신이 완전히 망가지는 걸 느낀 후
스윽 닦아내 말아지고는 쓰레기통에 버렸다.
벌은 나를 위협하지 않았다.
나에게 당하기 전까지 녀석의 시선은
꽃기린이 피운 꽃을 향해 있었고
나에겐 관심도 없었다.
그저 일을 하러 왔다가
봉변을 당했을지도 모른다.
먹이 채집이 임무였을 거다.
일터에서 일을 하다가 생을 마감했다.
벌은 열심히 자기 일을 하고 있었을 뿐
나를 쏠 생각은 없었을 거다.
나는 그냥
나를 쏠까봐 죽여 버렸다.
나는 나의 일터에서도
일벌 몇을 열심히 죽이고 있었다.
못할 것 같은 일은 구차한 핑계를 되며
동료에게 일을 미룬다며 누군가의 의도를 추측하고,
귀찮고 어려운 일은 거짓말까지 해가며
동료에게 일을 미룬다며 누군가의 의도를 추측했다.
그리고 그걸 또 다른 누군가에게 말로 행동했다.
"핑계되는 거 같은데?", "거짓말 같은데?"
구차한 핑계를 되고, 거짓말하는 것 같다는 건
확실히 검증된 일이 아니다.
'나를 쏠까봐'와 성격이 비슷한 추측이다
내려앉은 잠자리를 잡으려고
아이의 손이 몰래 다가간다.
수백 개의 시안을 가진 잠자리는
다가오는 아이의 손이 훤히 보이지만
당장에 달아나지 않는다.
미리 달아나면 될 텐데
잠자리는 왜 그러지 않는 걸까?
나는 또 잠자리의 의도를 추측한다.
다가오는 아이의 손을 보고도
잠자리가 미리 도망가지 않는 건
자신을 잡으려는 게 확실해질 때까지
아이의 의도를 추측하지 않기 때문이다.
손이 뻗어와 자신을 낚아채려는 그 순간
비로소 달아나려고 한다.
그러다 쉽게 잡히기도 하지만
잠자리는 추측으로 행동하지 않고
확실할 때 행동하는 것이다.
내가 벌을 죽인 일은
잘못 된 추측으로 행동한 나쁜 사례다.
아이의 손을 피해 달아나는 잠자리의 타이밍은
확실할 때 행동하는 좋은 사례다.
벌의 의도와 잠자리의 의도
모두 내 생각에 근거한 추측이지만
잠자리의 의도에 대한 추측은
사실과 다를지라도
그것이 옳은것으로 여긴다.
모든 일은 생각에서 비롯된다.
생각이 추측을 일삼는 것과
그 추측의 방향이 엉뚱하거나 옳지 않다면
그로 인해 비롯된 일은
죄 없는 벌을 죽이는 일과 같다.
추측의 근거가 오직 내 생각뿐이라면
추측이 추측임을 인지해야 한다.
벌이 정말 나를 쏘았다면
그건 공격이 아니라 방어다.
벌은 가만히 있는 나를 추측하여
하나밖에 없는 침을 쏘지 않는다.
공격을 추측한 내 생각만으로
벌이 죽고, 벌을 죽이는 일이 없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