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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일웅 Jan 08. 2023

환상속의 양은냄비

숨은 이야기 찾기


나는 4만원짜리 조개구이를 시키면 같이 나와서

육수를 끓이는 양은냄비다.


너희들은 내가 낡고 찌그러져 있을 때

그게 무슨 감성을 자극 한다며 좋아한다.

오랜 세월의 흔적이 있어야 더 맛깔난다나?

그래서 어떤 이들은 새 양은냄비를 사자마자

던지고 찍고 긁으며 낡음을 연출한다.

양은 냄비는 원래 찌그러지고 낡아 보여야 한다며

오랜 세월의 흔적을 인위적으로 시각화시킨다.


인위적으로 시각화되어

세월의 흔적이 조작된 양은냄비는

감성을 자아내지 못한다.

전무 형님의 썰렁한 농담에도 최선을 다해 웃어 주는

어느 친구의 억지 웃음처럼 티가 나고 보기에도 좋지 않다.

(한 친구가 회식 때 술에 취해 전무님께 형이라고 했단다.. 과감한 녀석)  


각종 국물을 수없이 끓이고 끓인 후에 얻을 수 있는 흔적이다.

싱크대에서 다른 그릇들과의 부대낌을 버텨내고

다시 국물을 끓이며

하루하루 축적된 자연스러운 흔적이다.


겉모습을 억지로 흉내 낸다고 해서,

그런 시늉만 한다 해서

세월의 깊이를 한 순간에 얻을 수는 없다.

흉내 시늉만으로 얻으려는 건

그저 장할 상이다.


너도 마찬가지다.

너는 거창한 목표를 세우자 마자,

목표의 결과를 미리보기 한 후,

마치 이루어진 듯 착각한다.

목표한 일을 이루려고 뭔가 하는듯 하지만,

친구들이 한 잔 하자고 하면 좋다고 나갔다 와서는

다음 날 피곤하다며 목표한 일을 미룬다.


한 번 미루니 두 번 미루기가 쉬워져 하루 더 미룬다.

내일부터 진짜 열심히 하면 목표를 이룰 것 같다는

장할 상을 하며 또 미룬다.

결국 환상 속에서 목표를 이루려는 시늉만 하다가

다시 또 목표 세우기와 미루기를 반복한다.


하긴 너의 환상은 이미 정평이 나 있다.

매 새해마다 올해는 진짜 영어공부 열심히해서

미국 선교사에게 영어로 불심을 전파해보겠다는

그런 장할 상이 벌써 10년하고도 몇년째냐?


너의 환상은 너를 환상적으로 만들어주지 않는다.

시늉만으로 한순간에 달성되는 목표는 없다.




"얼마나 절실하니?

너의 꿈과 미래를 위해 무엇을 포기했니?"

-MC 스나이퍼, Better than yesterday 가사 일부-


너는 참 술만 작작 마셔도 잘 될 거 같은데

그게 정말 안타깝다.


담배는 끊었으면서 술은 왜 못 끊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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