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사니까 함께 준 연필지우개
#1.
연필은 쓰고 지우개는 지운다.
서로 다른 일을 하지만
더불어 존재한다.
연필이 있기에 지우개가 존재하고
지우개가 존재하기에
연필은 마음껏 쓸 수 있다.
지우개는 연필이 실수했을 때
고쳐 쓸 기회를 준다.
다시 써보자고 제 살을 닳아 내며,
실수한 그 자리에 다시 쓸 수 있게 해 준다.
연필의 불완벽함으로 인해
지우개로써의 쓸모가 생긴다.
지우개는 온몸으로 희생하고 헌신하여
연필을 지원한다.
연필은 그런 지우개를 의지한다.
하여, 그들은 연필지우개란 이름으로
한 몸이 된다.
이 연필지우개가 글쓰기에 대한
작은 상징이 되어 주었다.
#2.
한 몸이 된 연필과 지우개는
닳고 닳을수록 서로 가까워진다
그들이 가까워질수록 글은 좋아질 것이다.
지우지 않고 써낼 수 있는 좋은 글은 없다.
연필지우개는 말한다.
우리가 몽당이 될 때
너의 글은 더욱 자랐을 거라고.
연필지우개를 손에 잡아 본다.
종이 위에 글 쓰는 소리가 새삼 예사롭지 않다.
쓱쓱 지우는 마찰 소리는
쓰기를 단련시키는 기합소리 같다.
연필과 지우개의 서로를 향한 전진이
내 글쓰기를 전진시켜 줄거라 믿으며
기대해 본다.
쓰고 지우고 다시 쓰며,
종이 위에 펼쳐질 그들과 나의 합작.
아직은 멀지만 곧 가까워질 그 거리.
한 번에 좋은 글을 쓴다는 건 말도 안 된다.
고쳐 써야만 좋은 글이 나온다.
-루이스 브랜다이스, 저술가-
나는 별로 좋은 작가가 아니다
다만 남보다 자주 고쳐 쓸 뿐이다.
-제임스 미치너, 작가는 왜 쓰는가 저자-
모든 글의 초안은 끔찍하다.
글 쓰는 데에는 죽치고 앉아서 쓰는 수밖에 없다.
나는 '무기여 잘 있거라'를 마지막 페이지까지
총 39번 새로 썼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나는 걸작을 한쪽씩 쓸 때마다
쓰레기 91쪽을 양산한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내 인생의 절반은 고쳐 쓰는 작업을 위해 존재한다.
-존 어빙, 미국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