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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일웅 Feb 07. 2023

연필지우개

숨은 이야기 찾기

책 사니까 함께 준 연필지우개


#1.

연필은 쓰고 지우개는 지운다.

서로 다른 일을 하지만

더불어 존재한다.

연필이 있기에 지우개가 존재하고

지우개가 존재하기에

연필은 마음껏 쓸 수 있다.


지우개는 연필이 실수했을 때

고쳐 쓸 기회를 준다.

다시 써보자고 제 살을 닳아 내며,

실수한 그 자리에 다시 쓸 수 있게 해 준다.


연필의 불완벽함으로 인해

지우개로써의 쓸모가 생긴다.

지우개는 온몸으로 희생하고 헌신하여

연필을 지원한다.

연필은 그런 지우개를 의지한다.

하여, 그들은 연필지우개란 이름으로

한 몸이 된다.


이 연필지우개가 글쓰기에 대한

작은 상징이 되어 주었다.



#2.

한 몸이 된 필과 지우개는

닳고 닳을수록 서로 가까워진다

그들이 가까워질수록 글은 좋아질 것이다.

지우지 않고 써낼 수 있는 좋은 글은 없다.


연필지우개는 말한다.

우리가 몽당이 될 때

너의 글은 더욱 자랐을 거라고.


연필지우개를 손에 잡아 본다.

종이 위에 글 쓰는 소리가 새삼 예사롭지 않다.

쓱쓱 지우는 마찰 소리는

쓰기를 단련시키는 기합소리 같다.


연필과 지우개의 서로를 향한 전진이

내 글쓰기를 전진시켜 줄거라 믿으며

기대해 본다.

쓰고 지우고 다시 쓰며,

종이 위에 펼쳐질 그들과 나의 합작.

아직은 멀지만 곧 가까워질 그 거리.




한 번에 좋은 글을 쓴다는 건 말도 안 된다.

고쳐 써야만 좋은 글이 나온다.

-루이스 브랜다이스, 저술가-


나는 별로 좋은 작가가 아니다

다만 남보다 자주 고쳐 쓸 뿐이다.

-제임스 미치너, 작가는 왜 쓰는가 저자-


모든 글의 초안은 끔찍하다.

글 쓰는 데에는 죽치고 앉아서 쓰는 수밖에 없다.

나는 '무기여 잘 있거라'를 마지막 페이지까지

총 39번 새로 썼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나는 걸작을 한쪽씩 쓸 때마다

쓰레기 91쪽을 양산한다.

-어니스트 헤밍웨이-


내 인생의 절반은 고쳐 쓰는 작업을 위해 존재한다.

-존 어빙, 미국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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