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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호 Jul 07. 2018

순천 문화의거리  - 동네인포집 & 그냥과 보통

1802 순천-통영 여행 #3

국내 일부 도시에서 볼 수 있는 문화의 거리에는 공통적인 패턴이 존재한다. 먼저 문화의 거리가 담아내는 '문화'란 대체로 전통적인 범주의 문화예술을 의미한다. 회화, 조소, 도예, 연극 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그리고 문화의 거리는 대체로 원도심에 위치한다. 이는 고가 예술품을 판매하는 화랑, 갤러리 등이 원도심 고급 상권과 나란히 자리 잡았던 경향성이 반영된 결과다. 그리고 그런 공간을 중추로 삼았던 전통적인 문화예술 커뮤니티(공간, 인물 네트워크)의 특성은 오늘날 대다수 문화의 거리에 그대로 계승되었다. 소위 문화의 거리 내에서 활동하는 중견 작가 대부분이 순수예술 작업에 몰두하는 건, 정치-사회적인 격변과 맞물려 단기간 내에 급변한 국내의 예술 창작 및 소비 환경(순수예술, 상업예술 등)과 무관하지 않다.


한편 공공기관에서는 자생적으로 정착한 문화공간 및 작가들의 활동을 눈여겨본 뒤 조례, 행정 고지 등을 통해 일정 구역을 공식적으로 문화의 거리로 지정한다. 이런 조치에는 지역 내 민간 문화-예술 자원을 집약하여 공공적인 문화-관광 자원으로 재창출하고자 하는 의도가 반영되어 있다. 그 과정에서 문화의 거리 전반을 대상으로 예술가 및 예술공간 지원사업, 미관 정비, 홍보 사업 등의 공공사업이 시행된다.


그렇다면 순천 문화의거리는 어떨까?


순천 문화의거리


관련 기사를 찾아보면 2007년을 전후로 순천시 차원에서 순천대학교~청암대학교에 이르는 원도심 일대를 교육문화벨트로 조성하고자 하였음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공식적 또는 비공식적으로 정착한 순천 문화의거리의 특성은 앞서 소개한 일반적인 패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다만 행동, 영동, 금곡동 일대에 걸쳐 형성된 순천 문화의 거리는 작가들의 성향, 물리적 밀도 및 심리적 결집 등을 미루어 볼 때 다른 지역에 비해서 상대적으로 끈끈한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있다는 인상을 주었다. 이번 글을 통해서는 그러한 인상을 전달하는 데 큰 공을 세운 두 공간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동네인포집


동네인포집



인테리어와 아트웍을 담당하고 있는 'ㅇㅁㅈ'
파티 문화 기획 그룹 '동립현대작당소'
패브릭 소품을 제작 및 판매하는 'I-CO'
로스팅 카페 '카페로보트'


이들이 한 데 뭉쳤다.


처음 이름을 들었을 때 "관광 안내소 같은 곳인가" 싶던 이 공간은 서로 다른 재능과 끼를 가진 사람들이 의기투합하여 운영하는 복합문화공간이다. 평상시 이 공간은 카페 겸 작업실로 활용된다. 그러나 희망 인원이 모일 때마다 동네인포집은 인근 주민 및 작가를 상대로 드로잉, 출판물 제작, 바느질, 커피 테이스팅 수업 등을 진행하는 체험 공간으로 탈바꿈한다. 여기에 공간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동립현대작당소의 파티까지 심심찮게 더해지니, 이 공간은 합심한 이의 숫자만큼이나 다양한 얼굴을 가진 셈이다.



이와 같은 복합적인 운영 방식은 건물의 물리적인 형태에도 반영되었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건물이지만, 동네인포집은 지붕 아래 다락 공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작은 규모의 건물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방문객이 수시로 드나드는 1층은 카페 및 커뮤니티 공간으로 활용하고, 상대적으로 조금 더 이동해야 하는 다락과 지하실은 작업 공간으로 사용한다.


게다가 1층과 2층(다락) 사이 천장을 터놓은 덕분에 위층에서 아래층, 아래층에서 위층을 바라보며 공간감을 만끽할 수 있다. 물론 물리적인 장애물이 없는 것에 힘입어 다락 작업 공간과 1층 커뮤니티 공간 사이에 원활한 소통이 이뤄지는 건 덤이다. 주인장은 때때로 다락에 설치된 DJ 부스를 활용하여 파티를 벌이기도 한다고 귀띔했다.



이 모든 매력을 차치하고, 언 손을 녹이며 실내로 들어선 나를 매료한 건 화려한 이벤트가 아닌 일상적인 매력이었다. 내가 잠시 머무는 동안 동네인포집을 드나든 작가 또는 주민들은 하나 같이 주인장에게 다가가서 소소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개인이 일상을 공유하는 것으로부터 커뮤니티가 비롯된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동네인포집은 특별한 이벤트가 없는 날에도 언제나 커뮤니티 공간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음을 짐작해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이름 그대로 동네의 이모저모를 알아갈 수 있는 집. 때때로 마음 맞는 사람을 만나 수다를 떨 수 있는 집. 동네 사람들이 문화의 거리 주변 골목을 걷다가 슬쩍 들러 인사를 나누는 집. 어느 하나로 정의할 수 없는 이 공간에서는 오늘도 다양한 작당이 벌어진다. 공방, 갤러리 등 차분하고 조용하여 경직된 인상을 받을 수 있는 공간 사이에서 동네인포집은 '사람의 온기'를 불어넣고 있다.




골목책방 그냥과 보통


골목책방 그냥과 보통



좋은 책들을 골라 권하는 작은 서점입니다.
이웃들과 함께 취향을 나누고 재미난 일을 작당하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여행자들에게도 활짝 열려있습니다.



정처 없이 걷다가 향교 입구를 알리는 문을 지났다. 추운 날씨 때문인지 문화의 거리 전체가 한산했지만, 향교길은 유독 인적이 드물고 조용했다. 오래된 집과 지은 지 얼마 지나지 않은 건물이 한 골목에 뒤섞여 있었으나, 흥미롭게도 풋내기 건물이 터줏대감 건물의 규모에 맞춰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어느 하나 위화감 없이 자연스러운 골목을 걷는 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졌다.



길의 중간쯤에서 '골목책방 그냥과 보통'에 들어섰다. 나는 역사학자, 영상작가 부부가 책방을 운영하고 있다는 사전 정보를 곱씹기도 전에 안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귀를 빼앗겼다.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여학생 두 명이 책이나 엽서를 뒤적이며 이야기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너, 이 책 읽어봤어?

이 엽서 진짜 예쁘다. 그치?


사고 싶은 거 다 샀다가 지갑 털릴 거 같아.


주변 학교에 다니는 게 분명해 보이는 두 학생의 이야기에 본의 아니게 집중했다. 학교 친구와 등하굣길에 함께 책방을 방문한다는 건 과연 어떤 느낌일까? 함께 읽은 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도 할까? 적어도 이들이 수년 후 회상할 10대 시절이 그냥과 보통 덕분에 한층 더 아름답게 채색되어 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냥과 보통은 행사 참여, 이벤트 기획 등을 통해 지역 공동체와 활발한 소통을 모색하는 공간이다. 그리고 큐레이션 하나하나 공들인 흔적이 역력한 책방이다. 그러나 이 책방은 다른 무엇보다도 '튀지 않는 무던함'으로 순천 문화의거리 안에서 큰 존재감을 뽐낸다.


여기서 무던함이란 방문자에게 부담을 지우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하며, 언제 어떤 경우에나 무난히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이란 뜻이다. 이곳에서는 반드시 무언가를 배우거나 구매할 필요가 없다. 등하굣길에 또래 친구 두 명이 들어와 한참 떠들 수 있는 공간이고, 부모와 자녀가 함께 방문해서 한참 동안 책을 읽고 갈 수 있는 공간이며, 인근 주민들이 어둑한 골목길에서 불을 밝힌 모습을 보고는 반갑게 드나드는 공간이다.


전국 각지 수많은 문화의 거리에 필요한 건 '그냥 보통의 존재'를 자처하는 이 책방과 같은 공간이 아닐까? 방문객과 함께 호흡하지 못하면 의미가 없는 문화의 거리이기에, 오늘도 누구나 편히 맞이하는 골목책방 그냥과 보통이 빛난다.



Coming UP


순천 - 바구니호스텔

통영 - 봄날의책방, 잊음(서피랑), 강구안(커피로스터스 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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