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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호 Sep 03. 2018

핫한 연남동에 스타벅스가 없는 이유

주거지? 상점가? 연남동 바로 보기

나에게 스타벅스는 ‘가장 보통의 존재’이다. 낯선 동네라 하더라도 잠시 쉬어갈 자리가 필요하거나 무언가를 충전할 콘센트가 필요할 때, 혹은 (커피를 마시지 못하면서도) 생수 아닌 특별한 음료가 당길 때, 일단 스타벅스로 향하면 평균 이상의 만족도를 기대할 수 있다. 한편 다른 누군가에겐 동네의 랜드마크이자 유동인구가 많은 상권의 중심지로 여겨진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어느 동네에서나 눈에 잘 띄는 곳에 자리 잡고 있고, 교통 접근성이 뛰어난 곳에 출점하기 때문이다.


한데 무심코 오가는 연남동을 보면 뭔가 이상하다. 그 많던 스타벅스는 어디로 갔을까? 서울에서 가장 세련된 사람들이 모이는 동네라던데, 오늘날 서울에서 번화한 거리임을 (비)공식적으로 인증하는 스타벅스가 하나도 보이지 않는 게 이상하다.


ⓒ 김한솔


건물과 골목은 많은데 사람은 없다


연남동에 스타벅스가 없는 이유를 분석하기 위해선 두 가지 요소를 살펴봐야 한다. 연남동이란 동네의 특성, 그리고 스타벅스의 출점 전략이다. 얼핏 보면 동네의 특성은 인구 통계, 부동산, 도시 관점에서 분석해야 할 것이고, 출점 전략은 경영으로 분석해야 한다. 그러나 사실 스타벅스의 출점 전략엔 이미 인구 통계, 부동산, 도시 분석이 모두 녹아 있다.


스타벅스 이사회 의장으로서 비약적인 성장을 이끌어온 하워드 슐츠는 매장 입지 선정 방식을 묻는 말에 “출점을 전담하는 부동산팀이 별도로 있다”고 답했다. 다시 말해 각국 스타벅스 현지 법인이 시애틀 본사 담당 부서에 현지 인구-부동산 관련 통계 분석 자료를 보내면, 본사 부동산팀은 해당 자료를 데이터베이스에 대입하고 분석해 매장 입지를 결정하는 방식이다. 그렇다면 이 데이터베이스는 어떠한 방식으로 분석할까? 하워드 슐츠의 핵심 참모이자 부동산 개발 및 점포 개발 관련 전문가인 아서 루빈펠드는 저서 《소매업 성공전략》에서 GIS(geographic information system)를 활용하여 일곱 가지 항목에 대한 정보를 분석한다고 밝혔다. 이 중 두 가지 항목을 주목해보자.


1) 상권에 거주하거나 일하는 사람의 소득 수준과 주택 규모 및 형태
2) 스타벅스의 개념에 적합한 주·야간 인구 규모


1번은 주 수요층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중시하는 인구 통계의 기준을 의미한다. 전통적으로 스타벅스가 마케팅 타깃으로 삼는 계층은 ‘20~40대까지, 도시에 거주하는 전문직 고소득자’다. 출점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상업지에 거주하고 일하는 사람의 소득 수준과 주택 규모, 주택 형태를 분석한다. 


그렇다면 연남동은 어떠한가? 최근 몇 년간 연남동은 주거 지역과 상업 지역이 혼재하는 양상을 보여왔다. 일단 출점 전략의 기본 전제인 ‘전형적인 상권’이라 간주하기에는 모호한 구석이 있어, 결과적으로 소비를 선호하는 유동인구가 넉넉하게 모여들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게다가 연남동 주거지는 1970~1980년대 개발된 다세대·연립주택 중심지로, 전문직 고소득자와는 거리가 먼 중산층 서민이 다수를 이룬다. 이 역시 스타벅스의 마케팅 타깃과는 거리가 멀다.


평일 주간 연남동 미로길 골목


2번 항목은 이 동네에 스타벅스가 들어설 수 없는 가장 결정적인 요인을 암시한다. 해가 떠 있는 낮, 연남동은 예상외로 한적하다. 한 블록에 두 지점이 영업할 정도로 스타벅스가 많은 종로-을지로-강남 일대의 업무 및 상업지구가 항상 붐비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그 원인을 분석해보면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연남동은 대지를 점유하고 있는 건물의 형태적 한계로 인하여 동네를 향한 높은 관심도에 비해 실질 유동인구가 매우 적다. 연남동 건축물 대다수는 1970~1980년대에 지은 다세대·연립·단독주택 형태다. 그중 일부 건물만이 용도를 바꿔 상업용으로 활용하고 있다. 서울의 대표적인 업무 상업 복합지구에는 용도를 막론하고 고층 빌딩이 많아 업무 인구가 집약되는 반면, 연남동은 부지 면적당 수용 가능한 인구가 적다. 짐작하건대 스타벅스 출점을 위한 유동인구 기준에는 미치지 못하는 듯하다. 


두 번째, 연남동에는 커피 전문점의 주 수입원이라 할 수 있는 테이크아웃 고객과 좌석 점유 시간이 짧은 직장인이 많지 않다. 연남동에는 몇몇 작은 회사가 있지만, 업무지구가 형성되지는 않았다. 이는 대한민국 직장인이 일상 대부분이라 할 수 있는 업무 시간에 연남동에 머무르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직장인의 유무가 중요할까? 기본적으로 업무지구 스타벅스엔 온종일 커피가 있어야 하는 사람들(스트레스와 피로에 지친 사람들)이 드나들게 마련이다. 또한 직장인의 식사 시간 역시도 중요하다. 점심시간이 짧아 자리 순환이 빠르고, 테이크아웃 주문이 많기 때문이다. 즉, 직장인은 스타벅스 음료를 고민 없이 구매할 수 있는 경제력을 갖추고 있는 데다가 ‘자리를 차지하지 않고 깔끔하게 음료만 구매하며 갈 길을 가는’, 커피 전문점이 선호하는 덕목을 갖추고 있는 수요층이다. 연남동에 스타벅스가 없는 이유를 논하면서 직장인의 부재를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향기로운 님의 말소리에 귀먹고 꽃다운 님의 얼굴에 눈멀었습니다


아메리칸 드림, 엘도라도, 일확천금. 오늘날 연남동은 서부 개척시대를 방불케 할 정도로 요란하다. ‘미로길’이라 이름 붙인 골목은 매일같이 공사 소음으로 시끄럽고, 서너 가족이 살던 건물은 서너 점포가 옹기종기 모여 성공을 꿈꾸는 베이스캠프가 되었다. 이곳에서 창업을 꿈꾸는 모두가 과연 스타벅스만큼 주도면밀하게 분석했는지 묻고 싶다. 


스타벅스가 없는 이유가 궁금하다는 사소한 호기심으로부터 출발한 조사는 대부분이 간과하는 이 동네의 면면을 보여준다. 이를테면 수십 년 전 택지로 개발된 탓에 여전히 좁은 연남동의 골목은 거리를 오가는 사람의 수를 실제보다 많아 보이도록 하는, 일종의 착시 현상을 일으킨다. 어쩌면 우린 연남동을 있는 그대로 해석하지 못한 채 그럴듯하게 포장된 외형에만 현혹된 것은 아닐까? 일상 또는 일탈, 연남동은 어느 쪽에 가까울까? 스타벅스에 대한 탐구를 통해 살펴본 연남동은 아직까진 일상에 가까이 서 있다.


참고 자료

아서 루빈펠드(2006), 소매업 성공전략(Built for Growth), 럭스미디어.




매거진 <아는동네, 아는연남>을 통해 배포한 콘텐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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