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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필호 Oct 25. 2018

변두리 동네의 홀로서기

강동구 천호동 & 성내동

이것은 소리 없는 아우성


노른자와 흰자, 도심과 부도심, 시내와 시외, 도시와 농촌, 역세권과 변두리. 중심부와 주변부는 끊임없이 밀고 당기며 오늘도 도시의 외형과 그 속에 감춰진 역학 관계를 바꿔 간다. 주변부는 중심부를 흠모하며 편입되고자 하는 열렬한 바람 속에 오늘도 절치부심하며 달리고 있고, 중심부에 편입된 모든 것은 움켜쥔 헤게모니를 놓치지 않기 위해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부동산, 교육 등 사회 전반적인 요소에 걸쳐 광범위한 선긋기를 통해 차별화를 꾀한다.


소리 없는 아우성, 중심 또는 상층부로 향하기 위한 노스탤지어의 손수건. 장쾌하고도 역동적으로 전개되는 한국 도시 구조의 서열 스펙트럼 속에서 세컨드 윈드(마라톤에서 사점을 극복한 후 고통이 줄어들면서 레이스를 재개하고자 하는 의욕이 다시 생겨나는 상태)는 허락되지 않는다. 많은 경우 레이스에 참가한 선수들은 데드포인트(사점 死點)를 향해서 끝이 명확히 보이는 질주를 계속할 뿐이다.



한강 하류 주변에 홍수가 빈번하던 시절, 오늘날 강동구 일대는 그야말로 신들린 위치선정 덕에 수많은 사람이 모여 유복한 삶을 꾸려나갔다. 천호동이란 지명의 뜻은 ‘1천 개의 집이 있는 마을’인데, 이는 한강을 끼고 있는 비옥한 토지가 있지만, 입지적으로 하천 범람의 위험과는 거리가 먼 덕분이다. 게다가 북한강-남한강, 서울-경기를 잇는 지정학적 위치 덕에 한강 이남에서 여의나루 다음으로 큰 마을을 이루게 되었다.



大 개발시대


그러나 서울이란 도시가 개발이란 화두를 중심으로 모든 현상을 해석하기 시작한 뒤로 천호동과 성내동(이하 천호동)은 주변과 중심의 역학 관계 속에서 번민의 세월을 보내기 시작한다. 80년대 새롭게 개발되기 시작한 이웃 동네인 둔촌동, 상일동, 명일동과는 달리 천호동의 많은 부분은 여전히 6~70년대 어느 시점까지도 머물러 있는데, 강동구에서 가장 오랜 마을의 모습과 풍경이 뒤처짐과 낙후됨으로 해석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불행히도 서울 전체로 보나, 강동구에 한정하여 보나, 천호동에 대한 인식은 '개발 시류에 발맞춰 분발해야 하는 변변찮은 동네'에 불과했다. 물론 이 동네의 개발과 발전은 주민들의 희망과는 괴리가 있는 속도로 느릿느릿 진행되어 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서울의 끝, 해 뜨는 동쪽 변두리에 위치한 강동구와 천호동의 역사가 오랜 기간 ‘개발’이란 묵직한 화두 내재화하고 담아왔다는 사실을 천호동 골목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읽어낼 수 있다.



오늘날 천호동에는 서로 다른 시대가 함께 모여 살아간다. 대한민국의 개발사를 고스란히 품은듯한 고전미가 인상적인 천호시장, 그 맞은 편으로 횡단보도를 하나 건너면 천호동 로데오거리가 불쑥 모습을 드러낸다. 로데오거리에서 천호대로와 올림픽로를 건너면 구불구불한 골목 사이로 문구완구 거리와 주꾸미 골목이 방문객을 맞이한다. 20세기라는 투명한 물에 현대적인 개발이란 물감을 이제 막 풀어낸 것처럼, 천호동 골목은 제각각 다른 시대의 운치와 농도를 선명한 색으로 드러내 보인다.



천호동에 머무는 형형색색 시간은 어딜 향해 흐르고 있을까?


서쪽으로는 롯데월드타워의 강렬한 수직선이 하늘을 가르고, 동쪽으로는 유유히 흘러오는 한강의 물길이 하남시를 거쳐 천호동으로 흘러온다. 개발만이 도시의 유일한 해답은 아니라는 새로운 인식이 정착하기 시작한 이 시점에서, 천호동의 왼쪽과 오른쪽으로 펼쳐진 서로 다른 모습은 일종의 메타포를 품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오랜 기간 강동구와 천호동의 변화를 주도해온 개발에 대한 욕망은 오늘 이 시점에서 어디를 향하고 있는가? 분명한 것은 천호동, 나아가 강동구의 미래는 서울-세종 고속도로가 아닌 강풀의 만화, 길고양이에 대한 존중, 도시 농업 사이 그 어딘가에 있을 거란 사실이다.



※ 2017년 5월, 아는동네 포스트를 통해 배포한 콘텐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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