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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일라씨 Jun 07. 2021

쿨하게 두발 자전거 타는 어른이 되기

어른의 친구는 더 이상 그냥 친구가 아니니까

첫째 아이가 좋아하는 친구가 있다. 툭하면 그 친구 이야기를 한다.


"엄마, 오늘은 oo이랑 놀고 싶어요."

"oo이가 햄스터를 키운대요."

"저도 oo이가 타는 두발 자전거 사주세요."


어렸을 때 같은 어린이집을 나와서 같은 공부방을 다니던 그 친구는, 첫째가 공부방을 끊은 이후로 전보다 보기 힘들어졌다. 하도 보고싶다고 해서 그 친구가 사는 아파트 단지 놀이터로 갔더니 우연히도 그 친구가 있었다. 혼자는 아니었고,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산다고 들었던 형과 놀고 있었는데 어쩐지 전보다 노는 폼이 과격해 보였다.


친구를 오랜만에 만난 첫째는 신나서 연신 친구 이름을 부르며 달려갔는데, 이 친구는 첫째를 슥 쳐다보더니 이내 놀던 형과 놀기만 할 뿐, 첫째에게 신경도 쓰지 않았다. 이런 모습을 보면서 순간 기분이 살짝 나빴지만, 그래도 아이들 일이니 그냥 두자하고 지켜보았다.


하지만 지켜볼수록 점점 더 속상할 뿐이었다. 그 친했다는 친구는 형과 함께 놀리듯이 자전거로 도망치며 첫째를 피해다녔고 (첫째는 아직 두발 자전거를 타지 못하고 킥보드를 탄다.) 애기같다고 놀리기까지 하는 것이다. 첫째의 표정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아니 그래도 나름 친한 사이였는데, 이 녀석이?'


결국 마음이 상해버린 나는 학습지 핑계를 대며 첫째를 데리고 나와 도망치듯 그 곳을 빠져나왔다. 내 마음을 알리가 없는 첫째는 더 놀고 싶은데 엄마가 억지로 데려간다며 삐진 표정이 역력했다.


"아니 너는, 쟤가 니 이름 한번 안 불러주는데 뭘 좋다고 놀아달라 그래?"


그러면 안됐는데 나도 모르게 가시돋힌 말이 튀어나와 아이에게 화살을 향했다. 이내 후회한 나는 엄마가 화내서 미안하다고 사과했지만 이미 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씩씩대며 화를 가라 앉히던 나는 아이에게 내가 그렇게 화를 벌컥 낸 이유가 뭔지 자꾸 곱씹게 되었다. 그리고 문제는 그 친구나  첫째가 아닌 나에게 있는 것을 알게 되버렸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어떤 집단이든 속하게 마련이다. 사회적 동물이라는 어려운 말까진 쓰지 않아도 사람은 혼자 살지 못하고, 집단에서 맺은 인간관계에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게 마련이다.


나 또한 아주 어렸을 때 부터 많은 집단에 속해왔는데 특유의 겁 많은 성격과 소심함 때문에 늘 긴장감 도는 인간관계를 맺어온 것 같다. 그래서 어떤 집단에 들어가 누군가와 친분을 쌓게 되면 다른 사람들보다 더 잘해주려고 노력하고 친한 관계를 어떻게든 이어가려 안간힘을 썼던것 같다. 적어도 이 친구는 내가 좀 더 신경써줘서 다른 아이들보다는 나와 더 친하다. 그런 안도감으로 긴장을 풀려고 했던것 같다.


하지만 자연스럽지 못한 이런 노력이 나도 모르게 티가 났는지 나중에는 꼭 나 혼자 지쳐서 관계가 끊어지거나, 아니면 다른 환경으로 각자 헤어지게 되면 빠른 속도로 연락이 끊기곤 했다. 그러면 나는 '내가 얼마나 신경써줬는데!'라며 괜한 자존심을 세우고 절대 다시 먼저 연락하거나 하지 않았다.

이후 사회에 나오게 되고 나이를 먹으면서 결국 어떤 집단이든 가족 외에는 공통점이 사라지면 오래 가기 힘들다는 사실을 깨닫고, 어떤 관계던 적당한 선을 유지하려 애썼다. 연락이 와서 모임에 나오라고 할때만 나갔고, 내가 먼저 만나자고 하거나 모임을 만드는 일은 드물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내 마음속에는 아직 '상대방은 별로 신경도 안쓰는데 나혼자 좋다고 놀아달라는게 속상한' 어린 자아가 남아있나 보다. 첫째가 상대방이 신경도 별로 안쓰는데 놀아달라고 하는 모습을 보자 생각 이상으로 발끈한 미성숙한 자아 말이다.


객관적으로 생각해 보면, 그 친구는 같이 두발 자전거도 탈 수 있고 놀아주는 능력도 더 뛰어난 그 동네 형이 당연히 더 재밌을 것이다. 만약 첫째가 똑같이 두발 자전거를 탔다면 그냥 같이 재밌게 놀고, 함께 동네를 휩쓸고 다녔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그렇다고 첫째가 부족하단 뜻은 아니다. 어른들 시각에서 봤을때 그랬다는 것일뿐)


그래도 나는 너에게 10만큼의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그 친구는 알고보니 나를 4정도 생각하는 친구라는걸 깨닫게 되면 그게 내 오해라고 해도 속상한 건 어쩔 수 없을것 같다.


이제는 나도 두발 자전거를 어서 연습해서 다시 함께 어울리는, 쿨한 어른이 되어야겠다. 사실 어른의 친구란 더 이상 그냥 친구는 아니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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