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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일라씨 Apr 02. 2022

나와 글 _ 아직도 내가 작가로 보이니?

3인칭 회고록 시리즈 01

결코 적지 않은 맥주병과 소주병이 쌓여가고 있던 어느 평범한 가족 모임. 그녀는 한껏 붉어진 얼굴로 소주잔을 단숨에 들이켰다.


"엄마!"


그녀가 들어간 순간부터 자리에 잠시도 앉지 않고 끊임없이 음식을 내오던 엄마가 그녀를 바라보았다.


"왜? 우리 큰 딸?"


"내가! 어? 돈 벌어서 우리 엄마 생활비 팍팍 준다!"


순간 기분 좋아진 엄마가 까르르 웃더니 다시 묻는다.


"우리 딸 요즘 돈 잘 버나 봐?"


"아~ 그러엄~"


"그, 블로근가 뭔가 그걸로 돈 버는거야?"


"뭐 그것도 있고오~ 이거 저거 하고 있숴!"


"아휴 그래~ 우리  뭔들 못하겠어. 블로그에  쓰는거 맞지?"


술기운에 허세를 떨던 그녀는 '글'이란 단어가 나오자 말문이 턱 막히고 말았다.


"어? 뭐 그거 비슷한거지. 하하하하~"


"그래~ 우리 딸이 원래 어렸을 때 부터 글 잘 썼잖아. 그래서 작가님도 하고."


"아, 엄마는 무슨. 작가 안한지 얼마나 오래 됐는데..."


그녀는 순간 해장국을 한사발 들이킨 듯 술이 확 깨고 말았다. '작가'라니 그리고 '글'이라니.

이유를 알 수 없는 민망함에 얼굴이 더욱 빨개진다.


현재 마흔이 살짝 넘은 두 아이의 엄마, 그리고 디지털 노마드를 꿈꾸며 블로그를 시작으로 산만하게 이것저것 해보는 중인 프로 삽질러 J. 그녀는 한때 글쓰기 대회 나가면 기본으로 상장 하나쯤 받아왔던 글 좀 쓰는 초등학생, 교지편집부를 담당했던 중학생, 담임선생님의 권유를 무시하고 문예창작학과를 우겨서 운좋게 합격한 고등학생이었으며, 대학 졸업 후에는 방송작가 일을 했었다. 사실만 놓고 따지면 글 어느 정도 쓰는 편이었고, 작가였던 것도 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어쩐지 '작가'라는 말만 나와도 흑역사라도 들킨 듯 허둥지둥 말을 돌리곤 한다.


왜일까? 작가였던 그녀는 왜 아직도 내가 작가로 보이냐며 '작가'를, 더 깊이 따지자면 '글'을 밀어내는걸까?

사실 그녀 자신도 왜 그런지 정확하게 생각해 본적은 없다고 한다. 그래서 써본다고 한다. 아무도 관심없지만 그녀 자신에게 끝없이 물음표를 던지는 '나와 글'의 애증 어린 회고록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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