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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텍스트셀러 밍뮤즈 Dec 17. 2023

끝내주는 나의 재취업 03. 다단계? 보험? 부동산?

 앞에서 지인 덕분에 들어간 직장은 지인 덕분에 해고를 당했었다고 말했었다.


끝내주는 나의 재취업 02. 2주 만에 해고 당한 썰




 이후 집에 있는데 복합적인 기분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일단 출퇴근 지옥철에 벗어나니 몸이 편했지만 내 잘못 없이 해고당했다는 찜찜한 기분에 마음은 편하지 못했다. 구직 사이트를 다시 기웃거렸지만 마땅한 자리도 보이지 않았고 무엇보다 의욕이 없었다.


 그러던 중 지원하지 않은 회사에서 연락이 왔다. 그 곳은 쌩뚱맞게 부동산이었는데 이력서를 공개로 해두었더니 그쪽에서 먼저 연락이 온 것이다. 근무 조건은 오전 10시에서 3시로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는 아주 괜찮은 조건이었고, 일도 어렵지 않은 듯 했다. 모 지역에 위치한 부동산이었는데 홍보를 위한 파트타임을 뽑는 듯 했다.


 안되면 말지 하는 기분으로 면접을 갔다. 면접은 화려한 명품을 두른 이사라는 아줌마와 했는데, 희한한 점은 내가 해야할 일이 아니라 나의 신변잡기에 대한 수다가 면접의 80% 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근무조건과 급여를 재차 확인했으니 상관없다 생각하고 다닐까 말까 하던 중, 내일부터 나오라는 말이 나왔다. 당장 내일부터? 솔직히 급여도 시간대비 쎈 편이라 혹한 마음이 있었지만 급작스러운 출근 요청을 하니 선뜻 오케이 하기 쉽지 않았다. 하지만 돈이 뭔지 이만하면 그냥 다니자 싶어 아이들 학교 일정을 핑계대고 5일쯤 뒤로 출근 날짜를 잡았다.


 마침내 5일 뒤쯤 출근을 시작했는데 첫날부터 신기하고 이상한 점이 너무 많았다. 면접 본 곳은 그냥 작은 규모의 부동산이었고 그 구석 어디쯤에서 PC로 일을 하겠거니 했는데, 안으로 들어가니 꽤 넓직한 사무실이 숨어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 말고 내 또래 아줌마들이 한 20명쯤 자리잡고 있었다. 내 자리라는 곳을 소개받고 앉아있자니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아 여기 혹시 콜센터 같은 곳인가? 홍보 전화 돌리는? 하지만 신기하게도 어느 누구의 책상에도 전화는 커녕 PC도 없었다. 그저 파일과 종이 뭉텅이들이 있을뿐. 뭐지 뭐지 하고 있는데 대표라는 사람이 오전 조회처럼 강의를 시작했다.


 내용은 대충 부동산의 중요성에 대한 유튜브를 시청한 뒤, 우리나라에서 얼마나 부동산이 중요한지 그리고 여기 근무하는 사람들은 그 기회를 잡았으니 행운이란 식의 내용이었다. 말빨이 어찌나 좋은지 다 듣고나니 이건 기회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리고 근무가 시작되었는데 나는 아직 교육을 받으려면 시간이 걸린다며 경제 신문을 스크랩한 자료를 읽으라고 했다.


 이렇게 약 5일 정도를 아침 조회로 세뇌(?)당한 후, 계속 경제 신문만 주구장창 읽어댔다. 내용은 대부분 노후에 대한 불안감을 조성하는 내용이었다. 나는 그렇다 치고 다른 사람들은 도대체 무슨 일을 하나 흘끔흘끔 살펴봤지만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겉으로 보기엔 그냥 노는 분위기였고, 팀장격인 사람들이 한명한명씩 상담을 쭉 이어가는 분위기였다. 내 옆에 있는 사람도 일은 안하고 지인과 통화를 하며 안부나 묻고 있었다. 그러다 팀장 한명과 상담을 하는 내용을 의도치 않게 엿듣게 되었는데, 이상하게도 지인과의 통화 내용을 보고하면서 코칭을 받는 분위기였다. 그리고 슬슬 확신이 들었다. 이건 지인을 통한 땅이나 건물 장사였다. 그래도 확실히 하는게 좋겠다 싶어 팀장에게 면담을 요청하고 구체적으로 내가 어떤 일을 하게 되는지 물었지만 두루뭉실하게 넘기며 곧 교육이 시작되면 다 알게될 내용이라고 했다. 내가 혹시 지인을 시작으로 홍보를 해야 하는가 묻자 좋은 부동산 찬스면 그럴수도 있지만 필수는 아니라고 했다. 그리고 확신이 들었다. 맞구나. 맞아.


 아직까지도 그곳의 영업구조를 100% 확신할 순 없지만 내 또래의 40-50대의 아줌마들을 모아놓고 마치 보험처럼 부동산을 파는 곳이었다. 보통의 공인중개소처럼 그 동네 매물이 아니라 좀 떨어진 지역의 땅이나 관광지에 지은 고급 빌라를 분양하는 업무를 주는것 같았다. 그리고 계약이 성사되면 커미션을 주는 방식. 처음엔 지인을 통해 시작하고 능력이 되면 알아서 영업하라는 식. 눈치를 그 정도 채고 불안해 하고 있을 무렵 내 마음을 읽었는지 팀장이 면담을 요청하더니 계약서를 쓰자고 했다. 다른 팀의 모 실장은(전부 호칭이 실장님이었다) 들어온지 1년만에 1억 연봉을 받았다며 실제 통장 입금 내역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아, 그래요 하면서 듣는둥 마는둥 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혹하기도 했다. 환경이 진짜 무서운게 A가 된다!라는 환경이 조성되면 나 혼자 A는 아닐거라고 B일거라고 말하기가 힘든 곳이 되는 것이다.


 면담이 끝나고 어쩌지 고민하던 중에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와서 밖으로 나가 받게 되었다. 010으로 시작해서 혹시나 하고 받았던 그 번호는 다름아닌 전에 면접을 본 곳의 합격 전화였다. 원래 하던 일과 비슷해서 괜찮다 싶었지만 집과 회사가 멀어서 살짝 망설였던 곳이었다. 하지만 다단계도 아닌 보험도 아닌 부동산을 영업하라고 권유를 받은 마당에 찬 밥, 더운 밥 가릴 처지는 아니었다. 출근하겠다고 대답한 후, 다시 들어가 팀장에게 못다니겠다 말하고 그대로 집으로 갔다. 팀장님 연락주세요, 혹시 알아요 제가 부자되서 땅 살지? 라는 멘트와 함께.


 이렇게 뭔가 한번에 잘 안풀리는, 파란만장한 나의 10년만의 재취업은 다음 회사에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새로운 회사는 다닌지 약 1달이 되었고, 아직은 별다른 일 없이 다니고 있으니 다행이라 해야하나. 하지만 아직까지 재취업 적응이 덜 끝났는지 마음을 툭툭 건드리는 순간들이 많다. 당분간은 그 순간들을 털어놓는 일들이 많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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