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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한인공지능연구소 Mar 05. 2019

쌀이온다

출판 프로젝트 2019

태생적으로 가장 대만다운 브랜드그린 인 핸드  

오랜 세월 기후와 환경 변화를 겪어온 땅만큼 지역색을 잘 말해주는 것이 있을까? 타이베이의 그린 인 핸드는 대만 땅의 기운을 머금고 자란 쌀이야말로 대만인이 중시하는 가치와 라이프스타일을 보여주는 가장 본질적인 브랜드라고 말한다.







‘밥 선생’, ‘진실의 쌀’ 등 톡톡 튀는 제품명을 한자 캘리그래피로 적어 넣은 1.5kg 용량 패키지.




타이베이 시내 중심가에 위치한 그린 인 핸드 매장. 04, 05 결혼 선물, 명절 선물용 패키지.






결혼 선물, 명절 선물용 패키지. 


대만의 대표 서점이자 라이프스타일 숍인 에슬리트Eslite에 입점한 쌀이 있다. 누런 재생지의 패키지에 새겨진 고풍스러운 한자 캘리그래피는 ‘밥 선생Mr. Rice’, ‘진실의 쌀Truth Rice’, ‘걱정하지마 쌀No Worry Rice’ 등 톡톡 튀는 상품명을 적어 넣은 것이다. 이는 2006년 타이베이에서 시작한 그린 인 핸즈Green In Hand의 대표 상품인 쌀이다. 타이베이를 기반으로 하는 그린 인 핸드는 쌀을 비롯해 차와 꿀, 쌀로 만든 화장품, 샤오롱바오를 먹기에 제격인 나무젓가락 같은 식도구를 판매하는 대만 브랜드로 ‘자연을 보고 느끼고 맛보는 손’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2011년 <모노클>의 대만 트래블 가이드가 일찍이 주목한 그린 인 핸드는 대만 화롄과 타이중 지역의 유기농법을 사용하는 작은 농가의 농산물을 판매하며, 농업이 곧 대만 문화를 품고 있으며 특히 쌀이 그 중심에 있다고 본다.




이들이 소개하는 쌀 제품은 10개 정도다. 웹사이트와 패키지에는 각 제품마다 12가지가 넘는 세세한 항목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제공한다. 어느 품종을 섞은 것인지에 대한 설명은 물론이고 사용한 비료, 농업용수의 출처, 경작지의 소재지, 재배한 사람, 수확한 사람, 도정한 사람과 최적의 밥 짓는 방법, 쌀마다 다른 보관법까지, 친구가 직접 적어준 듯 쉽고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어 이해가 쉽다. 같은 제품이라도 결혼이나 이사 등 특별한 날에 걸맞은 컬러와 무늬를 입힌 에디션이 있어 쌀이 근사한 선물도 될 수 있다. 중국 문학을 공부한 천윤이Chen Yun Yi 그린 인 핸드 대표는 우연히 선물받은 예쁘게 포장된 쌀에 매력을 느껴 이 사업을 시작했다. 그의 관심사 때문인지 상품 설명에 종종 무라카미 하루키와 조지 윈스턴의 소설이 언급되고 수필처럼 써 내려간 브랜드 소개가 읽는 재미를 더한다. 이를테면 브랜드를 만들어 판매하는 자신을 발행인이라 일컫고 농부를 작가라고 부르며 그들이 경작하는 쌀은 작가의 텍스트에 비유한다. 농산물이라는 작품을 생산하는 데 노동력을 발휘한 작가야말로 그 음식의 진짜 주인이기에 그들에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고 농사에 전념할 수 있게 지원하는 것이 자신들의 역할이라고 강조한다.



수준 높은 패키지와 다채로운 전시 활동도 그중 하나다. 그린 인 핸드는 2014년 창립 8주년을 맞아 송산문화창조공원에서 <라이스 앤드 라이프Rice and Life>라는 독립 전시를 열어 쌀을 주제로 한 다양한 설치미술과 블라인드 밥 테이스팅, 주먹밥 쿠킹 클래스 등 다양한 교류 행사를 열었다. 또한 그린 인 핸드의 상품 중에는 ‘디자인 어워드에서 상 받기About Getting Awards’라는 이름의 세트도 있는데, 말 그대로 패키지 디자인으로 상을 받은 쌀과 차, 꿀을 모은 것이다. 이들은 ‘밥 선생’ 패키지로 2010년 대만 문화 & 창의 어워드에서 금상을, 2011년 레드닷 어워드에서 베스트 디자인상을 받았으며 2012년 일본 굿 디자인 어워드에 선정됐고 꿀과 우롱티 제품 패키지로도 각각 2012년 레드닷 베스트 디자인상을 수상했다. 보통 어워드 수상 실적은 상품의 홍보 문구에 활용하는 정도에 그치는데 이를 상품명 전면에 내세운 발상이 재미있다. 온라인으로 시작한 그린 인 핸드는 현재 타이베이 시내 중심 상점가에 있는 본사 오피스이자 매장과 고급 복합 쇼핑몰인 ‘송산 스펙트럼’ 내 에슬리트 서점, 그리고 시내의 몇몇 슈퍼마켓에서 만나볼 수 있다.


www.greeninhand.com



미리 보는 쌀가게의 미래


트래블코드





목차



1. 들어가며


2. 쌀을 선택한 이유


3. 끼니를 때우기 위한 쌀은 없다


4. 쌀을 빛내는 빛나는 조연


5. 밥맛의 차이를 만드는 경험


6. 아코메야가 짓는 미래





들어가며



일본에 쌀로 유명했던 작은 마을이 있었습니다. 이 곳은 고령화와 인구감소로 생산력에도 문제가 생겼고, 일본인 식습관의 서구화로 판매량도 급감했습니다. 그렇게 쇠락해가던 '이나카다테' 마을이 쌀 농사와 예술을 결합해 화려하게 부활했습니다. 황색, 백색, 주황색, 적색, 녹색, 자색 등 다양한 색상의 쌀을 심어 논에 거대한 그림을 그린 것입니다. 논이 캔버스로 변하자 관광객과 판매량이 급증했습니다.





ⓒ NewdailyTV




쌀 소비량이 급감한다고 해도 이나카다테 마을은 농사를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그동안의 주생계원이었고, 마땅한 대안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변신을 시도해 다시 활력을 찾은 것입니다. 이나카다테 사례처럼 쌀에 의존해 경제활동을 하던 주체들이 새로운 방법을 통해 상황을 개선시키고자 하는 것은 자연스러울 수 있습니다. 하지만 쌀 소비량이 줄어드는 시대에 쌀 관련한 비즈니스는 해본적이 없던 업체가 쌀가게를 새로 시작하는 건 무모한 도전일까요?




시장 분석을 했다면 누구라도 기피했을 시장에 '아코메야'가 출사표를 던졌습니다. 시장에 대한 감이 없다고 생각하기엔 아코메야를 운영하는 '사자비 리그'의 발자취가 남다릅니다.




쌀을 선택한 이유



ⓒ트래블코드


'사자비 리그'는 일본의 라이프스타일 산업의 대표주자입니다. 미국의 '스타벅스', '쉑쉑버거' 등 식음료 브랜드 뿐만 아니라 프랑스의 '아그네스비', 미국의 '론 허먼', 덴마크의 '플라잉타이거' 등의 라이프스타일 샵을 일본에 들여온 업체입니다. 또한 사자비 리그는 해외 브랜드를 일본에 소개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아갓트', '아나이', '라카구' 등 자체 브랜드를 기획해 운영하며 일본의 라이프스타일을 선도하고 있습니다. 사자비 리그의 사업적 감도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이런 사자비 리그가 쌀에 주목했습니다. 유행을 앞서가는 것만이 라이프스타일이 아니라 일본 본연의 문화도 라이프스타일이 될 수 있다는 판단에서였습니다. 그래서 일본 식문화의 중심에 있는 쌀을 테마로 다이닝 라이프스타일 매장인 아코메야를 만들었습니다. 시장성 혹은 성장성에 초점을 맞췄다면 쌀에 관심을 갖지 않았겠지만, 사자비 리그는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소재로 쌀을 선택한 것입니다.




갓 지은 쌀밥이 담긴 밥 그릇이 주는 행복을 전하고, 그 밥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일상을 제안하겠다는 의도입니다. 그래서 아코메야의 시작은 쌀이지만 쌀만 취급하지 않습니다. 쌀, 식품, 사케, 조리기구, 주방용품 등 9개 카테고리의 제품과 서비스를 판매하며 다이닝을 중심으로 한 라이프스타일 매장을 지향합니다. 주변 제품, 서비스 경험 등의 영역까지 포함해 업을 재정의하겠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아코메야는 일반 쌀가게와 무엇이 다른 걸까요?




끼니를 때우기 위한 쌀은 없다



ⓒ트래블코드


쌀은 보통 포대 단위로 팝니다. 밥을 매일 먹는 사람들에게는 효율적인 포장 단위입니다. 하지만 밥맛의 다양함을 경험하고 싶다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한 종류의 쌀을 오랜기간 먹기 보다 여러 종류의 쌀을 짧은 기간동안 맛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아코메야는 다품종 소량판매 방식을 택했습니다. 재배 지역과 재배 방식에 따라 맛이 다른 20여종류의 쌀을, 한 식구의 한끼에 해당하는 2~3인분 단위로 포장해 판매합니다.





ⓒ트래블코드


또한 같은 쌀이어도 정미도에 따라, 그리고 쌀을 불리는 물량과 시간에 따라 밥맛이 달라집니다. 아코메야는 쌀 판매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고객이 원하는 수준으로 현장에서 직접 정미를 해주고 정미도별로 밥을 짓는 적절한 방식을 설명해줍니다. 백미의 경우도 30분~60분, 현미의 경우는 12시간 이상 물에 담가둬야 한다는 설명을 보면 한끼를 때우는게 아니라 채우는 것의 난이도를 알 수 있습니다. 





ⓒAkomeya

종류가 많다고 바람직한 건 아닙니다. 쌀에 조예가 깊은 고객이 아니라면 여러 종류의 쌀을 보며 선택장애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코메야에서는 쌀을 추천해줍니다. 스시, 솥밥 등 어떤 밥을 지을 건지에 따라 적합한 쌀을 골라주고, 새롭게 판매를 하는 쌀 또는 햅쌀의 정보를 안내합니다. 출산 축하를 위해 신생아 체중과 같은 무게의 쌀을 선물해보라는 제안을 하기도 합니다.


쌀 추천을 통해 고객의 기호와 상황에 맞는 쌀을 고를 수 있도록 돕는 것

입니다.      



쌀을 빛내는 빛나는 조연



ⓒ트래블코드

밥맛이 뛰어나다고 밥만 먹는 사람은 없습니다. 밥을 완성하는 건 반찬입니다. 아코메야가 쌀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서 반찬류를 판매하는 이유입니다. 하지만 모든 반찬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밥맛을 살리는 반찬류를 중심으로 반찬 코너를 구성

했습니다. 일반 마트와는 달리 식탁에서 밥보다 더 주인공 역할을 할 수 있는 생고기, 날생선 등의 신선제품은 취급하지 않는 것이 특징입니다.         




ⓒ트래블코드

또한 1층 한쪽 코너에서는 프리미엄 사케를 와인처럼 보관해 판매합니다. 사케가 빛과 온도에 민감하기 때문입니다. 쌀 가게에서 술을 판매하는 게 낯설게 느껴질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사케가 쌀로 만드는 술이라는 것을 고려하면 아코메야의 한 공간을 차지할 자격이 있습니다. 게다가 일본 전통과 현대의 조화(니코도타이, Nikodotai)를 추구하는 아코메야 입장에선


전통의 제조 방식과 멋을 담고 있는 사케는 빼놓을 수 없는 제품

입니다.        




ⓒ트래블코드

아코메야는 다이닝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기 때문에 먹는 것만 판매하는 것이 아닙니다. 조리 기구, 주방 용품 등도 판매를 합니다.


세워서 보관하는 주걱 등 아이디어 제품부터 솥, 그릇, 젓가락, 이쑤시개 등 장인들이 제작한 전통 도구까지 주방의 가치를 높여주는 제품들을 제안

합니다. 매장을 둘러보면 '품질이 탁월하거나, 일상에 풍요를 더하거나, 개성이 있는 상품들을 판매한다'는 아코메야의 제품 선정 기준에 공감할 수 있습니다. 또한 음식과 식문화 관련 책들도 함께 판매해 다이닝 라이프스타일에 깊이를 더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밥맛의 차이를 만드는 경험



ⓒ트래블코드


아코메야 입구를 들어서면 밥짓는 코너가 있습니다. 쌀을 재배한 농부가 밥을 지어 샘플처럼 제공합니다. 문의를 하면 쌀의 특성을 상세히 설명해줍니다. 직접 재배한 사람만큼 그 쌀에 대해 더 잘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제품 정보와 경험 제공이 밥짓는 코너의 주역할이지만, 매장의 고객 경험 측면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밥짓는 과정에서 고소한 밥내음이 매장에 은은하게 번지기 때문입니다. 구매전환율을 데이터로 정량화할 수는 없어도, 후각이 식욕을 자극하는 것은 분명합니다.





ⓒ트래블코드

또한 아코메야에는 '추보'라는 식당이 있습니다. 아코메야에서 판매하는 쌀과 반찬류를 직접 맛볼 수 있는 곳입니다.


점심은 1인당 2000엔, 저녁은 4000엔 정도로 높은 가격이지만 '돈내고 먹는 시식(Paid tasting)'을 하려면 대기는 필수

입니다. 보통의 식당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이지만, 추보에서 나오는 한상차림을 먹다보면 '갓지은 밥이 전하는 행복'이 무엇인지, 밥맛이 다르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식사를 하다보면 쌀과 반찬을 사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물론입니다.        




ⓒ트래블코드

그리고 아코메야에서는 매월 다양한 이벤트를 진행합니다. 이벤트의 구성을 보면 여러 종류의 햅쌀 오니기리를 맛볼 수 있는 바를 운영하거나, 뚝배기를 활용해 지은 밥을 시식하거나, 생산자들이 직접 설명하는 강좌를 열거나, 전통있는 혹은 개성있는 조리 기구나 주방 용품 전시회를 개최합니다.


쌀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고 경험을 제공하기 위한 목적 뿐만 아니라, 커뮤니티 형성을 통해 모객 및 재구매를 유도하기 위한 목적

도 있습니다.      



아코메야가 짓는 미래



ⓒ사자비리그

아코메야(AKOMEYA)라는 이름에서 코메야(KOMEYA)는 쌀가게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A는 어떤 의미를 담고 있을까요?


부정관사로 해석하면 '하나의 쌀가게'를 뜻하지만, 접두사로 해석하면 A가 Non의 의미가 있어 '쌀가게가 아닌 곳'이 됩니다. 

하나의 쌀가게이면서 쌀가게가 아닌 곳. 모순처럼 보이는 이름에서 쌀가게의 미래를 찾을 수 있습니다.        



시장성과 성장성만 본다면 쌀가게는 매력적인 사업이 아닙니다. 하지만 아코메야처럼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소재이자 구심점으로 쌀을 바라본다면 쌀가게도 수익성있는 사업을 만들어 갈 수 있습니다. 쌀가게를 한다고 했을 때 일본 전역에서 생산한 여러 종류의 쌀만 모아두고 판매했다면 지금의 아코메야는 없었을 것이고, 매출을 늘리기 위해 쌀과 관련없는 다양한 제품을 판매했다면 흔한 잡화점 중 하나에 그쳤을 것입니다.




쌀가게이면서 쌀가게가 아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쌀가게인 아코메야. 아코메야의 성공을 사자비 리그의 자본력과 명성으로만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아이템을 바라보는 관점을 시장의 성장이 아닌 소재의 속성으로 바꾸고, 소재를 중심으로 사업 영역을 균형감각있게 재정의했기 때문에 쌀의 소비량이 줄어드는 시대에도 아코메야가 쌀가게로 살아남을 수 있는 것입니다. 관점과 접근을 달리한다면 지는 산업 속에서도 뜨는 시장 기회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주소: 일본 〒104-6601 Tōkyō-to, Chūō-ku, Ginza, 2 Chome−2, 銀座2丁目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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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이 주인공인 라이프스타일 숍아코메야  

일본의 쌀 가게 아코메야는 쌀이 주인공이 되는 밥상을 즐기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구비한 원스톱 쇼핑 공간이자 제철 식재료로 상을 차려내는 밥집이다. 손님들은 최고의 쌀로 만든 한 끼의 모든 미감을 눈으로 맛보고 입으로 경험한다.




일본 각지에서 생산하는 품종 가운데 엄선한 쌀을 5단계 도정 중 선택해 구매할 수 있다.







다양한 종류와 용량의 쌀뿐 아니라 그릇과 조리 도구, 리빙 소품을 총망라했다.






아코메야 쌀 진공 패키지와 미니 됫박, 행주.




긴자 본점에서 운영하는 레스토랑 ‘아코메야 주방’의 메뉴.





금싸라기 땅값을 자랑하는 긴자 한복판에 쌀집이 있다면 믿어질까? 럭셔리 부티크가 넘쳐나는 긴자에 실제로 쌀집이 있다. 아코메야는 일본 각지의 쌀을 엄선해 원하는 대로 정미해서 판매하는 본격적인 쌀집이자, 쌀이 주연이 되는 밥상을 위한 식재료를 비롯해 식도락을 위한 그릇과 액세서리, 욕실용품까지 다양한 상품을 판매하는 라이프스타일 숍이기도 하다. 일본어로 쌀집인 ‘코메야’에 영어로 ‘하나’를 뜻하는 관사이자 부정의 접두어 ‘A’를 붙인 아코메야Akomeya는 ‘하나의 쌀집’이기도 하면서 ‘쌀집이 아닌 집’도 되는 재미있는 이름이다. 아코메야의 운영사인 사자비 리그Sazaby League는 스타벅스가 세계적인 인기를 끌기 훨씬 이전인 1995년에 이미 일본에 스타벅스를 조인트 벤처로 들여오기도 했고, 론 허먼Ron Herman, 캠퍼, 플라잉 타이거 코펜하겐, 셰이크 쉑 버거 등 패션과 리빙, F&B를 아우르는 글로벌 브랜드를 일본에 소개해온 거물이다. 이뿐 아니라 40년 된 출판사 창고를 개조한 감각적인 편집숍 라 카구La Kagu를 비롯해 카페 겸 리빙 숍 애프터눈 티 티룸Afternoon Tea Tearoom 등 일본의 로컬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역시 다수 거느리고 있는 사자비 리그는 2013년 3월, 도쿄 긴자에 아코메야를 처음 선보이며 쌀을 다시 한번 쿨하게 만들었다. 이곳에서는 일본 각지에서 생산하는 여러 품종 가운데 엄선한 쌀을 현미부터 백미에 이르는 5단계 도정 중 선택할 수 있고, 5종, 7종, 10종의 쌀을 작은 사이즈로 포장한 샘플러 패키지를 테스트해보고 자신의 입맛에 맞는 쌀을 고를 수도 있다. 또한 쌀 구매자라면 누구나 관심을 가질 된장이나 간장, 소금 같은 식품부터 야채와 생선 절임까지, 그리고 이런 식재료로 요리하는 데 필요한 조리 도구와 우아한 상차림을 위한 장인이 만든 식기, 식사 후 차를 내는 다기에 이르기까지 맛 좋고 멋 좋은 한 끼를 위한 모든 것을 한곳에서 구매할 수 있는 원스톱 쇼핑의 공간인 셈이다. 일본의 유명 상품인 이마바리 타월을 비롯해 욕실용품까지 구비한 아코메야가 취급하는 상품은 6000여 가지에 이른다. 이런 이유로 아코메야는 일본인을 비롯해 쌀 소비권 국가의 여행객은 물론 일본 특유의 문화적 상품을 찾는 서양 관광객에게도 인기가 높다. 아코메야는 긴자 본점의 성공에 이어 2017년 3월과 9월에 신주쿠의 쇼핑몰인 뉴우먼NEWoMan과 도쿄에서 멀지 않은 사이타마현 오미야의 복합 쇼핑몰 루미네Lumine에 각각 분점을 내기도 했다. 긴자 본점에서는 ‘아코메야 주방’이라는 레스토랑도 운영하는데, 이곳에서는 매달 바뀌는 쌀과 매장에서 판매하는 식재료를 중심으로 한 메뉴를 제공하며 고품질의 사케도 맛볼 수 있다. www.akomeya.j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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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을 대하는 지속 가능한 태도더 뜸 들이면 안 되는 쌀 디자인                  





‘한국인은 밥심’이라는 말도 시들해졌다. 쌀 소비량이 급감하고 밥보다 빵, 국수를 즐겨 먹는다. 어쩌면 밥이 주는 에너지란 쌀을 섭취해서 얻는 영양분만을 뜻하는 게 아닐 것이다. 밥은 지난 1000년 동안 한국인의 밥상에서 중심을 차지하며 사시사철 다양한 반찬과 함께 한국 문화유산의 기반을 다져왔다. 편의점 삼각김밥으로 한 끼를 때우고 간편한 즉석밥을 애용하는 오늘날, 편리함은 진보했으나 우리의 혀는 점점 더 무뎌간다. 맛을 판별하지 못하니 가타부타 의견이 없어지고, 애정도 사라지고 있다. 이런 위기는 쌀이 주식인 일본과 중국, 대만에서도 마찬가지다. 주식이 아닌 기호 식품으로서의 쌀이 회자되는 이유다. 책을 매개로 라이프스타일을 이끄는 서점이 생겨나며, 책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듯 이제는 쌀을 테마로 한 라이프스타일 숍이 주목받고 있다. 물론 그곳에서 물건을 산다고 해서 쌀에 관한 풍성한 식문화가 발생하지는 않는다. 이를 지속시키는 것은 결국 개개인이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일 음식’을 대하는 방식을 선택하는 삶의 태도다. 디자이너의 평생 밥심이 될, 지속 가능한 크리에이티브를 만들어가고 있는 오늘날의 쌀과 그 주변을 살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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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뜸 들이면 안 되는 쌀 디자인쌀을 생산하고 소비하고 맛 보는 디자인      


벼를 키운다
소농이 벼농사를 지으려면 홀테, 목줄, 모판, 낫, 정미기, 탈곡기, 까불리기, 태양열 건조기가 필요하다. 이 중 디자이너가 개입할 수 있는 부분은 어디까지일까. 


우보농장 이근이 농부가 벼를 재배, 생산, 판매하며 실제로 사용하는 도구. 일본 비전화공방의 정미기





됫박, 못줄.




쌀을 산다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1인 가구가 쌀 제품을 구매하는 장소 1위는 소형 슈퍼마켓이다. 여기서 그들은 즉석밥을 살 가능성이 가장 높다. CJ제일제당의 햇반은 2017년 3억 3000만 개가 팔렸다.





자연 속 내츄럴쌀눈, 명품 보성 유기농쌀, 명품충주추청880.




하루 오니기리, 이마트 피코크 수삼 영양밥, 오뚜기 맛있는 오뚜기밥, CJ제일제당 햇반 큰공기, 이마트 노브랜드 쌀밥 한 공기.




밥을 먹는다 


국내 밥솥 4대 중 3대는 쿠쿠전자 제품이라고 한다. 이런 가운데 디앤디파트먼트 서울점은 삼화금속의 무쇠솥을 셀렉트 상품으로 판매 중이다. 이마트 자주는 하얀 식기 시리즈 ‘라온’을 모던한 한식 상차림의 표준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쌀이 밥이 되는 식탁 위 디자인은 곧 ‘나’를 대접하는 태도다.




남대문상가에서 산 미니 가마솥.




도예가 이기조의 밥그릇, 남대문상가에서 산 스테인리스 밥공기, 자주의 라온 공기, 호호당의 유기 수저 세트, 자주의 직사각형 접시 17cm, 남대문상가에서 산 미니 돌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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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FEATURE지금, 국내 쌀 문화 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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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Read invented by Tea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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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01%의 토종 크리에이티브보안여관 <먹는 게 예술이다. 쌀> 프로젝트  

<먹는 게 예술이다. 쌀> 프로젝트는 여느 토종 쌀 전시가 아니었다. 농부가 지켜낸 볍씨, 예술가의 창의적 발상, 요리사가 지어낸 쌀밥이 어우러져 서사가 충만한 ‘쌀’을 우리 몸으로 다시 받아들이는 문화적 순환의 첫술이었다.




지난 10월 <먹는 게 예술이다. 쌀> 프로젝트가 열린 통의동 보안여관.





이소요 작가와 이근이 농부가 협업해 제작한 ‘토종 벼’ 표본.










아트스페이스 보안1942에서 전시한 대나무 도시락, 주걱, 쟁반과 팝업 마켓에서 판매한 토종 쌀 비누. 07 김지수 작가의 ‘공중정원’. 빛과 냄새, 습도를 예민하게 조정한 이끼에서 토종벼가 싹을 틔우고 있다.



“우리의 내장과 치아, 우리의 문화, 식탁은 쌀과 밥을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2017년 가을, 통의동 보안여관에서 선보인 <먹는 게 예술이다. 쌀> 프로젝트의 개요 중 강렬한 한 문장이다. 보안여관의 생활 밀착형 예술 시리즈 ‘000 예술이다’의 첫 번째 프로젝트의 주인공은 쌀, 그것도 토종 쌀이었다. 1914년 조선총독부 식산국 자료에 따르면 당시 한반도에서 조사된 토종 벼 품종은 1451종에 달했다. 이후 토종 벼는 일제강점기와 박정희 정권을 거치며 우리 땅에서 강압적으로 밀려났다. 1940년대 군량미 보급을 위해 전체 재배 면적의 90%에 일본 품종을 심었고, 1960년대 중앙정보부는 ‘식량 자급’이라는 단 한 가지 목표에 부합하도록 통일벼, 유신벼 등의 개량에 집중하며 다양성을 포기해버렸다. 보안여관은 이러한 식민지 정책이나 국지적인 벼 재배 환경 연구에만 머물지 않았다. 보안여관 최성우 대표는 기업화된 농업과 음식이 단절시킨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회복할 실마리를 밥상에서 찾고자 했고, 무엇보다도 새까만 까락이 흩날리는 토종 벼의 멋에 흠뻑 취했다. 오늘날 사회·문화를 설명할 수 있는 연구 대상, 타고난 조형미를 풍기는 탐미적 대상으로 토종 벼를 이야기하게 된 이유다. 2016년 늦봄부터 예술가, 토종 벼 재배 농부, 도시 농부, 요리사, 연구가 등 다양한 분야 사람들이 모여 10차례 스터디를 진행했다. 쌀에 대한 강연을 열고, 농장을 방문해 직접 모내기하고, 15개 품종의 토종 쌀 테이스팅 워크숍을 열고, 전국 토종 벼 생산지를 찾아가 다품종 소량 생산의 토종 벼를 놓지 않는 소농들의 태도를 들여다봤다. 이 과정에서 ‘풍토, 시간, 사람’이라는 열쇳말을 찾아냈다. 이를 주제 삼아 지난해 10월 16일에서 11월 4일까지 <흔들리며 서서; 교감식물> 전시를 열기도 했다. 전시 기간 동안 좌담, 테이스팅 워크숍, 팝업 스토어, 마켓 등 맛과 멋을 모두 경험할 수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어우러졌다. 전시에서는 토종 벼의 주변을 이루는 풍경을 채집한 김준의 사운드 아카이브 ‘층간소음’, 이소요의 60여 종 토종 벼 표본 ‘우보농장의 토종 벼 품종들’, 토종 벼의 성장기를 시각, 후각 등 공감각적으로 표현한 김지수의 설치 작품 ‘공중정원’ 등 식물을 단순한 미적 대상이 아닌 하나의 생물체로 바라본 작가들이 벼에 대한 새로운 미학적 관점을 제시했다. 전체 프로젝트의 자문을 맡은 우보농장 이근이 농부는 ‘순환하는 삶, 노동이 소외받지 않는 삶’을 동경하고 실천하는 13년 차 도시 농부다. 화학비료가 없던 5000년 전 한국 전통 농법 그대로 토종 벼를 재배하는 그는 ’토종’을 ‘자기가 농사짓는 땅에 고정화된 것’이라고 정의한다. 우리는 종종 크리에이티브의 진정성을 이야기할 때 ‘아이덴티티’, ‘정체성’, ‘우리다움’을 모색한다. 어디서부터를 진정한 ‘우리 것’이라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면 바로 지금, 여기서 ‘반드시 고정시킬 것’부터 보살피는 것이 독창성의 타당한 뿌리가 아닐까. 디자이너들이 토종 벼에 주목해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먹는 게 예술이다. 쌀> 프로젝트 자문


이근이 우보농장 농부


 “이 땅에서 자랐던 어떤 것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랄까? ”





이근이 13년 차 도시 농부로 고양시 벽제동에서 토종 벼 농사를 짓고 있다. 내 밥상의 자급을 목표로 밭 작물로 시작한 것이 쌀로 확대됐고, 지난 2월에는 토종 쌀 64종을 수확했다. www.facebook.com/Ubonongjang


농부에게 토종 벼를 보전하는 건 어떤 의미인가?


5000년 역사 동안 인류가 농사를 이어온 것은 순환하는 삶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화학비료와 농약, 개량된 벼가 나온 것은 100년 남짓한 최근의 일이다. 농사의 핵심은 순환하는 씨앗인데, 그게 바로 토종만으로 가능한 거다. 쉽게 말해 개량종은 한 해가 지나 다시 씨앗을 수확해 심으면 전과는 다른 게 나오는 경우가 많다. 근데 토종은 심으면 전에 심은 모습 그대로 나온다. 사실 국내 쌀 문제 중 토종 벼에 대한 것은 0.000005%밖에 안 되는 이야기일 거다. 그런데 이건 근본에 대한 문제인 것 같다. 이 땅에서 자랐던 어떤 것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랄까? 최소한 1% 정도는 그런 것이 남아 있어도 되지 않을까? 한 품종이 하나의 형태로 고정되기까지 몇백 명의 농부가 시간을 들여 육종 방식을 찾아냈을 텐데, 별 볼일이 없다면 또 모르겠지만 개성도 있고 맛도 훌륭하니 욕심이 났다.



보안여관 같은 문화·예술 기관과 협업하는 농부는 흔치 않다. 


토종 벼에 빠진 게 단순히 종자 보존 때문만은 아니다. 나 혼자 할 수도 없는 거고 억지로 될 일도 아니다. 씨앗으로 볼 때는 몰랐는데, 커가면서 바뀌는 전혀 다른 모습이 마냥 아름다웠다. 다양성의 아름다움에 반한 거다. 일반적으로 떠올리는 개량종 벼의 모습과 토종 벼는 많이 달랐다. ‘내가 알던 한 가지 모양, 색깔, 키가 아니었구나’ 깨달았다. 모든 식물은 자연과 어우러지며 자기 모습을 드러낸다. 그건 인간도 마찬가지다. 내게는 인간을 탐구하는 것과 같은 흥미가 있었다. 겉을 보건 그 속을 보건, 문화적으로 혹은 예술적으로 표현될 여지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토종 벼가 쌀 문화를 풍부하게 하는 데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맛과 멋의 다양성을 불어넣는 일이다. 지금까지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15차례 이상 테이스팅 워크숍을 진행했다. 올봄에는 ‘내 논, 내 품종 갖기’라는 공유 농업 프로젝트도 추진할 예정이다. 쌀 맛이 다 비슷비슷했다면 난 진작에 안 했을 거다. ‘쌀이 이렇게 다를 수 있어?’ 했던 맛의 다양성이 가장 먼저 굉장히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토종 벼는 품종의 고유성 자체가 문화적 상품성을 띠고 있다고 본다. 예를 들어 함경도에서 키우던 북흑조라는 벼는 호방한 멋이 있다. 겉이 검고 까락이 없고, 대나무처럼 대가 굵고 마디가 있다. 서 있는 것만 봐도 멋있어서 소위 말하는 남성미가 느껴진다. 나는 그저 생산자이자 기획자이지만 창작자라면 사진이나 음악에도 영감받을 요소가 분명히 있다고 본다. 이만한 역사성과 스토리가 있는 개량종이 있을까? 단순히 농민들이 힘들게 키운 농작물을 사준다는 시혜적인 관점이 아니라 ‘이 안에 진짜가 있다, 영감의 보고’가 있다고 본다면 풀어나갈 수 있는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쌀과 관련된 상품으로 막걸리의 가능성을 종종 이야기해왔다. 


1910년대에 일본은 조선의 주막에서 파는 술을 조사했다. 쌀 확보를 위해 막걸리를 못 빚게 하려는 의도에서였다. 당시 조사에 따르면 한반도 전국에 12만 개 주막이 있었다. 우리는 여관을 주막이라 할 정도로 술 먹는 문화가 남달랐다. 12만 개라고 하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한 막걸리가 있었다는 얘기다. 통계에 잡히지 않은 가정집까지 더하면 엄청났을 거다. 그 막걸리는 분명 그 동네의 쌀로 빚었을 것이다. 빚는 사람마다 다르고 빚을 때마다 맛이 다른 이 술 문화를 지금까지 잘 보존했다면 와인이나 사케는 게임이 안 될 정도의 맛의 다양성이 확보되었을 거다. 나는 오늘날 그 가능성을 토종 벼에서 본다. 북흑조로 술을 빚었을 때와 자색이 나는 자광도로 빚었을 때 전혀 다른, 색깔부터 맛, 스토리까지 특색이 확실한 술이 나온다.





<먹는 게 예술이다. 쌀> 프로젝트 디렉터


최성우 보안여관 대표



“대중문화 안에서 이뤄지지 않으면 지속되지 않는다.”




최성우 프랑스에서 미술사와 예술경영학을 공부한 뒤 1992년부터 프랑스 문화성 문화정책부문 연구원으로 일했다. 현재 일맥문화재단 이사장이자 통의동 보안여관과 아트스페이스 보안1942 대표를 맡고 있다. www.boan1942.com


‘000 예술이다’ 프로젝트 시리즈의 첫 번째 주제로 음식을 다루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내가 프랑스 문화성에서 일하던 1990년 초, 당시 문화부장관 자크 랑Jack Lang이 식품과 관련된 부서를 프랑스 문화성 산하기관으로 신설한 데 대해 문화계 원로들이 크게 반발해 이슈가 된 적이 있다. 미식의 나라 프랑스에서도 정통성을 따지는 이들은 ‘먹는 행위’를 하위 문화로 본 것이다. 다양한 층위의 문화가 모두 공존해야 한다고 말한 자크 랑에게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예술 또한 순수 미술만 있는 게 아니라 생활문화, 디자인, 장인의 영역이 있듯 여기에 음식 문화의 영역도 맞닿을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쌀 중에서도 토종 쌀에 주목한 이유는 무엇인가? 


식량으로나 종자로나 분명한 상징성이 있다고 봤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냥 봐도 조형적으로 너무 예쁘지 않나. 까락이 그대로 살아 있는 야생적인 이 모습 말이다. 대량생산용 기계로 탈곡을 하다 보면 질긴 까락이 엉켜 기계가 고장 나기 일쑤다. 이에 점차 개량을 해서 이젠 벼에 까락도 잘 없다. 내게는 첫눈에 식물이라기보다 살아 있는 곤충처럼 느껴졌다. 이것은 어떻게 이런 모양으로 생길 수 있나 들여다보다 만난 첫 번째 키워드가 ‘토종 종자’였다.토종 쌀 등 전통문화를 지키는 방법으로 비즈니스적 측면을 강조하는 편이다. 토종 쌀뿐 아니라 그 어떤 문화·예술도 지속적으로 소통되고자 한다면 소위 말하는 ‘사업성’을 고려해야 한다. 토종 쌀을 살리겠다고 정부 예산을 사용하거나 다른 일을 해서 마련한 비용으로 운영, 활동비를 갈음하는 일은 오래 지속하기가 힘들다. 그 자체로 소위 영업이 되고 상품이되어야 한다. 대중문화 안에서 이뤄지지 않으면 지속되기 어렵다.




쌀 문화를 라이프스타일로 만든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순수 예술과 대안적인 액티비즘의 간극이 겹치는 지점에 라이프스타일이 있다고 본다. 혹자는 라이프스타일이라는 것을 유행이나 반짝 트렌드로 이야기하곤 하는데, 라이프스타일은 사실 나의 정체성이다. 내가 어떤 삶의 결을 갖고 살아갈지에 대한 정체성을 일상에서 드러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옷도 신발도 음식도 자신의 정체성대로 취하는 것이기에 라이프스타일이야말로 진정한 정점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보안여관은 음식 문화에 대한 주체성을 강조하는 것 같다. 


아무거나 먹는다는 것은 곧 음식에 대한 주체성이 없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음식 산업과 문화는 전체 산업 구조에서 아주 큰 비중을 차지한다. 그 안에서 공장식 축산 시스템과 신자유주의적 곡물 재배 논리 등이 논의될 수 없는 수준이라면, 새로운 질서를 만들기 어렵다. ‘테이스트’라는 게 굳이 없어도 된다고 여기는 것은 생각보다 심각한 문제다. 자신만의 취향이 없는 사람이 어떻게 혁명가가 될 수 있을까?




한국에서 아코메야처럼 쌀을 중심으로 한 라이프스타일 숍은 시기상조일까? 


한국은 무엇보다도 일단 밥에 대한 태도를 끌어올려야 한다. 일본의 쌀을 이해하려면 밥과 곁들이는 각각의 음식 문화를 숙지해야 할 정도로 밥을 둘러싼 다양한 문화가 존재한다. 쌀 가공품도 어마어마하다. 사케만 해도 수천 종이 있고, 축구 선수 나가타도 은퇴 후 사케를 빚을 정도다. 넷플릭스의 <사케의 탄생>이라는 다큐를 보면 그 바탕을 엿볼 수 있다. 국내에도 최근 들어 막걸리에 대한 새로운 흐름이 생겨나고 있지만 쌀 문화 자체가 하층 문화로 통용되는 한 한계가 있다. 서로 다른 쌀 품종이 인지되고 다양한 가공품과 주변의 그릇, 주방 도구가 함께 발전해야 한다.




보안여관이 준비 중인 5월의 새로운 전시도 쌀과 관련이 있다고 들었다. 


올해가 한영 교류의 해이고 보안여관도 문화 교류 기관 중 하나다. 한국과 영국에서 같은 주제로 전시를 할 예정이다. 표면적으로 쌀이라는 제목을 달지는 않더라도 결국에는 쌀 문화 이야기가 나온다. 지난해 쌀 전시가 식물로 쌀을 본 거라면, 이번에는 ‘곡물의 이동’을 통해 이주 문제, 자립과 생존 문제, 식민주의와 비식민주의 같은 영역을 다룬다. 서남아시아계 이민자 출신으로 쌀이 주식인 문화를 지닌 채 영국에서 살아가는 영국 작가들과 한국 작가들이 교류한다. 국내 토종의 문제만이 아니라 8300km 밖에서도 여전히 쌀 문화를 둘러싼 고찰이 있다는 것을 보여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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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집, 밥집 그리고 동네 사랑방동네, 정미소  

다양한 연령대의 1~2인 가구가 많은 성산동의 어느 골목에 쌀을 도정해주는 정미소이자, 생산자가 분명한 식재료로 한 끼를 차려내는 밥집이 있다. 건강한 쌀이 주인공인 밥상 너머에는 건강한 커뮤니티가 있다.







1호점인 동네, 정미소 성산점에 이어 서대문점 오픈을 앞두고 있다.




하루 최대 40인분의 식사를 준비하며, 상에 오른 모든 음식의 재료를 구매할 수 있다.




우보농장의 토종 벼를 팔고, 매일 아침 새로 도정한 쌀로 밥을 짓는다.






동네정미소는 각지의 농부들에게 구입한 곡물과 콩, 깨 등을 소포장 단위로 판다.


‘성미산마을’은 행정구역상 이름은 아니다. 성미산은 마포구 성산동, 서교동, 망원동이 만나는 지점에 솟은 해발 66m의 나지막한 뒷동산이고, 마을이란 이 근방에 거주하는 1000여 명의 주민들이 1993년부터 공동 육아와 공동 교육 등을 실천해가며 이룬 대안적인 공동체 모델을 이른다. 다양한 이상적인 실험이 가장 먼저 일어나는 이 동네 골목에 모던한 정미소가 들어섰다. 지난 12월 문을 연 동네정미소 성산(이하 동네정미소)은 다양한 품종의 쌀과 농가 직거래 농산물을 팔고, 갓 도정한 쌀이 주인공인 식사를 제공하는 쌀가게이자 밥집이다. 53㎡ 남짓한 크지 않은 공간에 4개의 테이블을 두고 하루에 점심과 저녁 합쳐 최대 40인분 식사를 판매한다. 이천 쌀, 경기미 등 지역 이름을 내세운 쌀 대신 추정, 신동진, 하야미, 대보, 호품 등 낯설지만 독특한 개성이 느껴지는 이름의 쌀을 400g 소량 패키지에 판매한다. 벽면을 둘러싼 선반에는 다양한 품종의 개량 쌀과 토종 쌀을 비롯해 콩, 밀가루 등 잡곡류와 김, 다시마 같은 해조류, 수제 막걸리와 맥주 등 지역에서 담근 술, 공정무역으로 들여온 다양한 목재 식기류가 진열돼 있다. 한 끼 잘 차려내기 위한 밥과 반찬은 물론 소품까지 구색을 갖췄다.




이곳에서 판매하는 상품은 운영자들이 오랜 신뢰 관계를 구축한 전국 각지의 협동조합이나 일반 기업, 개별 농부에게서 직접 구매한다. 여기서 ‘직거래’란 세간에서 통용되는 의미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흔히 직거래라고 하면 유통 마진을 줄인 저렴한 제품으로 생각하죠. 예를 들어 삼겹살 데이를 맞이해 정육 식당들이 농가나 대형 유통업체와 직거래로 물량을 수급하기 때문에 소비자에게 싸게 팔 수 있다고 말해요.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 경우 농민들과의 소통은 하나도 직접적이지 않아요. 동네정미소는 우리 밥상에 올라오는 농산물을 공급하는 농가와 소비자가 서로를 알아가는 관계를 추구합니다. 저희가 대부분의 쌀을 구매하는 곳은 괴산에 있는 웅골이라는 작은 마을이에요. 이곳의 농부와 땅과 대규모 정미소가 우리의 밥상과 직접적으로, 가장 가까이 연결되는 것이죠.” 황의충 공동대표가 말한다. 정미소를 운영하는 황의충 공동대표는 도시 농업 활동을 10년 이상 해온 도시 농부이자 활동가다. 그는 현재 서울도시농업시민협의회(구 서울도시농업네트워크)에서 운영위원을 맡아 농가와 도시 가정을 잇는 직거래 장터와 교육용 생태 텃밭을 운영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는 빵과 국수에 주식의 자리를 내준 쌀이 점차 기호 식품으로 변해가는 요즘의 ‘트렌드’에서 농민들이 소외되는 현실이 안타까웠다. ‘서울의 어느 작은 골목과 시골의 작은 농가가 교류하는 건강한 커뮤니티’가 그가 구상한 이상적인 동네정미소였던 이유다. 올해 안에 서대문에 2호점을 낼 예정인 동네정미소는 올봄을 시작으로 다양한 주민 모임이 이뤄지는 장소로 기능하도록 할 계획이다. ‘맛있게 밥 짓기’, ‘쌀 고르는 법’, ‘막걸리 빚기’ 등 주민들과 함께하는 다양한 활동으로 일종의 동네 사랑방으로 거듭나겠다는 것. 이를 통해 동네정미소는 결국 건강한 밥상이 곧 건강한 커뮤니티의 근간이 될 수 있음을 자연스레 상기시킬 것이다. 인스타그램@local_jungmiso




Interview


황의충 동네정미소 공동대표, 서울도시농업시민협의회 운영위원



“쌀 품종별 세세한 특성을 알아가는 재미를 안겨주고자 한다.”





지난 3개월간 동네정미소를 운영하며 느낀 주민들의 쌀 인식 수준은 어땠나? 


일반인이 잘 모르는 쌀 중에 농민청에서 김밥용으로 만든 ‘백진주’라는 기능성 쌀이 있다. 식어도 맛이 변하지 않아 김밥에 사용하기에 제격이지만 애초에 이런 것이 있는 줄도 모르니까 사려는 시도조차 할 수가 없다. 각기 기능이 다른 다양한 쌀을 어떤 방식으로 홍보할지 고민이다. 백화점이나 마트에서는 가격을 높여서 프리미엄 쌀이라고 판매하는 전략이 대부분인데, 이것이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우리 생각과는 거리가 있다. 동네정미소는 소비자에게 쌀 품종별 세세한 특성을 알아가는 재미를 안겨주고자 한다. 커뮤니티 활동을 강화하는 쪽으로 나아가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주식 자리를 내준 쌀이 이제 기호 식품으로 다가가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일본의 아코메야가 대표적인데.


국내에도 백화점이나 대형 마트를 중심으로 이런 흐름이 있는 것으로 안다. 하지만 농민과 일반 소비자 간 관계의 측면에서 이러한 흐름이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가 우리의 관심사다. 아코메야 같은 곳과는 아예 결이 다르다고 해야 할 것이다. 대부분 농민은 일련의 (트렌디한) 흐름에서 소외되는 경우가 많기에, 서울의 작은 골목과 시골의 동네가 교류하면서 만들어가는 커뮤니티가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 시작점이었다.




좋은 쌀로 지은 좋은 밥맛이 대중화되면 입맛이 상향 평준화되면서 자연스레 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흔쾌히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자 할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동의하는가? 


이렇게 말하면 실망할지도 모르겠지만(웃음), 쌀은 결국 밥이니까 맛이야 다 비슷비슷하다. 다만 미세한 차이가 존재할 뿐이고, 이 미세한 차이를 일렬로 놓고 보면 이 끝과 저 끝이 꽤 차이가 난다는 것이다. 이 차이를 찾아가는 재미를 느끼면 그만이다. 커피를 즐기는 것과도 비슷하다. 아메리카노, 카푸치노, 마키아토를 달리 부르기 시작하면서 커피에 대한 관심이 비롯되고, 원두의 산지부터 로스팅 기간까지 세세한 관심이 생긴다. 결국 생활적인 습관이자 삶의 재미가 되는 모든 과정이 커피에 대한 경험 아닌가. 쌀이나 밥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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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쌀 요리를 독일 내 주방으로라이스훙거  

10년 전만 해도 독일에는 이른바 품질 좋은 쌀에 대한 인식도, 다양한 쌀 요리에 대한 정보도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었다. 쌀에 대한 다양한 욕망을 분출하는 데 목마른 젊은 사회적 기업가들로 구성된 이커머스 스타트업 라이스훙거는 쌀 소비를 쉽고 특별한 문화적 경험으로 재포장한다.







‘쌀에 대한 식욕’이라는 브랜드명의 타이포그래피를 전면에 내세우고, 쌀 품종별로 다른 컬러를 적용했다.




스시 키트, 커리 키트 등 다양한 쌀 요리에 필요한 재료와 조리 도구를 함께 담아 판다.



라이스훙거는 14개국에서 22종이 넘는 다양한 품종을 수입하고 유통하는 독일의 이커머스 쌀 브랜드다. 공동 창업자인 이란계 독일인 소흐랍 모하마드Sohrab Mohammad는 쌀을 주식으로 했던 부모님에게 ‘쌀은 단순히 배를 채우기 위한 것이 아닌, 땅의 향과 풍미를 품은 맛의 원천’이라고 배웠다.독일 브레멘에서 산업 엔지니어링을 공부하던 대학생 시절, 그는 학교 식당에서 나오는 형편없는 쌀 요리를 보고 ‘도대체 독일 쌀은 왜 항상 맛이 없는가’ 하는 의문을 품었다. 때마침 독일 정부 산하기관인 품질 평가 법인 슈티프퉁 바렌테스트Stiftung Warentest가 독일 쌀 제품의 저급한 품질을 다룬 보고서를 접하고 더욱 다양하고 품질 좋은 쌀 제품의 시장성을 읽었다. 특히 사회적 기업 활동에 대한 그의 꾸준한 관심도 쌀이라는 테마와 잘 맞아떨어졌다. 이후 동창생 토르벤 부티어Torben Buttjer와 함께 세계 각국의 품질 좋은 다양한 곡물을 들여와 온라인에서 판매하기 시작한 스타트업이 2010년 설립한 라이스훙거다. 라이스훙거는 브레멘의 항구 지역에 2000㎡ 규모의 저장고를 두고 직접 쌀을 관리한다. 라이스훙거의 비즈니스 핵심은 각국의 농부에게 직접 매입한 고품질의 쌀과 콩 등을 온라인 판매를 통해 중간 마진을 뺀 합리적 가격으로 소개한다는 것이다. 현재 독일을 비롯한 유럽 전 지역에 걸쳐 회원이 10만 명이 넘는다. 라이스훙거는 2013년부터 소득수준이 낮은 아시아 국가에서 쌀은 특히나 중요한 주식이자 핵심 경제 수단이라는 점에 주목해 동남아시아 소농의 자급자족 쌀농사를 지원하는 프로젝트에도 참여 중이다. 독일 기반의 구호 물자 사회 단체 CARE와 연계해 ‘라오스의 식량 안보Food Security in Laos’라는 프로젝트를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라이스훙거가 매달 기부하는 돈은 라오스의 산골 지역 닥청Dakcheung의 농부 교육과 농사지을 땅, 장비, 비료 등을 후원하는 데 쓰인다. 론칭한 지 8년이 지난 지금 라이스훙거는 직원이 60여 명 규모로 몸집이 커졌지만 이들의 목표는 여전히 단 하나다. 바로 ‘세계 곳곳의 가장 좋은 쌀을 독일 부엌으로 가져오는 것’. 그 방식은 반드시 쌀알일 필요는 없다고 봤다. 라이스훙거 홈페이지를 보면 인도 히말라야 산기슭이나 프랑스 카마르그, 남미 안데스산맥 등 각국의 공인 청정 지역에서 수확한 다양한 쌀만큼이나 리소토 라이스 버거, 라이스 푸딩, 죽 등 쌀 가공식품이 눈길을 끈다. 실용적인 소분용 저장 용기와 식기류, 자체 전기밥솥까지, 쌀을 소비하는 데 필요한 도구와 재료를 판매하는 셈이다. 특히 다양한 쌀 요리가 생소한 유럽 소비자들에게 쌀을 주식으로 하는 나라의 대표적인 인기 메뉴를 키트 형식으로 소개하는 큐레이션 서비스 ‘라이스 박스’가 흥미롭다. 이를테면 다양한 커리 페이스트가 특징인 ‘태국 커리 박스’에는 끈적끈적한 태국산 찰밥의 재료인 재스민 쌀과 함께 적색·녹색·황색 페이스트, 코코넛 밀크, 팜 슈거를 함께 제공하는 것이다. 초보 스시 마스터를 위한 ‘스시 박스’에는 스시에 가장 적합한 일본 고시히카리와 함께 김, 생강, 간장, 와사비, 쌀 식초, 그리고 스시 롤을 마는 나무 발은 물론 젓가락도 들어 있다. 이 외에도 쌀 아마추어를 위해 세 가지 쌀 요리를 담은 ‘테이스티 박스’, 건강한 다이어트 식단에 꼭 맞는 쌀로만 구성된 ‘피트니스 박스’ 등을 레시피와 함께 제공해 생소한 쌀 요리를 쉽고 간단하면서도 특별한 경험이 되도록 했다. www.reishunger.de







Interview


크리스 베인 


제이콥 제이콥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쌀이라는 제품은 매우 직관적인 대상이기에 은유적으로 전달할 필요가 없다고 봤다.”




라이스훙거 창립 초기부터 현재까지 브랜딩과 크리에이티브 디렉션을 맡아오고 있다. 2010년 처음 시장에 나왔을 즈음 쌀에 대한 독일인들의 인식은 어땠나?


1990년대 말까지만 해도 쌀은 독일에서 일반적으로 구매하는 제품이 아니었다. 라이스훙거 브랜딩을 진행할 당시만 해도 독일에는 쌀 종류가 많지 않았다. 쌀이 건강한 식재료라는 인식은 있었지만 다른 요리에 곁들여 나오는 부재료 같은 느낌 정도였다. 그러다 점점 쌀을 주재료로 한 요리가 하나둘 등장하기 시작했고, 맛을 따지는 사람도 늘어났다. 온라인으로 쌀을 사는 개념이 흔치 않았기에 사람들은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공유하는 데 적극적이었다. 온라인으로 쌀을 판다는 아이디어 자체가 훌륭한 결정이었던 것 같다.




독일에서는 쌀이 주식이 아닌 식재료라는 점에서 특히 신경 쓴 부분이 있다면?


쌀같이 단순한 제품, 그렇지만 무엇보다도 품질이 중요한 제품에는 특히나 강한 브랜딩이 필요하다고 봤다. 소비자가 냄새를 맡거나 직접 만지면서 그 품질을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디자인을 통해 단번에 쌀의 품질을 알아볼 수 있게 하는 데 주력했다. 패키지로 갈색 종이 봉투를 사용한 건 일단 패키지 가격이 저렴해야 했고, 쌀이라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식재료 성격을 반영하는 데 갈색 봉투만큼 적절한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평범한 갈색 봉투를 라이스훙거의 브랜드 아이덴티티로 삼기 위해 로고 등 그래픽 요소를 활용했다.




시장에서 라이스훙거의 차별화를 위해 적용한 크리에이티브 전략은 무엇인가? 


독특한 네이밍과 심플함을 유지하는 것이다. 라이스훙거는 ‘쌀에 대한 식욕’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데, 독일식 표현으로는 다소 독특한 조합이라 소비자의 관심을 끄는 데 한몫했다.단순하면서도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디자인을 원했기에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갈색 봉투와 과감한 타이포그래피를 선택했다. 우리가 파는 쌀이라는 제품은 매우 직관적인 대상이기에 은유적으로 전달할 필요가 없다고 봤다. 그래서 제품 자체를 충실하게 보여줄 수 있도록 패키지는 최대한 단순화했고 이미 독특한 네이밍에 볼드한 산 세리프를 적용했다.


www.jakobjakob.c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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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디자이너가 연 동네 쌀집오코메야  

10년 전만 해도 가게들이 줄줄이 폐점하던 도쿄의 미야카와 상가에 젊은 크리에이터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작고 독특한 공간들이 생겨났고 발걸음이 늘었다. 디자인이 남다른 쌀가게도 그 중심에서 버젓이 운영 중이다.







미야카와 상가에 있는 오코메야는 오래된 야채 가게를 개조한 작은 쌀가게다.




오코메야에서 판매하는 소금.



빌딩 숲 도쿄의 중심부에서 벗어난 남쪽 동네 도고시긴자의 상점가는 동네 주민들의 생활 터전이자 걷기 좋아하는 여행객들이 즐겨 찾는 곳으로 유명하다. <타임아웃 도쿄Time Out Tokyo>가 매년 도쿄의 인기 스폿을 선정하는 ‘러브 도쿄Love Tokyo’ 리스트에서 2017년 가장 인기 있는 추천 활동 중 하나로 ‘도고시긴자 상가의 바와 상점 방문하기’를 선정할 정도로 최근 들어 활기를 띠는 곳이기도 하다. 도고시긴자 중심 상가에서 500m 남짓한 거리에 있는 미야카와 상가는 중심 상가와 달리 예스러운 정취를 간직하고 있다. 이곳은 마치 관광객이 몰려오기 이전의 서촌처럼 오래된 철물점과 동네 식당, 개성 있는 작은 카페가 어우러져 운치를 더한다. 미야카와 상가는 전쟁 이후 한때 도쿄를 대표하는 상가였으나 1968년 도고시 역이 생기면서 역 주변으로 지역 상권이 옮겨가 쇠락의 길을 걸어왔다. 가게를 운영하던 노년층이 하나둘 은퇴하며 폐점한 가게가 늘어가던 국면이 전환점을 맞이한 것은 10여 년 전, 젊은 크리에이터들이 하나둘씩 모여들며 문 닫은 가게를 새롭게 탈바꿈시키면서였다. 2015년 2월 이곳에 들어선 오코메야Okomeya 역시 문 닫은 지 오래된 야채 가게를 새롭게 탄생시킨 쌀가게다. 오코메야는 우오누마 고시히카리 품종으로 유명한 니가타 지역에서 운영자 가족이 직접 재배한 최상급 고시히카리 쌀 제품을 중심으로, 식사 대용 오니기리와 쌀 음료, 쌀 식초, 유기농 주스 등을 파는 작은 가게다. 오코메야를 시작한 오쓰카 아쓰오는 어린 시절 조부모님 댁이 있던 이곳 도고시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는 2008년, 아직 도고시에 젊은이들이 많지 않던 시기에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 웹과 IT 프로젝트를 전문으로 하는 크리에이티브 에이전시 오완OWAN을 설립했다. 그는 미야카와 상가를 젊은이들에게 주목받는 곳으로 변화시키는 데 기여한 대표적인 인물로, 2011년 크리에이터들을 위한 카페 페드라 브랑카Pedra Branca를 연 데 이어 폐업 위기에 처한 로스터리를 개조한 커피숍 미스터 커피Mr. Coffee를 설립해 리테일 운영에도 두각을 보였다. 초기부터 함께 운영 방안을 논의해온 현 오코메야 대표 가쿠하리 유스케 역시 미야카와 상가에서 고향 농산물을 이용해 만든 아이스크림 가게 허스키 젤라토를 운영하며 동네에 활기를 불어넣은 젊은 크리에이터다. 16㎡의 이 작은 공간은 일본의 유명 건축가 조 나가사카가 디자인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조 나가사카는차츰 다시 활기를 찾아가는 미야카와 상가의 이야기와 ‘새로운 쌀집’이라는 콘셉트에 흔쾌히 요청을 받아들여 가장 효율적인 동선으로 공간을 완성했다. 오코메야는 지난 1년간 쌀과 관련된 책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등 다양한 형태의 팝업 스토어를 시도했다. 올해부터 오코메야 대표를 맡게 된 가쿠하리 유스케는 본격적으로 오코메야 2.0이라 부를 만한 운영 전략을 펼칠 예정이다. 주력 상품을 쌀과 돈부리로 삼고, 니가타에서 생산한 쌀로 만든 과자류와 역시 쌀을 원료로 한 다양한 화장품에 신선한 패키지를 더해 젊은 층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상품을 디자인하는 것이 그 시작이다. www.facebook.com/okomeya.tokyo





다양한 쌀로 만든 러스크.




쌀로 만든 휴대폰 케이스 베리 라이스Very Rice.




사케를 제조한 쌀로 만든 코즈메틱 제품.




Interview



오쓰카 아쓰오 오완 대표,


가쿠하리 유스케 오코메야 대표 

“우리는 확실히 젊은 층을 타깃으로 삼는 쌀집이다.”


일본도 쌀 소비가 줄고 있고 해외에서 다양한 쌀을 수입하면서 경쟁도 심해졌다. 
그렇다. 이런 시기에는 맛있는 쌀을 제대로 재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젊은 세대가 관심을 가질 만한 콘셉트로 다가서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쌀은 매일 먹는 주식이지만 매일 구매하는 제품이 아니기에, 올 해부터는 스낵과 화장품 등에서 쌀을 재료로 하되 디자인이 더욱 강조된 제품으로 다가서려 한다. 

오코메야가 다른 쌀집과 차별화되는 점은 무엇인가?
보통 쌀집이 불특정 다수의 소비자를 대상으로 운영하는 데 비해 우리는 확실히 젊은 층을 주 타깃으로 삼는다. 현재 계획 중인 디자인이 남다른 쌀 스낵이나 화장품 등도 젊은 층을 위한 차별화의 일환이다. 

판매하는 제품은 어떻게 선정하고 조달하나?
우리는 우오누마의 최상급 고시히카리를 선별해 판매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 유기농 주스나 쌀 음료, 식초 등 농산물 관련 상품은 잘 알고 지내는 농가를 통해 주로 공급받고, 관심 있는 제품을 찾아 주기적으로 교체해가며 판매한다. 초기에는 오니기리가 매우 인기를 끌었는데 오니기리를 아주 맛있게 잘 만들던 직원이 1년 전 결혼하며 퇴사한 후 오니기리 판매를 중단하고 대신 다양한 팝업 스토어를 진행해왔다. 올해부터는 사촌이자 동업자인 가쿠하리가 운영 주도권을 맡고 있으며 쌀과 기타 농산물 제품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판매할 예정이지만 식사로 팔던 오니기리를 최근에 돈부리 도시락으로 바꿨다. 

오코메야는 조 나가사카가 매장 레노베이션을 진행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예전부터 단순하면서도 따뜻한 느낌의 조 나가사카 스타일을 좋아했다. 유명한 디자이너라 이 작은 프로젝트에 관심이 가져줄까 싶었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연락을 취했다. 다행히 그는 미야카와 상가 이야기를 듣고 흔쾌히 승낙해주었다. 조 나가사카가 제안한 매장 디자인 콘셉트는 ‘매일을 이어주는 가게’였다. 동네 사람들에게 열려 있는 간결한 디자인으로, 매우 작은 공간이기에 한 명의 직원이 가게를 운영하는 데 가장 편한 동선을 고안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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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호 식품으로서의 프리미엄 쌀하치다이메 기헤이  

일본은 1995년 쌀 시장 개방을 기점으로, 1인당 쌀 소비량 감소와 함께 수입 쌀과의 경쟁으로 쌀의 생산과 소비, 유통에 근본적인 변화를 맞이했다. 8대째 쌀집을 운영해오던 집안의 하시모토 다카시는 가성비를 앞세운 맛없는 쌀에 무뎌진 시장이 안타까웠다. 그리고 13년 전, 직접 온라인 쌀가게를 차렸다.




‘8대째 기헤이’라는 뜻의 하치다이메 기헤이는 온라인으로 쌀을 판매하고 별도의 레스토랑도 운영한다.




말 그대로 ‘8대째 기헤이’라는 의미의 하치다이메 기헤이는 교토를 기반으로 한 쌀가게이자 같은 이름의 레스토랑이다. 8대째 교토에서 쌀집을 운영하는 하시모토 기헤이의 후손 하시모토 다카시는 일본인에게 가장 중요한 음식이자 식문화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쌀 본연의 아름다움을 지키겠다는 신념으로 2006년 하치다이메 기헤이를 시작했다. 다카시는 원래 가업과는 거리가 먼 여행업계에서 일하다 결국 쌀을 취급하는 대형 도매상에서 8년여간 현장 업무를 익혔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대학 선배가 제안한 아이디어에 힌트를 얻어 일본 내 제일가는 온라인 전용 쌀집을 그리며 사업을 시작했다. “많은 이들이 가격 중심의 저렴한 쌀을 찾는 추세지만 적어도 10%의 고객은 최고급 품질을 찾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바로 그 10%를 위한 프리미엄 쌀을 파는 쌀집이 하치다이메 기헤이의 목표가 되었다. 이를 위해 다카시는 최고의 쌀 산지를 찾아다니며 직접 맛보고, 쌀에 단맛이 남도록 도정하는 기헤이 특유의 정미법을 연구했다. 또한 당시 일본에서는 저렴한 쌀일수록 여러 종류를 섞어서 판다는 의식이 강했는데 그는 이를 한 번 비틀어, 여러 품종의 포도를 섞어 빚는 와인처럼 다양한 쌀의 이유 있는 블렌딩을 주요 전략으로 삼았다. 100% 온라인 쌀집으로 시작한 하치다이메 기헤이는 기존의 쌀 판매 방식과는 다른 접근으로 초기부터 이목을 끌었다. 당시 쌀은 가정용 소비재로 가격 민감성이 높았는데, 가성비를 대체할 새로운 가치를 정립하는 데 묘안을 낸 것이다. 이를테면 하치다이메 기헤이는 많은 소비자들이 자신이 자라난 고향에서 먹던 밥맛을 그리워한다는 점에 착안해 일본의 여러 산지에서 들여온 고품질의 쌀 선물 세트를 출시한 것이다. 이 기획은 큰 인기를 끌어 하치다이메 기헤이의 최고 인기 상품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특히 알록달록한 보자기를 두른 선물 세트는 젊은 층에서 더욱 좋은 반응을 얻었다. 이 외에도 동봉된 레시피를 따라 용도에 맞는 밥을 짓는 선물 세트도 있고, 현미와 일본식 다시 가루가 들어 있어 따뜻한 물만 부으면 바로 먹을 수 있는 간편 죽 형태의 가공식품도 개발했다. 현미죽은 말차, 된장, 두유, 우메보시 등 여덟 가지 다양한 맛에, 건강을 생각하는 이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디톡스’, ‘저염식’을 포인트로 앞세워 기호 식품으로서의 쌀을 강조했다. 하치다이메 기헤이는 일본 내 400여 명의 공인 쌀 마이스터 중 27명의 쌀 마이스터가 일할 정도로 전문성을 중시한다. 이들을 주축으로 2013년부터 매년 11월 전국 150종의 쌀 중 최고의 쌀 을 선정하는 랭킹을 발표하는데, 기존의 쌀 랭킹이 기계적으로 쌀 성분을 분석하는 것에 그쳤다면 하치다이메 기헤이는 쌀로 지은 밥을 직접 먹어보고 평가하는 시스템을 도입해 실질적인 신뢰도를 높였다. 하치다이메 기헤이는 2009년부터 쌀이 주인공인 동명의 레스토랑도 운영하고 있다. 레스토랑 하치다이메 기헤이는 교토 히가시야마 지역의 첫 지점을 시작으로 2012년에는 긴자점을 열고 2016년에는 나리타 공항 내에 더욱 현대적인 일식을 제공하는 레스토랑 ‘기헤이’를 열어 더욱 글로벌한 고객층을 겨냥하고 있다. 직접적인 판매 외에도 하치다이메 기헤이는 기업이나 비즈니스 스쿨에서의 강의나 어린이들을 위한 체험 교육 프로그램에도 활발히 참여하며 좋은 쌀을 널리 알리는 비즈니스 영역을 확대해나가고 있다. hachidaime.com









하치다이메 기헤이의 다양한 패키지.




나리타 공항에 문을 연 하치다이메 기헤이의 모던한 버전의 레스토랑, 기헤이.




사시미를 곁들인 1인 차림상.




Interview



하시모토 다카시 하치다이메 기헤이 대표



“더욱 아름답고 신성한 방식으로 쌀을 판매하고 싶었다.”




현재 하치다이메 기헤이는 어떤 방식으로 운영하나? 


온라인이 주요 판매처이다. 그리고 요리사인 동생과 함께 레스토랑 사업도 진행 중이다. 온라인 비즈니스가 매출의 70%, 레스토랑이 20%, 다른 레스토랑 등 협력사에 쌀을 공급하는 것이 10% 정도 차지한다. 나는 전국 각지를 돌면서 판매할 쌀을 맛본 뒤 그중 맛있는 쌀을 골라 블렌딩해 판매하고 있다. 이 쌀은 동생이 운영하는 레스토랑에도 공급해 손님에게 한 끼 식사로 제공한다.




쌀 상품의 패키지에 공을 많이 들인 듯하다. 어떤 의도를 담았나? 


슈퍼마켓에서 흔히 판매하는 쌀을 보면 미적인 측면을 별로 고려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조금 심하게 말하자면 반려동물의 사료와 비교해도 하등 차이가 없다는 생각이 들 때마저 있다. 그래서 더욱 아름답고 신성한 방식으로 쌀을 판매하고 싶었다. 특히 하치다이메 기헤이의 본거지인 교토 특유의 미를 보여주고자 하는 의도로 패키지를 디자인했다.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인가?지금까지는 백미 중심의 상품을 주로 판매했는데 앞으로는 현미를 중심으로 한 상품 기획을 추진하고, 운영 중인 레스토랑에서도 현미 메뉴를 추가할 예정이다. 건강에 민감한 젊은 층에게도 어필하는 것이 목표 중 하나다. 또한 쌀 관련 프랜차이즈나 대만이나 중국 등 다른 아시아로 진출하는 데에도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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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럴 아트와 기술이 만난 마을라이스 코드 프로젝트  

주식인 쌀을 사는 데 기호가 크게 작용하지 않는 건 일본도 한국과 비슷하다. 농협 외에 별다른 판로가 없던 한 마을에서 자기 지역의 쌀을 소비자들이 골라 사게 만든 주목할 만한 마케팅 사례가 있다.















광고 회사 하쿠호도는 시골 마을 이나카다테와 함께 라이스 아트를 카메라로 스캔하면 구매로 연결되는 마케팅을 진행했다.




프로젝트를 진행한 2년 동안 방문객들은 4~9월에 한해 라이스 아트를 관람했다. 3년 차부터 예산 문제로 중단됐지만 하쿠호도는 여전히 마을의 관광 포스터를 맡는 등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일본 북동쪽 아오모리현에 있는 이나카다테라는 작은 마을의 주요 생산품은 쌀이다. 1000년 동안 생계 수단으로 벼농사를 해온 이 마을은 일본인의 식생활이 서구화되며 쌀 소비량이 줄면서 위기를 겪었다. 마을 인구가 줄어드는 건 당연한 수순이었다. 남은 이들의 고령화 속도도 빨라졌다. 그리고 2014년, 일본 최대 광고 회사 중 하나인 하쿠호도가 이 마을을 구하기 위한 아이디어를 냈다. 논 여러 곳에 색깔이 있는 품종의 벼를 심어 거대한 미술 작품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마을 주민들은 스케치를 따라 빨간색, 보라색, 주황색, 초록색, 노란색, 흰색의 벼를 심었다. 3월에 모내기를 하고 9월 수확기에 이르는 동안 그림은 점점 어떤 모습을 드러냈고 때로는 변하기도 했다. 하쿠호도의 적극적인 홍보와 입소문으로 일본 안팎의 여러 미디어에 이들의 ‘라이스 아트rice art’가 소개됐다. 논에 그려진 그림과 마을 주민들의 위기 극복 스토리는 인터넷에서 화제가 됐고, 지자체는 관광객을 위해 ‘라이스 아트 역’이라는 특별 기차역까지 만들었다. 라이스 아트가 절정인 여름, 초록빛 논에 펼쳐진 거대하고 정교한 그림을 보기 위해 관광객들이 이 작은 농촌 마을을 찾았다.이들이 단지 관광객들에게 볼거리와 사진 장소를 제공하는 것만으로는 마을을 ‘구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라이스 아트 자체는 이미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이나카다테의 쌀 판매량을 늘린 진짜 비밀은 그림 안에 숨어 있었다. 하쿠호도는 퀄컴의 ‘이미지 인식’을 활용해, 관광객들이 ‘재미있는 것을 보고 사진을 찍고 싶은 마음’과 쌀 판매를 직결시켰다. 전망대에 올라 논에 드러난 그림을 스캔하면 QR코드를 인식하듯 정보를 읽어 특정 사이트가 열리도록 설계한 것이다. 기모노를 입은 여인, 후지산과 날개 옷 설화, 울트라맨, 마릴린 먼로, 모나리자,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한 장면이 곧바로 온라인 쌀 주문 링크로 이어졌다. 이 원리는 라이스 아트를 찍은 사진을 인식하는 것으로도 기능했다. 쌀 소비자들에게는 신기술을 이용해 직접 쌀을 선택해 사고, 대기업의 유통망을 거치지 않은 채 소규모 지역사회와 경제적 교류를 하며, 자기가 선택한 쌀을 맛보고 평가하는 체험치가 쌓였다. 라이스 아트 이후 마을 방문자 수는 전체 주민 수의 30배가 넘는 25만여 명을 기록했다. 이나카다테의 쌀은 낮은 브랜드 인지도로 자체 유통량이 매우 적었으나 라이스 아트를 선보인 첫해 매출이 전년 대비 3배로 뛰었다. 신기술을 체험하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는 좋은 사례로 남은 ‘라이스 코드’는 2014년 칸 크리에이티비티 페스티벌 아웃도어 부문 금상을 받기도 했다. 얼핏 낯설어 보이는 ‘신기술과 농촌 마을의 만남’에는 쌀 판매를 책임지는, 우리로 치면 농협에 해당하는 지역 JA와 광고 회사 하쿠호도의 호흡이 큰 몫을 했다. ‘라이스 코드’는 지역에 대한 관심과 기술력을 크리에이티브로 접목하는 데 적극적이었던 하쿠호도의 광고 전문가와 이나카다테 JA가 긴밀하게 협업한 결과다. 이 프로젝트를 진행한 하쿠호도의 다카노하시 아이로는 이나카다테 인근 마을 출신으로, 일본 전체 쌀 산업의 속사정을 잘 알고 있었고, 하쿠호도 내 기술 연구 부서인 스다 랩을 설립한 스다 가즈히로와 함께 이미지 인식이라는 새 기술을 활용할 방안을 적극 모색했던 것. <아사히 신문>은 당시 공개된 라이스 아트를 두고 “지상에 펼쳐진 거대한 그림인데도 정교함에 놀라게 되며, 일본다움이 가득한 작품”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당시의 사진은 스스로를 ‘논 아트의 마을’로 소개하는 이나카다테 사무소 홈페이지에서도 볼 수 있다. www.vill.inakadate.lg.jp




Interview



다카노하시 아이로, 스다 가즈히로 


하쿠호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관광객이 사진을 찍고 싶어 하는 마음과 농산물 판매를 연결시켰다.”



‘라이스 코드’ 아이디어를 떠올린 계기는 무엇인가?


당시 ‘하쿠호도 스다 랩’에서 이미지 인식 기술을 활용한 새 광고 모델을 개발 중이었다. 라이스 아트는 그때 이미 20년 역사를 갖고 있었으며 주요 관광 자원으로 활용되곤 했지만 쌀 판매에는 크게 기여하지 못했다. 풍경을 활용한 이미지 인식 기술을 적용하기에 라이스 아트는 최적의 대상이었다.



라이스 아트는 QR코드와는 다르다. 색과 패턴을 인식하는 원리가 궁금하다. 


퀄컴사의 기술은 풍경을 코드가 아니라 하나의 화면으로 인식한 후 그 속에서 특정 부분을 추출해 인식한다. 이나카다테의 라이스 아트는 전망대의 특정 각도에서 관람하도록 되어 있어 인식하기 쉬웠다. 날씨나 일조량의 영향으로 인식이 어려울 때는 GPS를 활용한 위치 정보를 추가해 오류를 최소화했다.



프로젝트 전체를 진행하는 데 얼마나 걸렸나?


개발과 준비에 6개월이 걸렸고 프로젝트는 2년 동안 진행했다. 2년 중 라이스 아트 관람이 가능한 건 4월부터 9월까지였다. 3년 차부터 예산 문제로 중단됐지만 하쿠호도는 여전히 이나카다테 마을의 관광 포스터를 맡는 등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색깔이 들어간 개량 품종 쌀에 대해 일본 소비자들의 거부감은 없었나?


라이스 아트에는 일반 벼와 품종 개발로 만든 색깔 벼를 함께 사용했다. 색이 들어간 벼는 식용이긴 하지만 코드 인식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판매한 품종은 아니었다. 당시 그림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라이스 아트에서 가장 많이 사용한 색은 초록색이다. 이 초록색 벼가 이 지역의 일반 식용 쌀이자 특산물이다.




Interview



다카토시 아사리 


이나카다테 마을 사무소 상공 관광 계장 



“처음엔 어색해하던 농부들도 변화에 참여했다.”




농부들은 휴대폰을 이용한 새로운 판매 방법을 처음에는 어색하게 여겼다. 하지만 디지털 거래에 익숙한 자녀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변화를 도모하는 과정에 동참했다. 하쿠호도와 협업한 라이스 코드 프로젝트는 2년으로 끝났지만, 하쿠호도는 지금까지 마을 사무소와 쌀 마케팅과 관련해 계속 인연을 맺고 있다. 현재 이나카다테에서 생산하는 쌀은 거의 대부분 지역 JA를 통해 수도권으로 출하하는데, 기존 판로를 위한 마케팅 방법을 고안하면서 장기적으로는 자체적인 유통망을 갖추는 게 지금 우리의 목표다. 이제 생산자도 농산품 유통에 대해 주도적으로 고심해야 하는 시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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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프들이 줄 서는 농부의 방앗간앤슨 밀스  

앤슨 밀스는 미국판 토종 쌀이라고 할 수 있는 ‘캐롤라이나 황금미’를 생산하는 20년 된 브랜드다. 레스토랑과 베이커리를 중심으로 유통하기에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는데 이는 품질 향상과 연구 개발에 집중하기 위해 앤슨 밀스가 의도한 바다.









브랜딩을 최소화한 패키지. 제품 촬영과 웹사이트는 <뉴욕타임스> 다이닝 섹션의 프리랜스 저널리스트이자 글렌 로버츠 대표의 아내인 케이 렌슐러Kay Rentschler가 관리한다.


지난해 6월 말 문재인 대통령의 미국 방문에 백악관은 캐롤라이나 황금미를 사용한 비빔밥을 대접했다. 미국은 벼농사가 정착된 17세기 이래 기후변화와 외래종의 유입으로 기존의 남부에서 서부로 경작지가 옮겨갔고, 이 과정에서 토종 품종이 대거 유실되는 위기를 겪었다. 캐롤라이나 황금미를 비롯한 미국의 토종 곡물을 다시 부활시킨 쌀 브랜드가 바로 앤슨 밀스Anson Mills다. 1998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에서 시작한 앤슨 밀스는 셰프와 페이스트리 셰프를 대상으로 고품질의 토종 곡물을 판매하며 인지도를 쌓아왔다. 일반 고객을 대상으로 한 마케팅 없이 오직 품질에 대한 입소문 하나로 자리 잡은 앤슨 밀스는 멸종 위기에 처한 종자를 연구, 개발, 보존하는 데 앞장서온 생산자다. 앤슨 밀스의 캐롤라이나 황금미는 미국쌀협회USA Rice Federation가 선정한 기본 게놈으로 인정받으며 유전학자들의 연구에도 회자되는 곡물이기도 하다.



창립자 글렌 로버츠Glenn Roberts는 유년 시절 어머니가 운영하던 레스토랑에서 셰프들과 어울리며 식재료 본연의 맛을 익혔고 농업에 대한 막연한 꿈을 키웠다. 어느 날 그는 주방에서 유효 기간이 다 된 쌀에 쌀바구미가 생겨 일일이 손으로 벌레를 제거한 경험을 토대로, 이를 방지할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오늘날 곡류를 영하 23℃ 이하의 저온에 보관하고 유통하는 방식을 이르는 앤슨 밀스만의 ‘콜드 밀링cold milling’ 방식의 근원이 됐다. 앤슨 밀스는 클래식한 캐롤라이나 황금미를 주력 삼아 아로마를 더한 찰스톤 황금미 등을 다양한 입자 크기로 판매하며 밀, 호밀, 귀리, 메밀, 콩 등의 곡물도 생산한다. B2B 방식이 주요 판로지만 온라인을 통해 소비자를 만나기도 하는데, 웹사이트에는 곡물에 따라 100가지가 넘는 레시피가 자세히 소개돼 있기도 하다. “우리는 스스로가 매우 까다롭다고 생각합니다. 토양을 다루는 것부터 씨앗을 심고 재배하고 제분하는 모든 과정을 직접 관리하기 때문에 이를 소비하고 섭취하는 방식도 까다로울 수밖에 없지요. 일반 곡물로 우리가 제공하는 레시피를 따를 수 없듯 우리 곡물을 일반 레시피에 적용할 수 없다고 자부합니다.” 글렌 로버츠가 말한다.




앤슨 밀스는 전 세계에 걸쳐 약 300명의 엄선된 셰프들에게 매 분기마다 햅쌀을 비롯해 그해 새롭게 경작한 수수, 참깨, 아마씨 같은 농작물을 소개한다. 셰프를 통한 F&B업계와의 B2B 네트워크는 앤슨 밀스가 지향하는 비즈니스 개념을 보여준다. 세심하게 작물을 관리하고 실험을 거듭하다 보면 단가는 껑충 뛸 수밖에 없는 대신 품질이 최상인 곡물을 보장받는다는 신뢰가 있기에 셰프들은 앤슨 밀스의 셰프 리스트에 들기 위해 안달이 난다. 글렌 로버츠는 “진정성 있는 셰프들과 함께 곡물 본연의 맛에 대한 기억을 널리 공유하고자 한다”고 자신의 비즈니스 철학을 밝힌다. 창립 20주년을 맞은 앤슨 밀스는 미국 동부와 서부에 걸쳐 100개가 넘는 농장을 직접 관리하며 여전히 새로운 곡물 품종과 도정, 제분 방식을 개발 중이다. 50여 명의 직원들은 계속해 새로운 종자를 연구하고, 미국 전역의 유명 셰프와 페이스트리 셰프를 직접 찾아가 이를 소개하며 농업계와 미식계에 영감을 불어넣고 있다. ansonmills.com




Interview


글렌 로버츠 앤슨 밀스 대표



“‘언브랜딩’이 우리의 브랜딩이다.”





“전문 셰프들은 햅쌀의 신선도를 유지하는 방법을 잘 알 뿐 아니라 여러 곡물의 특성을 살려 조리할 줄 안다. 우리가 최고의 셰프나 레스토랑과 B2B 협업하는 것을 가장 선호하는 이유다. 곡물 본연의 맛을 제대로 경험하고 싶다면 우리가 개발한 레시피를 철저히 따라 요리하기를 권장한다. 우리 제품은 화려한 포장이나 로고가 없다. 애초부터 상점의 매대보다는 호텔이나 레스토랑의 주방에 직접 전달될 것을 고려했기에 별도의 마케팅이나 브랜딩 작업은 하지 않았다. 우리는 앤슨 밀스를 브랜드로 대한다기보다 곡물을 대하는 우리 스스로가 앤슨 밀스를 대표한다고 생각하기에 오히려 언브랜딩unbranding한다고 하는 게 맞는지도 모르겠다.”





Interview


마크 폭, 앤지 원트 


디자인 이즈 플레이 디자이너 앤슨 밀스 아이덴티티 디자인 담당



“진정성을 계승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앤슨 밀스는 고집스러운 연구 개발 과정, 유통 방식 전반에 걸쳐 크래프트적인 진정성이 있다. 이를 바탕으로 글렌 로버츠 대표는 이미 훌륭한 브랜드를 만들었다고 보기에 우리는 최대한 절제된 패키지 레이블로 제품에 신뢰감을 더하는 데 주력했다. 앤슨 밀스는 멸종 위기에 처한 곡물과 이를 처음부터 키워온 원주민의 전통을 이어가는 데 철학적 근간을 두고 있다. 우리는 미국 애리조나주 북동부의 인디언 부족 중 하나인 호피Hopi족이 사용하는 ‘숨결’ 기호에서 영감받은 다이아몬드 모양의 씨앗 심벌을 사용했다. 이는 ‘씨앗은 우리의 숨결이자 삶’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이 기호를 사용하기 위해 원주민들에게 허가를 받았을 정도로 진정성을 계승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 designispl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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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맛과 환경까지 챙기는쌀 패키지 디자인 4  

건강과 밥맛은 기본이고, 용이한 운반, 환경 보호, 크래프트맨십의 보전 그리고 식문화를 좀 더 즐길 수 있도록 해주는 패키지 디자인을 소개한다.


1 쌀처럼 하얀 북금곰 캐릭터 
시로쿠마 라이스 





디자인


이시카와 류타, frame-d.jp



시로쿠마Shirokuma는 1890년부터 니가타에서 쌀농사를 지어온 12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쌀 생산 기업이다. 시로쿠마의 대대적인 리브랜딩을 맡은 그래픽 디자이너 이시카와 류타는 회사명인 시로쿠마가 북극곰이라는 뜻을 갖고 있다는 데서 착안해 포근한 북극곰 캐릭터를 전면에 내세웠다. 전통적으로 쌀을 담아 팔던 재생지에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곰을 그려 넣고, 손잡이에 벼를 만지는 듯한 질감을 구현했다. 회사명과 북금곰 캐릭터를 연결 짓기 위해 카레 안에서 온천하는 북극곰, 초밥 아래 깔린 북극곰 등 밥 대신 북극곰을 그려 넣은 일러스트레이션 포스터를 제작하기도 했다.




2 가장 빨리 상하는 패키지 


이것도 지나가리라 







디자인


투모로 머신, www.tomorrowmachine.se



스톡홀롬을 기반으로 한 패키지 전문 디자인 회사 투모로 머신Tomorrow Machine은 ‘이것도 지나가리라This Too Shall Pass’라는 이름의 패키지 프로젝트를 선보인다. 이는 우유가 상하는 시간에 비해 우유 팩 하나가 완전히 분해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너무 길다는 인식에서 비롯됐다. 결국 자연 스스로가 이미 자신을 잘 포장해 보호하고 있는 부분에 주목해, 안에 담긴 내용물만큼이나 유효기간이 짧은 패키지를 만들었다. 쌀의 경우 비즈왁스로 만들어 과일을 깎듯이 패키지를 찢어내면 된다. 쌀을 비롯한 모든 마른 곡식에 적합하다.





3 쌀도 포장도 지역 특산물로 


치엔의 선물 







디자인


페사인 디자인, www.pesign.cn



치엔의 선물 시리즈는 중국 구이저우 지방의 특산품을 소개하는 지역 브랜드다. 중국 디자이너 펑충Peng Chong이 운영하는 디자인 회사 페사인 디자인은 전통 생활 양식을 따르는 구이저우 지역의 감성을 담은 패키지를 고안했다. 구이저우는 산업화를 거부하고 화학비료와 살충제 대신 오리와 개구리로 해충을 제거해 비옥한 농지를 만드는 방식으로 쌀을 재배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페사인 디자인은 중국 전통 종이를 만드는 기법을 고수하는 구이저우 지역색 또한 고려해 지역 종이 공방과 협업해 자연 분해되는 종이를 수제작해 천연 염료로 상품 정보를 염색했다.





4 들고 다니기 좋은 쌀 


안드레아 쳉의 쌀 패키지 콘셉트 







디자인


안드레아 쳉andreacheng.myportfolio.com



시드니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그래픽 디자이너 안드레아 쳉Andrea Cheng은 개인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가상의 일본 쌀 브랜드 오히쓰의 패키지를 디자인했다. 폰트 컬러를 달리해 백미, 현미, 흑미 제품을 구분하고, 산간 지대에 층층이 형성된 논을 일러스트레이션으로 그려 넣었다. 오히쓰가 일본어로 나무 밥통을 뜻하는 만큼 로고는 둥근 밥통 모양에 뚜껑의 손잡이를 상징하는 두 줄을 넣었다. 패키지 윗부분에 구멍을 뚫고 노끈을 끼워 넣어 패키지를 휘감듯 쉽게 들어올릴 수 있도록 했다. 용량 또한 패키지를 들어올리는 데 적합한 최대 3인분 분량으로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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