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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솔 Dec 06. 2021

쓰는 자격

쓰이기 위한 글과 읽히기 위한 글

글을 쓰기 위해선 많은  인정해야 한다. 나의 경우 내가 의미 없는  허세스럽게 늘어놓는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다. 내가 쓰고자 하는 것들은 새롭지 않다. 이미 숱한 사람들이 언급했던 것들이다. 그렇다고 보편적인 것을 와닿게 쓰는 능력도 없다. 수집하고 싶은 문장을 낳는 문장가도 아니다. 그럼에도 내가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존재가치를 스스로 납득해야    있을  같았다.

처음에는 시간을 채워 자격을 갖추려 했다. 학생은 공부를 잘해서가 아니라 학교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서 학생이라는 자격을 얻는다. 쓰는데 삶을 많이 할애한다면 쓰는 사람이라고 부를  있지 않을까? 그런 사람이 쓰는 글은 아무 자격없이도 존재 가치를 가지지 않을까? 그러나 쓰는 일이 본업이 아닌 나는 자격을 위해 지불할  있는 시간도 충분하지 않았다.

시간으로 자격을 채울  없자 장르가 아쉬웠다. 소설은 소설이라서 가치롭다. 내가 쓰는 글이 소설이라면 서사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새로울 텐데, 나는 이야기를 창조할 능력이 없었다. 서사를 만들고 싶은 욕구도 없었다. 점점  안에 무엇을 담고 싶은지도 혼란스러웠다. 감상을 나누는 걸까, 설득을 하고 싶은 걸까, 주장을 하고 싶나, 아무리 물어도 답을   없었다. 오히려  자신이 없어졌다.

혼자 쓰는 글과 독자가 있는 글의 차이를 곱씹었다. 열흘째 고민하던  답을 찾았다. 타인이 읽는다는 것을 전제하고 달라지는  태도였다. 혼자 읽는 글의 목적은 ‘저장이거나 ‘배설이었다. 기억하거나 잊어버리기 위해 썼다. 독자를 전제하고 쓰자, 글의 목적에 '전이' 덧붙여졌다. 나는 내가  것들 속에 갇혀있지 않으려고 집중하고 있었다.

'전이성'으로 성공과 실패를 가르기로 했다. 전하고자 하는 것이 감상이든, 주장이든, 새롭지 않은 생각이든 상관없어졌다. 문장을 통해  안에 있는 것을 외부로 전달할  있으면 된다. 의미 없는  늘어놓는 허세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다시 쓰는 행위가 자유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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