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빚의 세계

by 봉년

흔한 드라마 소재가 그러하듯 나의 아버지도 친구의 빚보증을 선 대가로 엄마가 오랜 세월 삯바느질을 해서 산 집과 밭에 대하여 채권자인 지역 농협으로부터 경매처분을 받았다.

당장 갈 곳도 없었지만, 엄마의 한 맺힌 울음소리를 그치게 하는 방법은 아버지의 빚을, 아니 정확히는 아버지의 친구 '이 용*'의 빚을 내가 갚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나는 큰 빚을 갚을 자신이 없었다. 무서웠다. 엄마를 포기시키는 방법과 어디로 집을 옮길지에 대한 생각으로 머릿속이 빠르게 돌아가는 나 자신에 대해 놀랐다. '경매처분'이라는 큰 사건 이전에 겪었던 어린 시절의 연속되는 경제적 어려움이 나를 현실을 빠르고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사람으로 바꾸어놓았는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사건이 있기 바로 전 나의 가족으로 입문한 배우자 A가 개입했다. '효'사상을 강조하며, 그 빚을 그대로 떠안고 부모님을 그 집에 그대로 사시도록 하겠다고 선언했다. 나의 부모였지만 나는 그렇게 적극적으로 나설 수는 없었다. 아버지는 폐암 4기 환자로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낯선 곳에서 돌아가시게 할 수는 없다는 것이 그가 공식적으로 표현한 '의도'였다. 그렇게 나의 20대, '찬란하게 빛난다'는 20대를 직접 경험하기도 전에 '빚'의 세계에 입문하게 되었다. 그리고 빠르게 어른이 되어갔다.


그러나 20대 철부지였던 그도, 나도...

그때는 알지 못했다.

그 호기롭던 결단과 방임이 드라마 소재가 그러하듯 나의 아버지도 친구의 빚보증을 선 대가로 엄마가 오랜 세월 삯바느질을 해서 산 집과 밭에 대하여 채권자인 지역 농협으로부터 경매처분을 받았다.


당장 갈 곳도 없었지만, 엄마의 한 맺힌 울음소리를 그치게 하는 방법은 아버지의 빚을, 아니 정확히는 아버지의 친구 '이 용*'의 빚을 내가 갚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나는 큰 빚을 갚을 자신이 없었다. 무서웠다. 엄마를 포기시키는 방법과 어디로 집을 옮길지에 대한 생각으로 머릿속이 빠르게 돌아가는 나 자신에 대해 놀랐다. '경매처분'이라는 큰 사건 이전에 겪었던 어린 시절의 연속되는 경제적 어려움이 나를 현실을 빠르고 객관적으로 파악하는 사람으로 바꾸어놓았는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사건이 있기 바로 전 나의 가족으로 입문한 배우자 A가 개입했다. '효'사상을 강조하며, 그 빚을 그대로 떠안고 부모님을 그 집에 그대로 사시도록 하겠다고 선언했다. 나의 부모였지만 나는 그렇게 적극적으로 나설 수는 없었다. 아버지는 폐암 4기 환자로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이었는데 낯선 곳에서 돌아가시게 할 수는 없다는 것이 그가 공식적으로 표현한 '의도'였다. 그렇게 나의 20대, '찬란하게 빛난다'는 20대를 직접 경험하기도 전에 '빚'의 세계에 입문하게 되었다. 그리고 빠르게 어른이 되어갔다.




그러나 20대 철부지였던 A도, 나도...

그때는 알지 못했다.


A의 호기롭던 결단과 나의 방임, 이 두 조합이 끝내는 인생 전반기를 통째로 집어삼킬 것이라는 것을.




"공매처분이 내려지고 진행이 될 때까지 소요되는 시간은 얼마 정도인가요?

타이트하게 말씀해 주세요."


은행 채권담당자는 담담한 내 어조에 되려 기가 눌렸는지 나에게 차선책을 찾아보자고 독려했다.

예를 들어 다른 재단에서 걸어놓은 가압류를 풀어달라고 요청해서 싼값에 집을 팔면 아주 손해는 아니라는 식의.


"저는 희망고문이 가장 나쁘다고 생각해요. 괜한 희망보다는 현실적인 대안을 생각해 보려고요. 공매처분이 완료되고 이 집에서 살 수 있는 정확한 기한을 알고 싶어요."


머릿속으론 현실 파악을 하고 있었지만 감정은 그렇지 않았다.

전화를 끊기 무섭게 또 울음이 터져 나왔다.

눈물이 상황을 바꿔주는 것도 아닌데...


우리는 내일 다시 통화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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