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각

by 봉년

'북한사람들은 분명 빨간색에 뿔이 달려있다'는 상상을 하며 어린 시절을 보낸 기억이 있다. 자라면서 막연한 반공의식이 엉뚱하게 입력된 허상에 헛웃음이 났지만 아직까지도 어린 시절의 빨간 뿔이 달린 사람들은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어른이 되어 '공산당'보다 무서운 것은 내 앞으로 이전된 '빚'이었다. 악취를 처음 맡을 때는 견디기 힘들지만 그 안에 오래 있다 보면 부지불식간에 익숙해지는 것처럼 나도 어느 순간 둔감해졌으리라.

'빚'은 있었지만 내가 그 빚에 눌려 숨을 헐떡거린다는 사실도.

동상에 걸려 통각에 둔해진 발가락처럼 나는 그렇게 돈에 관해서만큼은 '무기력'하게 대응했다.

견딜만하던 평소에는

'전생에 진 빚이 많은가 보다'

조금 더 숨이 차오를 때면

'얼마만큼 고통받아야 이 형벌이 끝나게 될까'


'파산'이나 '채무조정' 같은 단어를 들을 때도 나와는 먼 이야기일 것이라 막연하게 생각했다.

채무는 과한 소비와 관련이 크다고 생각했기에 내 삶에는 들어설 가능성이 없는 단어라고 확신했던 것일까.


뿔 같은 것은 없겠지만 뭔가 어두운 그 단어들은 나와 별개의 세계일 것이라고,그냥 성실하게 살면 언젠가 갚아질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이 삶과 함께 이어졌다.

어떻게든 이십팔 년을 버텨왔었기에 그냥 이런 인생이 쭈욱 이어질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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