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리오를 위해 다시 쓰는 [엄마기억] #. 7

반성문

by 봉년

#. 7


제본된 [엄마기억]을 받아 들고 애이는 먹먹한 마음으로 책이 나오면 보내주려 했던 주소 리스트를 펼쳤다.

오늘은 맨 위 칸에 쓰여있던 이름. 김경연을 찾아가기로 한다.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반성문 [엄마기억]을 들고 애이는 청라면 신산리로 향했다. 밤마다 바삐 손을 움직인 건 엄마의 기일이 딱 오늘이기 때문이었다.

유월 한 달이 바빴다. 날짜를 못 맞출까 봐 마지막 일주일은 두 시간도 눕지 못하고 더듬더듬 자판을 두드린 애이가 기다렸던 오늘.

벌써 산 모기들이 극성일 것은 애이도 익히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은 다늘 날과는 달리 시간을 오래 들일 것이므로 신산리로 오는 길에 버스정류장 앞 건강약국에 들러 모기 퇴치밴드와 스프레이를 샀다.

긴 바지를 입기엔 땀나는 유월의 끝자락. 쿨토시를 팔에 끼우고, 챙겨 나온 것은 엄마가 사 두고 아끼느라 몇 번 신어보지도 않았을 진분홍색 발등 위로 노란 꽃이 흐드러지게 핀 장화에 엄마보다 딱 오 밀리미터가 큰 발을 애이는 구겨 넣고 산을 오른다.


"엄마? 나 왔어. 오늘은 좀 오래 있다가 갈게...... 좋지?"


표지석 주변으로 돋아난 키가 큰 쑥과 둥굴레는 손으로 끊어내고 벌써 종아리만큼 올라온 잡초들은 장화로 지그시 누르며 애이는 그 앞에 선다.

막내 영환이 심어 두고 갔으리라 짐작되는, 엄마의 199번지 마당 한 켠을 차지하고 앉아 하늘에서 누가 누르는 것도 아닌데 더 올라서지도 못하고 땅바닥에 붙은 채고 진분홍색 다섯 잎을 화려하게 펼쳐놓아 엄마를 기쁘게 했던 꽃잔디는 그 진분홍의 흔적을 털어내고 초록 이파리들만 애이의 눈에 들어선다.


"엄마? 엄마가 그랬잖아. 고생만 징글징글하게 해서 내가 글만 알면 책을 썼을 껴. 세 권도 넘게 쓸 수 있어. 으이구 이놈의 팔자! 그런데 엄마, 내가 써보니가 딱 한 권이네 뭐. 그래도 세 권만큼은 고생은 아니었나 봐. 그 고생에 위로를 못 해줘서 내가 지금 너무 미안하다 엄마...... 엄마도 학교를 좀 다녔더라면 자기 얘기라 세 권도 더 썼겠지만 이런대로 만족했으면 좋겠어."


혼자의 독백이 부끄러운 듯 쓸데없이 쑤욱 자라 올라온 쑥을 쥐어뜯으며 애이는 한참을 머뭇거렸다.


"엄마가 불러주는 대로 진작에 받아 적을 걸. 왜 나는 그때 그런 생각을 못 했나 몰라. 사실 내가 엄마한테 대놓고 말한 적은 없는데...... 나는 엄마가 못생겨서 주인공 같은 거는 절대로 할 수 없다고 생각했었거든. 그런데 드라마가 아니니까 주인공해도 괜찮더라? 이제 엄마가 주인공이야. 근데 주인공은 엄만데 내 이름이 더 많이 나와 흐흐. 자 시작한다?"


애이는 평소의 말투처럼 또박또박 그러나 천천히 내레이션을 시작했다. 왜냐하면 엄마는 늘 잘 알아듣지 못하고 "뭐라고? 다시, 다시 해 봐!"소리를 자주 했던 것이 막 생각났기 때문이다.


"제목. 엄마기억. 주인공, 엄마 김경연. 지은이, 딸 애이. 북 디자인, 외손녀 은정. 책머리에 하는 말. 못생겨서......"


그 대목부터 벌써 애이는 코가 시큰해지기 시작한 듯 흐르는 액체가 없는데도 훌쩍거렸다.


"못생겨서 주인공 같은 건 절대로 될 수 없다고 생각했던 당신께, 함께 공유했던 그 시간의 기억을 더듬어 바칩니다. 주인공입니다. 엄마, 당신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