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통화
#. 8
"엄마, 이제 웅천에 안 오는 거야?"
애이는"여보세요" 대신 건조한 말투로 지난번 폭언에 대한 복수를 시작했다.
한 달이 넘도록 약을 먹어도 통증이 가시지 않자, 시골의 의료 수준을 의심하고 서울로 간 엄마는 전화가 없었다. 조금 과장하자면 하루에 열두 번도 더 전화를 해대는 여자였다 엄마는. 일부러 안 받든 지 사정이 있어 못 받든 지, 받을 때까지 전화를, 일단 받을 때까지 한다. 늘 그랬다. 그런데 이번엔 당하기만 했던 애이가 찜찜할 정도로 전화가 없다. 해댄 것은 엄마, 당신인데 애이는 불편하여 좌불안석이다. 억울하다.
그런데 지난번 통화는 애아의 승리였기 때문일까. 애이는 뒤꼭지가 가려웠다.
논 하나 사이로 애이가 바라봤던 지난 이천십육 년 오월 칠일 일요일의 마지막 풍경은...
아침부터 막냇동생의 것으로 짐작되는 검정색 승용차를 앞에 두고 엄마는 반복적으로, 부지런히 마당엘 나왔다 들어갔다. 간만에 애이는, 지난 초겨울 엄마가 뚝배기 바닥까지 긁어가며 먹었던 맹사또가든 녹각삼계탕을 먹으러 가자고 전화를 하려던 참이었는데......
짜증이 난다.
[너는 어쩌믄, 엄마가 어떤지 며칠째 건너와 보지도 않냐?]
애이는 가만히 듣고만 있는다.
[내가 능력 없는 니 아빨 만나서 여지껏 얼마나 고생을 하고 살았는데? 너는 어쩌믄 그렇게 쌀쌀맞냐? 자식을 키워봐야 다 소용없어. 하나같이......]
도저히 오늘은 더 들어줄 수가 없어서 애이는 엄마의 말을 잘라버린다.
"왜 나한테만 그래? 나만 자식이야? 왜 맨날 나한테만 이러냐고? 내가 아버지랑 결혼하라고 시키기라도 했어? 내가 등 떠민 것도 아니고 엄마가 원해서 한 결혼인데, 엄마 맘대로 낳아 놓고서 왜 맨날 나한테 따지냐고!"
[그래! 너는 공부 많이 해서 잘나서 좋겠다! 잘나서 아주 응? 말대꾸도 똑 부러지게 잘해서 좋겠어! 여태 고생하고 산 엄마도 다 이겨 먹고! 이 못된 년!]
습관처럼 엄마는 수화기를 던지듯 끊어버린다.
애이는 너무 분해서 오늘은 먼저 끊어버린 엄마에게 다시 전화를 걸지만 받지 않는다. 그러기를 여러 날이 지나갔다. 그리고 오늘 아침 논길 건너편 199번지의 마당이 분주했던 것이다. 찜찜하게시리.
느닷없이 또 어버이날을 앞두고 저 자식이 새치기를 한다. 안 챙기면 두고두고 서운한 메들리를 들을 게 뻔해서 기분이 더 나쁘다. 그래서 오늘은 엄마보다 막냇동생에게 더 기분 나쁘다.
'왜 하필 오늘이냐고......'
그래도 논길을 건너지는 않았다. 보령빌라의 베란다에서 199번지의 마당을 멍하니 바라볼 뿐이다.
지금 미운 건 둘 다 마찬가지다.
그렇게 실루엣이 정확히 보일 정도로 그들은 가까웠다. 그렇지만 멀었다. 그런데 그런 모습으로 보란 듯 동생네로 떠날 엄마가 전화 한 동이 없어서 애이는 불안한 마음이 들었고, 그래서 전화를 했을 뿐 다정해야 할 이유는 없어서 한 첫마디가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