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고 [길 위의 인문학]

제출하지 않은 과제 [미리 보는 나의 죽음]

by 봉년


남당 3길 44번지의 흙을 맨손으로

당신이 고르는 동안

나는 아마도,


당신을 등진 채로 아침 햇살에

얼굴을 들이민 나는 아마도,

두 눈을 감은 나는 아마도,

두 손을 포갠 나는 아마도,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에서 흘러나오는


슈베르트의 송어에 열중해 있을 겁니다.



당신이 미워질 때마다

오늘이 마지막일 수 있다는 마음으로

눌러둔 나의 시간을 모르는 당신은

늘 당신이 입으로 뱉었던 말처럼

당신에게 나는

'철없는 아내'였는지도 모릅니다.

.

그러나

.

내가 철없는 아내가 아니었음을

내가 철없던 며느리가 아니었음을

내가 철없던 엄마가 아니었음을


그러나

당신은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행복은

인생 끄트머리 어디에서 발견하는,

겨울을 앞두고 맞이해야 하는,

마지막 하나가 될 때까지

기다리고 기다린,

위태롭게 매달린

홍시가 아니라는 것을

조금 더 일찍 알아채길 바랐습니다.


당신과의 여정에서

가장 많이 사용한 기술은

기다림이었습니다.

알고 있었는지요.

가장 많이 기다린 사람

당신이었다는 것을

우리는

쓸모를 다한

기찻길을 닮았습니다.

나란히

그저 나란히 앞을 향해 있는 두 개의 선.



이제 그 여정의 끝에 먼저 선 나는

당신에게 먼저 인사를 고합니다.



나의 엄마처럼

살뜰히 가꾸던


당신의 것들을


마음에 담아서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