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언제나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말을 듣고 자랐다. 달려야 하고, 성장해야 하고, 더 나아져야 한다고. 그렇게 우리는 ‘멈춤’이라는 단어에 불안을 덧입혔다. 멈추는 것은 뒤처지는 것이고, 나약한 선택처럼 여겨졌다. 나도 그랬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시간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고, 뭔가를 하지 않으면 나라는 존재가 흐려지는 것 같았다.
그러나 언젠가부터 나는 멈추는 법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 계기는 아주 단순했다. 어느 날, 내가 좋아하던 것들이 더 이상 좋지 않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아끼던 책을 펼치고도 글이 눈에 들어오지 않고, 좋아하던 음악이 배경음처럼 흘러가 버렸다. 무언가 고장 난 듯한 그 느낌 속에서, 나는 처음으로 멈춤의 필요성을 실감했다.
멈춘다는 건 단순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일상 속에서 흘려보내던 것들을 다시 바라보는 시간이었고, 외면해왔던 나의 감정과 천천히 마주하는 일이었다. 오랫동안 무심코 지나쳐온 창밖의 나무, 그 위로 드리운 햇빛, 커피 잔을 쥔 손의 온기. 그런 것들이 멈춘 시간 속에서 다시 눈에 들어왔다.
가만히 있는 것이 어색했지만, 그 어색함 속에서 나는 조금씩 회복되었다. 몸이 먼저 회복되고, 마음이 그 뒤를 따랐다. 바쁘게 달리느라 미뤄두었던 질문들이 비로소 내게 도착했다. “지금 괜찮은가?”, “정말 원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가?” 그동안 외면했던 질문들이었다. 나는 그 질문 앞에서 오래 머물렀고, 그것은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일이었다.
우리는 ‘쉰다’는 말에 자주 죄책감을 느낀다. 잠시 쉬면 누군가에게 뒤처질 것 같고, 경쟁에서 멀어질 것 같고, 다시는 흐름을 따라잡지 못할 것만 같다. 하지만 나는 알게 되었다. 쉼은 나약함의 징표가 아니라, 더 멀리 가기 위한 준비라는 것을. 기계도 멈춰야 다시 움직일 수 있고, 사람도 숨을 고르지 않으면 결국 쓰러진다.
멈춘다는 건 일종의 고백이다. “나는 지금, 나를 다시 살피고 싶다”는 조용하고 단단한 선언이다. 그리고 그런 선언이 가능한 사람은 이미 자기 자신을 돌보는 데 필요한 용기를 지닌 사람이다. 나는 그 사실을 알게 된 이후로, 더 이상 멈춤을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나는 이제 의식적으로 멈추는 연습을 한다. 잠시 휴대폰을 끄고, 일정에서 손을 떼고, 가만히 있는 연습을 한다. 처음엔 불안하지만, 곧 나의 중심이 다시 나에게로 돌아온다. 그 고요한 순간 속에서 나는 나의 결을 느낀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싫어하는지, 왜 지금 이 길을 걷고 있는지를 말없이 느끼게 된다.
세상은 앞으로만 달린다. 하지만 나는 안다. 가끔은 멈춰야만 도착할 수 있는 지점들이 있다는 것을. 달리는 길 위에서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멈추었을 때 비로소 눈에 들어오는 순간이 있다. 그리고 그 순간이야말로, 내 삶의 방향을 다시 정비할 수 있게 해주는 진짜 시작점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