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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레마 Jul 27. 2023

비밀스러운 햇볕, 밀양이 내게 내려앉았다.

혼자라 좋은, 시골 인문학여행 - 밀양편 1

우리나라 성씨 중 본관 순위로 인구수가 많기로는 단연 김해 김 씨입니다. 2위는 어디일까요? 바로 3위인 전주 이 씨를 가뿐히 물리친 밀양 박 씨입니다.      

박 씨는 모든 박 씨의 시조인 박혁거세를 시작으로 신라 초기에 7명, 후기에 3명, 총 10명의 왕을 배출했습니다. 밀양 박 씨는 일성왕(7대) 계통으로, 경명왕(54대)에게 밀성(밀양의 옛 이름)과 경주 일부를 분봉받은 장남 밀성대군 박언침을 시조로 합니다. 전체 박 씨의 70~80%를 차지할 만큼 번성하였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밀양 박 씨의 본향인 경상남도 밀양시가 그리 잘 알려져있지 않은 것은 의문입니다. 밀양시는 대구광역시와 부산광역시 중간쯤 위치하고 있습니다. 낙동강과 밀양강 주변으로 넓고 기름진 평야가 경쾌하게 펼쳐지고, 북동쪽으로는 '영남의 알프스'라 불리는 가지산(1,241m), 재약산(1,119m), 천황산(1,189m), 운문산(1,188m) 등이 웅장하게 호위하는 아름다운 고장입니다. 여름에는 대구와 함께 가장 더운 고장으로도 유명하지요.


농사로 유서 깊은 풍요로운 밀양은 김제의 벽골제, 제천의 의림지와 함께 일찍이 벼농사가 널리 행해진 삼한시대 3대 저수지 중 하나인 밀양의 수산제로 우리에게 익숙합니다. 역사 시험 단골 출제 문항이었지요.^^     


하지만 수산제는 『동국여지승람』에 세조 때 ‘둔전(屯田, 아직 개간하지 않은 땅을 경작하게 하여 수확물 일부를 지방 관청의 경비나 군대의 양식으로 쓰도록 한 밭)으로 개답(開畓)되었다’고 기록한 것으로 보아 조선 초에 이미 사라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다만 그 둘레가 20리(약 8km)였다고 하니 규모가 매우 컸음을 알 수 있지요.


1986년에는 지하 자연 암반을 굴착해서 만든 수문이 발견되었는데 중장비도 없이 바위를 다루는 고대인들의 기술이 놀랍습니다. 이 정도의 대규모 저수지가 건설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아 당시 밀양이 대규모 취락이 형성된 농업의 중심지였음을 추측할 수 있습니다.                                                                               

삼한 사람들의 자연 암반을 굴착하는 실력이 돋보이는 밀양 하남읍 수산제 수문입니다.


밀양을 대표하는 역사적 인물은 누구일까요? 밀양이 명문장가인 변계량, 영남학파의 거두 김종직 같은 유학자를 배출해 유학의 고장으로 명성이 높기는 하지만 밀양 출신으로 가장 이름난 이는 뭐니뭐니해도 조선 전기의 승려, 사명대사(1544~1610) 일 것입니다. 속명은 임응규, 법명은 유정으로 18세에 승려들의 과거시험인 선과(禪科과)에 합격해 ‘글 잘하는 승려’로 알려졌지요.


묘향산 보현사의 서산대사(1520~1604, 휴정)의 제자가 되어 수도하고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승병을 이끌고 전공을 세웁니다. 전쟁이 끝나자 선조 임금의 명을 받들어 국서를 가지고 일본으로 건너가 조선인 포로 3,000여 명을 데리고 귀국하는 등 외교 분야에서도 눈부신 활약을 하지요.   


사명대사의 충의를 기리기 위해 1742년(영조 18)에 세운 밀양의 표충비(表忠碑)는 나라에 큰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비석에 땀이 흐르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 '땀 흘리는 비석' 사건의 마지막은 2018년 12월에 일어납니다.


경남일보는 ‘지난 3일 오전 5시부터 4일 오전 11시 30분까지 약 50ℓ의 땀이 흘렀다.’라며 사진을 함께 게재했지요. ‘약 50ℓ의 땀’이라니! 상당히 구체적입니다. 땀이 아니라 눈물, 혹은 그냥 물이라 할 수도 있을 텐데 하필 왜 ‘땀’이라고 표현했을까 궁금해집니다. 아마도 나라의 위태로움을 걱정하는 사명대사가 흘리는 식은땀이라는 의미를 부여한 것이 아닐까 예상해 봅니다. 아무튼 전문가들도 비석 자체의 결로현상 등 과학적 해명을 시도했으나 여전히 정확히 밝혀내지는 못하고 있다 하니 참으로 기이합니다.

                         

밀양시 무안면의 표충비각에 안치되어 있는 사명대사의 업적을 새긴 표충비에서...헉! 땀(?)이 흐르네요.-.-;; (경남일보 2018. 12. 5일 자 게재)




나에게 밀양(密陽)은 직접 가보기도 전에 이창동 감독의 영화 <밀양(Secret Sunshine, 2007)>으로 먼저 기억된 곳입니다. <밀양>은 자신의 아이를 살해한 유괴범이 사형 직전에 하나님의 품에 안겨 평화로이 죽음을 맞이하자 고통받고 좌절하는 엄마를 연기한 전도연이라는 배우에게 칸영화제가 기꺼이 여우주연상을 안겨준 영화입니다.


아이를 죽인 유괴범을 용서하러 마음먹고 교도소에 갔다가 하나님이 자신을 용서해 주었다는 말을 듣고 절망해 스스로 망가져 갑니다. 교회 목사님과 교인들은 하나같이 하나님도 용서했으니 이제 그만 용서하라고 합니다. 그녀는 ‘이미 용서를 얻었는데 내가 어떻게 다시 용서를 해요? 내가 용서하기도 전에 어떻게 하나님이 먼저 용서할 수있어요? 어떻게 그러실 수 있어요?’라고 따져 묻습니다.   

   


이창동 감독은 영화 <밀양>이 이청준의 단편소설 <벌레 이야기>(1985)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했지만, <밀양>은 소설과는 사뭇 다른 메시지를 던져줍니다. 좌절한 엄마가 자살해 버린다는 <벌레 이야기>의 비극적 결말과 달리, <밀양>은 위태롭지만 벼랑 끝에 선 한 인간의 희망과 구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니까요.


마당에 앉아 자신의 머리카락을 자르는 전도연의 얼굴에 밀양(비밀스러운 햇볕)이 부드럽게 드리우는 마지막 장면과 머리카락을 자르는 그녀 옆에 묵묵히 거울을 받쳐 들어주는 한 남자(송강호 분)가 있기에 그렇습니다. 인간의 희망과 구원은 신이 아닌 이 땅에 있다는 듯 그녀의 잘려나간 머리카락을 햇볕과 바람이 보듬어 쓸고 가면서 영화는 끝납니다. 무신론자는 아니지만 그녀를 살리는 아니 살게 하는 것 신이 아니라 한 남자의 사랑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제 아무것도 남아있을 것 같지 않은 그녀의 얼굴 위로 한 줌 비밀스러운 햇볕(밀양)이 내려앉습니다. 희망을 말해주는 것처럼 말이지요.


비밀스러운 햇볕의 도시, 밀양으로의 답사 여행은 이렇게 밀양에 대한 이런저런 기억의 파편들이 모여 시작됩니다. 대단한 유물이나 유적지가 손짓하는 답사가 아니었지요. 그리 요란할 것 없는 시작이었지만, 밀양이 쉽게 드러내지 않는 신비로움과 놀라움으로 가득 찬 고장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에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하않았지요. 비밀스럽게 햇볕이 내려앉듯 단 이틀만에  밀양이 내 맘에 스며들었으니까요. 이제 '밀양이 놀라운 이유'를 찾아 저와 함께 떠나보실까요?^^(다음 편에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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