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크레마 Aug 22. 2023

절과 서원의 동거, 밀양 표충사

혼자라 좋은, 시골 인문학여행 - 밀양편 2

  https://brunch.co.kr/@storybarista/49에 이어지는 글입니다.


매년 봄, 가을 두 차례 밀양의 대표 절집인 표충사에서는 밀양이 자랑하는 인물, 사명대사(1544~1610, 법명 유정)를 추모하기 위한 향사(享祀, 제사)가 진행됩니다. 사명대사는 임진왜란 당시 위기의 나라를 구하기 위해 승병을 이끌고 왜군과 싸워 공을 세우고, 전쟁 후에는 사신으로 일본에 건너가 3,000여 명의 조선인 포로를 구해서 돌아온 전설적 인물이지요.


표충사가 소유한 사명대사가 입었던 장삼(왼쪽)과 선조로부터 하사 받은 금란가사(오른쪽)가 2012년 400년 만에 일반에 공개되었습니다. (밀양시립박물관 제공)


그런데 이 제사 모습이 우리가 일반적으로 보아온 제사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불교의 스님과 성균관 유도(儒道)회 밀양지부 유림들이 함께 제사를 준비할 뿐만 아니라 제사 의식도 불교식과 유교식으로 차례로 거행하니까요. 우리나라가 다양한 종교가 공존하는 종교적 배타성이 적은 나라라고는 하지만 한 공간에서 서로 다른 종교인이 이렇듯 함께 의례를 준비하고 각자의 방식에 따라 사이좋게 주거니 받거니 의식을 행하는 것은 보기 드문 광경이라 더욱 놀랍습니다. 유독 밀양 표충사에서 불교와 유교의 이러한 기묘한 동거가 1839년 이래 200년간 지속된 특별한 사연이 있는 걸까요?     


밀양시 표충사 경내 표충서원에서의 춘계 향사 모습입니다. 스님과 유림이 나란히 걸어나오는 모습이 이색적입니다. (밀양시 제공)


우선 밀양 표충사로 향합니다. 차로 절 바로 앞까지 갈 수 있지만 1㎞ 가량 멋들어진 소나무길을 걸어보아도 좋겠습니다. 표충사는 재약산(載藥山, 1,119m) 기슭에 자리 잡았습니다. 재약산은 유럽의 알프스에 견줄 만하다 하여 ‘영남의 알프스’라 불리는 낙동정맥의 하나로 예로부터 사람을 살리는 산으로 이름나 있지요. 나병에 걸린 신라 흥덕왕(42대, 777~836)의 셋째 왕자가 이 절의 약수를 마시고 완쾌되자 그때부터 원래의 이름인 죽림사(竹林寺) 대신 영정사(靈井寺)로 불리게 되었다고 『삼국유사』는 전합니다. 그런데 이 절의 이름이 표충사(表忠寺)로 다시 바뀌게 된 사건이 흥미롭습니다.


표충사 가는 길은 소나무와 느티나무가 번갈아 나타나는 아름다운 길입니다.

       

고려시대까지만 해도『삼국유사』의 저자인 일연국사가 천 명이 넘는 승려들을 모아 선풍을 떨칠 만큼 번창했던 영정사도 숭유억불을 표방한 조선시대에는 퇴락한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었지요. 이에 1839년 사명대사의 8대 법손인 천유대사는 묘안을 냅니다. 4km 떨어진 사명대사 탄생지, 밀양시 무안면에 세워진 사명대사의 사당인 표충서원을 영정사로 옮겨오도록 왕의 허락을 받은 것이지요.       


천유대사가 표충서원을 영정사로 옮겨오려 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표충서원은 1738년(영조 14) 국가로부터 사액을 받은 서원입니다. 양난 이후 혼란한 사회를 수습하고 성리학의 나라를 재건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임금에 대한 의리를 지키기 위해 목숨 바쳐 싸웠던 충신열사를 추모하는 사업이 활발히 진행됩니다. 이에 사명대사, 서산대사와 같은 승병장도 유림 의병장(義兵將)들과 동등한 위상으로 인정받고자 하는 움직임이 일어나지요. 이러한 시대 상황에 발맞춰 가장 먼저 움직여 사액을 받은 곳이 밀양 표충서원입니다. 밀양은 사명대사의 고향이었으니까요.


국가로부터 사액이 내려지면 토지와 노비, 제사에 쓸 제수와 각종 잡물을 관아로부터 지급받게 되는데, 표충서원이 영정사로 옮겨진 후 영정사가 실질적으로 이 모든 것을 관리하게 된 것입니다. 이로 인해 영정사의 살림살이가 펴졌음을 부인할 수 없지요. 천 년 넘게 불린 영정사라는 이름도 표충사(表忠寺)로 바뀌게 되고요. 앞선 글에서 소개한 일명 ‘땀 흘리는 비석’으로 알려진 무안면의 표충비만큼은 유림의 반대로 끝내 이전하지 못했지만, 서원을 절 안에 품은 표충사는 사명대사의 명성을 고스란히 이어받아 명분과 실리 모두를 챙기게 되었지요.      

                           

이제 일주문을 통과해 표충사(表忠)라 쓴 누각을 지납니다. 너른 마당을 표충서원, 표충사(表忠), 그리고 사명대사의 유품 300여 점 중 일부가 전시된 유물관이 에워싸고 있는 서원 영역이 나오지요. 오른편으로 난 높은 계단을 오르면 사천왕문을 지나 그제야 절 영역으로 들어서게 됩니다. 절도 서원도 일반적인 배치를 벗어나 있어 방문객들은 다소 혼란스러워집니다.       



표충사라 적힌 누각을 지나면 먼저 서원의 영역으로 들어서게 되는데 절 안에 유교의 서원 건물이 함께 공존하는 모습이 낯섭니다.


그런데 지금의 표충사는 1839년 천유대사가 표충사당을 영정사로 옮겨올 당시의 모습이 아닙니다. 원래는 큰 법당인 대웅전 옆에 사당을 나란히 배치하고 일반적인 서원의 형식에 따라 강당과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를 두었으며 봄, 가을에 한 번씩 거행하는 제사의식도 여느 서원과 같이 관원이 주재하고 절에 소속된 승려들은 제사 준비를 거들고 의식을 행할 때는 일반 참배객과 같은 입장이었지요.  


하지만 1871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이 떨어지자 국가적 지원은 끊기고 제사는 간소화되었습니다. 1926년에는 대화재까지 일어나 전각 대부분이 불타버립니다. 표충사를 중창하면서 건물 배치에 큰 변화가 있었고, 1971년에는 대웅전과 나란히 있던 사당마저도 부처님을 모시는 법당과 서원의 사당이 한 곳에 나란히 있을 수 없다는 승려들의 요구에 따라 경내 아래쪽에 있던 팔상전 자리로 옮겨집니다. 그러니 원래의 서원 모습을 찾아보는 것은 불가능하지요. 그렇다면 애초에 유교적인 서원으로서의 제도와 규범을 절 내에서도 엄수하겠다던 200년 전 천유대사의 서약은 잊혀 버린 걸까요?     

       

사천왕문을 지나 절 영역으로 들어섭니다. 중앙에 천 년 절집 표충사를 지켜온 통일신라시대 균형미 넘치는 석탑이 우리를 맞아줍니다.  
대웅전 옆 지금의 팔상전 자리가 원래의 표충사당이 있던 자리였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표충사가 많은 부침을 겪으며 건물 배치에 상당한 변화가 있긴 했지만 천유대사의 서약을 잊지는 않았습니다. 이 글 첫머리에 언급했듯이 지금까지 매년 봄, 가을로 사명대사와 함께 승병을 일으켜 국난을 극복한 서산대사, 기허대사를 함께 모시고 제사를 지내고 있으니까요. 여전히 스님들과 유림이 사이좋게 참여함으로써 천유대사의 서약과 전통은 지켜지고 있는 셈입니다.


이것이 밀양이 놀라운 첫 번째 이유입니다. 밀양 표충사는 서로 다른 종교인 유교와 불교가 한 공간 안에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밀양 표충사가 보여주는 타 종교를 배척함 없이 감싸안는 종교적 관대함은 왜 세계사에서 흔히 일어나는 종교전쟁이 우리나라에서는 일어나지 않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해주기에 충분합니다. 정치적인 문제로 인해 부차적으로 종교 문제가 엮이는 일은 있을지언정 종교 그 자체가 직접적인 원인이 되어 종교인이 희생되거나 사회가 분열해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으니까요.           




표충사 답사를 마치고 출출함을 달래러 밀양시내로 향합니다. 답사의 대미는 역시 먹거리에 있으니까요.^^ 밀양에는 많은 특산품이 있는데 그중 다슬기를 먼저 맛볼 참입니다. 일부 지역에서는 다슬기를 '고디'라고 부르기도 하지요.  밀양의 남쪽 삼랑진에서 낙동강 큰 물줄기를 만나기 전까지 밀양을 시원하게 남북으로 흐르는 아름다운 밀양강은 다슬기의 천국입니다. 다슬기는 깨끗하고 깊은 강 바위틈에 서식하며 물속의 유기물과 이끼를 먹고 자라는데 수질을 정화하는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저지방, 고단백이라 식용으로도 인기가 좋다고 합니다. 밀양강의 다슬기를 푸짐하게 먹을 수 있다는 식당으로 달려갑니다. 들깨탕에도 납작 만두를 곁들인 회무침에도 씹으면 녹색물이 터져 나올 것 같은 싱싱한 다슬기가 푸짐하게 올려집니다. 아~ 상큼하고 쫄깃한 밀양의 맛! 별미입니다.^^


들깨탕과 회무침 위에 푸른 물감을 뒤집어쓴 듯 싱싱한 다슬기가 푸짐하게 올려져 나옵니다. 쫄깃한 식감이 일품이지요!^^

    


'햇볕의 고장' 밀양이 놀라운 이유, 그 세 번째 이야기도 기다려주실 거지요?^^




이전 06화 비밀스러운 햇볕, 밀양이 내게 내려앉았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