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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라냥이 Oct 28. 2022

문화인류학자가 바라본 웹툰 속
新 가족주의

만화규장각 Web:zine 칼럼  기고


인류 대재앙 시대, 웹툰 속 가족의 관계가 달라지고 있다.


가족이란 이름으로 희생을 강요하거나 구별 짓기가 아닌, 타인과 이방인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가족의 일원으로 인정하는 새로운 가족의 탄생이다.

이미 21세기로 들어서며 일본 영화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그려 낸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와 <어느 가족>에서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아도 가족의 일원으로 받아들이고 그렇게 가족이 되어 가며 신자유주의가 붕괴시킨 가족의 개념을 영상 속에서 재현한다. 그리고 코로나 장기화 상황이 가져온 네오 패밀리즘, 타인과 우리는 가족이 될 수 있을까.

최근 연재를 마친 몇 편의 웹툰을 통해 달라진 가족의 의미를 살펴보자.



포스트 아포칼립스, 새로운 가족의 연결과 탄생


2022년 4월 최종완결된 <심해수>는 4년 5개월간의 연재 기간, 누적 조회수 1,000만회, 국내 웹툰 어워드 4관왕 석권 등 완성도 높은 스토리와 작화 스케일로 주목받은 작품이다. <심해수> 속 연대와 상생의 네오 패밀리즘은 우리의 현재며 미래다.

6성의 심해수 프로 작살꾼 아버지가 죽은 뒤 남겨진 보타와 리타, 이들 남매의 보호자가 된 카나는 서로를 가족으로 생각하며 자신의 목숨을 살려준 마테온의 아이 보타와 리타를 자식처럼 돌본다. 이들은 유니온 부산, 유니온 홍콩이라는 공간을 오가며 헤어짐과 만남을 거듭하며 가족으로 탄생한다. 심해수라는 거대 바다괴물 앞에서 인간은 생존을 위한 사투를 벌이고 수몰된 지구는 여전히 계급과 집단광기가 존재한다. 재앙에서 살아남은 인간을 인간답게 해 주는 건 타인을 받아들이는 카나의 가족 만들기. 카나는 어린 남매 보타와 리타의 돌봄을 넘어 전사로 성장시킨다. 포스트 아포칼립스 시대 심해수와의 격전을 이겨 낼 판도라 상자 속 남은 단 하나의 희망은 결국 새롭게 연결된 가족이다.


                           웹툰 < 심해수> 카나와 보타, 리타는 피 안섞인 가족의 일원으로 성장해간다.



연대하고 실천하는 이타적 이기주의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인어공주 모티프를 변용시킨 여성 영웅서사 웹툰 <경성의 인어공주: 고래별>은 더더욱 그러하다. 물거품으로 소멸되는 희생의 아젠다를 벗어나 복수를 완성시키는 개인 서사에서 나아가 결국 암울한 시대를 주도한 여성들의 연대와 상생을 보여준 <고래별>은 비장미와 숭고미로 막을 내린다.


수아의 부모는 그녀를 생선수레 10번을 들일 값인 단돈 6원에 여종으로 팔았지만 자신을 가족처럼 돌봐준 의현을 사랑하고 개인의 구원을 넘어 민족의 구원이라는 역사적 사명을 수행하는 존재로 각성한다. <고래별>에 등장하는 일제 시대 그들은 혈연을 넘어 동지이자 가족이었으며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과 대의를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연대하고 죽음도 숙명처럼 받아들인다. 작가는 수아의 죽음을 통해 독자들에게 가족의 의미를 던진다. 당신을 보살피고 성장시킨 사람, 나를 각성시킨 사람을 위해 사랑을 초월해 죽음까지도 갈 수 있는가? 결국 그녀에게 사랑과 조국은 동일어였음을 독자로 하여금 깨닫게 한다. 의현을 대신해 거사를 감행한 수아의 죽음 이후 성장한 진규를 만나는 건의 마지막 장면을 통해 작가는 미래 세대의 희망이란 메시지를 전달한다. 죽음이 다가 아니라고, 불꽃처럼 산화한 이들이 남긴 생명이란 희망이 짓밟힌 세상을 다시 구원할 것이라고...

                      웹툰 < 고래별: 경성의 인어공주> 2023년 상반기에는 드라마 방송이 되지 않을까.


영화 <부산행> 기차의 난리통에서 살아남은 성경이 뱃속의 아이와 공유의 딸 수안이를 데리고 햇빛 찬란한 터널 밖으로 걸어 나오던 그 장면처럼 말이다.

수아의 희생은 자신에게 글을 가르쳐 주고 죽은 듯 무료했던 영혼에 생명을 불어줌으로써 가족의 의미를 가르쳐준 의현과의‘관계 맺기’에서 나아가 미셸 마페졸리가 주장한 운명공동체를 보여준다. 수아가 선택한 운명적 연대는 개인적 복수라는 미미한 시작이었지만 결국 운명공동체였던 그들을 구원하고 민족의 구원이라는 나비효과를 가져온 창대한 결말이 되었다는 점에서 이타적 이기주의의 실현이 된 것이다. 그녀는 실천했기에 아름다울 수 있었다.



성찰을 넘어 연대와 동반으로 : 타자가 된 가족을 받아들이는 법 <며느라期> VS <좀비가 되어버린 나의 딸>


SNS에 연재하다 카카오 TV 웹드라마로 제작되어 인기를 얻은 웹툰 <며느라期>는 평범한 여주인공이 결혼 이후 시월드라는 타자의 세계로 진입하며 겪게 되는‘잔잔하고도 선량하게 포장된 일상의 폭력’과 ‘젠더 불평등을 어떻게 극복하는가’를 보여준다. 박기수는 여성주의 웹툰으로서 <며느라期>의 가치를 여성 스스로의 성찰과 세대 간의 연대를 통한 해결 모색과 성찰을 통한 새로운 주체화의 방향 제시라고 말한다.


웹툰 <좀비가 되어버린 나의 딸>은 어떤가. 수아가 자신의 딸이 아닌 누나의 친딸임이 밝혀지는 중반부를 넘어, 결국 수아에게 물리는 것을 스스로 선택한 정환을 통해 수아는 인간의 모습을 되찾는다. 이윤창 작가가 말하고자 한 바는 비단 생물학적으로 1/4만의 핏줄이 흐르는 아버지 정환의 숭고한 희생만은 아닐 것이다.

좀비가 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라는 질문에‘사랑하는 사람을 혼자 두지 않는다’라고 쓰는 정환의 모습은 <좀비가 되어버린 나의 딸>이 가진 가족의 소통과 관계에 대한 주제의식을 명료하게 보여준다. 이물, 곧 타자가 되어 버린 가족을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이 두 작품은 결국 타자의 세계에서 공존과 상생의 무게를 어떻게 견뎌낼 것 인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며느라期>와 <좀비가 되어버린 나의 딸> 모두 연재 전후로 웹툰 수용자들의 적극적 소통과 공감의 반응을 가져왔다는 점에서 결국 타자와 가족이 된다는 것은 혐오와 단절, 퇴치가 아닌 끊임없는 성찰과 연대, 동반을 통해 나아가야 함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타자가 된 딸 받아들이기 < 좀비가 되어버린 나의 딸> VS 타자에서 구성원으로, 혹은 가족 속 타자로 살아가기 <며늘 아기>



시대의 불안을 뛰어넘는 진정성의 소통


제국주의의 산물이라 비판받는 문화인류학이 영상 텍스트 시대로 돌입하면서 미디어 인류학, 영상 인류학이라는 이름으로 키를 바꾸고 항해하면서 인간의 다양한 문화의 양식을 연구하고, 그 관점에서 살펴보는 새로운 가족의 개념은 이렇게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최초로 부모 세대보다 더 가난하다는 MZ세대. 그들이 성장해서 대한민국 사회의 30~40대 중추 세력이 되었다. 그들도 가정을 이루고 부모가 되었을 것이다. 약 2년 6개월간의 코로나 장기화라는 크나큰 고통의 시간을 건너 이제 조금씩 일상 회복이 되는 지금, 엔데믹 시대에 다시 길을 묻는다.

가족이라는 좌표가 당신들을 구원해 줄 수 있는가? 그리고 그 가족의 개념은 반드시 DNA 복제를 통한 자가 세포 분열이라는 방법만은 아니며 따스한 온기를 느끼는 진정성 어린 타인과의 소통이 그 유일한 해결책이자 통로라는 것임을.

가족이라는 좌표가 당신들을 구원해 줄 수 있는가? 그리고 그 가족의 개념은 반드시 DNA 복제를 통한 자가 세포 분열이라는 방법만은 아니며 따스한 온기를 느끼는 진정성 어린 타인과의 소통이 그 유일한 해결책이자 통로라는 것임을.

우리를 웃기고 울리며, 가슴 먹먹한 감동을 선사하는 K-웹툰을 보면서 그러한 신 가족의 시대, 네오 패밀리즘이 도래하였음을 다시금 느낀다.


                                                                                     2022. 8. 17 만화규장각 Web:zine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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