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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ditor M Nov 27. 2023

"서울의 봄"이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일까?

높은 산 깊은 골 적막한 산하~
눈 내린 전선을 우리는 간다
젊은 넋 숨져간 그 때 그 자리
상처 입은 노송은 말을 잊었네


엔딩 크레딧이 오르며 극장 안에 이 비장한 노래가 울려 퍼질 때는, ‘마지막까지 굳이 군가를?' 하고 생각했습니다. 긴장감과 장중함이 동시에 넘치는 영화는 이제 끝났고 크레딧이 올라가는 마당인데 담담하게 가는 게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물론 저에게도 이 노래는 머리를 거치지 않고 바로 입에서 가사가 따라 나올 정도로 유명한 군가지만요.


‘높은 산 깊은 골…’로 시작하는 “전선을 간다”는 오랫동안 장병들에게 사랑을 받아온 군가의 명곡입니다. 2014년에 국방일보가 국군 병사들을 대상으로 좋아하는 군가가 뭐냐고 물었더니 육군 병사의 23%, 공군 병사 31%가 가장 좋아하는 군가로 이 노래를 꼽았습니다. 두 달 전 열린 ‘제10회 육군 군가 합창 경연대회’에서도 최우수상을 받은 특전사 흑표부대와 우수상을 받은 50사단 신교대, 5사단 전차대대가 모두 ‘전선을 간다’를 불렀을 정도입니다. 


‘전선을 간다’를 작곡한 고 최창권 선생은 육군본부 군악대 출신으로 한국 애니메이션 영화 최초의 OST인 ‘로보트 태권브이’의 유명한 주제가를 썼고, 1960년대에 영화계에 입문한 이래 “삼포가는 길”, “고교얄개”, “엄마없는 하늘 아래” 등 100편이 넘는 영화 음악을 만들어 2007년 제천영화음악상을 수상한 영화인입니다. 


그러니까 ‘전선을 간다’는 영화와 제법 인연이 있는 편이지요. 그런데 이 노래는 1981년에 발표됐기 때문에, 1979년 발생한 12.12. 군사 쿠테타를 다룬 영화 “‘서울의 봄”에는 ‘직접적으로’ 쓰여서는 안되는 노래입니다. 김성수 감독은 이런 사실 왜곡을 피하면서도 이 노래를 마치 “서울의 봄”의 메인 테마처럼 썼습니다. 


“수많은 군가를 배웠는데 이 노래는 군가 같지가 않더라구요. 가사도 슬프고… 사실 군가는 군인들한테 용기를 불어넣어서 총알이 쏟아지는데도 가서 죽어라 하는 게 군가잖아요. 하지만 이 가사는 군인이 그걸 느끼면서도 ‘내가 전쟁터에 계속 남아야 돼’ 하는 느낌의… 저는 군사문화나 군가를 싫어하지만 이 노래는 사랑하게 됐어요. 이번 영화를 할 때 그 생각이 딱 나더라구요. 이 노래를 반드시 써야겠다.” (김성수 감독 관객과 대화, 지난 9일)



부동산 쪽에 ‘임장(臨場)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현장에 가서 실제로 매물을 살펴본다는 의미입니다. 오디오나 레코딩 쪽에는 ‘임장감(臨場感)’이라는 표현이 있지요. 공연에서 직접 듣지 않고 스피커나 이어폰으로 연주를 듣는데도 마치 현장에서 실제로 듣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 쓰는 표현입니다.


침체의 늪에 빠진 한국 영화를 구원할 기대작으로 평가받는 “서울의 봄”이 개봉했습니다. “서울의 봄”은 한국 현대사의 비극이자, 역사적 여진이 남아 있는 12.12. 군사 쿠테타의 핵심 장면 9시간을 정면으로 다룬 최초의 한국 영화입니다.


박 대통령 살해 사건 이후 계엄사령관을 맡았던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의 공관에 부하인 전두환 보안사령관(합동수사본부장) 세력이 들이닥쳐 총격전을 벌이며 정 총장을 불법 체포, 연행하는 동시에 하나회 인맥을 동원해 군대를 서울로 진격시켜 국정을 장악하기까지 9시간을 그야말로 ‘임장감’ 넘치게 그려냅니다. 

 

"서울의 봄"의 한 장면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조금의 머뭇거림도 없는 반 박자 빠른 편집점과 반란군과 진압군을 충돌하듯 이어 붙인 교차 편집, 불꽃 튀는 대사들 사이로 치고 빠지는 음악과 효과의 타이밍이(소위 ‘기깍기’) 마치 수십 대의 카메라를 동원해 제대로 컷팅된 라이브 중계를 보는듯한 현장감을 만들어냅니다.


79년 당시 서울의 풍경을 복원해낸 미술과 CG 또한 볼만한데, 특히 CG가 적재적소에 딱 필요한 만큼만 쓰였다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김 감독은 카메라 앵글과 구도에서 79년 당시의 자료 화면을 참고했다고 밝혔는데 뉴스에서 한번은 본 듯한 앵글이 정교하게 세공된 D.I.(색보정 등 후반작업)와 만나 그 시절의 ‘때깔’이 나왔습니다.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육군본부 오프닝 몹씬으로 시작해 전두광의 짚차를 따라가는 부감샷이 인상적이었던 광화문 엔딩 몹씬으로 끝나는 “서울의 봄”을 통해 보는 ‘그날 밤의 이야기’는 글자 그대로 ‘영화적 임장’이었습니다.


   “서울의 봄”이 개봉하면서 지난 7년 동안 5공화국의 시작부터 끝을 다룬 4부작(테트랄로지)이 자연스럽게 완성됐습니다. 87년 민주화 항쟁을 다룬 “1987”에 이어 80년 광주 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택시운전사”가 개봉했고, 이어 유신 독재의 최후를 그린 “남산의 부장들”과 79년 12.12. 군사 반란을 묘사한 “서울의 봄”이 차례로 개봉한 것이지요. 앞선 세 편의 영화들은 모두 흥행에 성공했습니다. CJ와 쇼박스 등 메이저 투자배급사들이 붙은 이 세 편의 관객 수 평균은 800만에 이릅니다. 그런 만큼 “서울의 봄”(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배급)에 대한 흥행 기대도 높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왜 지금 봐야 하냐고 묻고 싶었습니다. 신문과 방송을 비롯한 여러 미디어를 통해 이미 소상히 알려졌고, 쿠테타의 두 장본인도 사법과 역사의 단죄를 받고 유한한 생을 마감했는데 영화로써 더 할 말이 있을까, 그저 흥행을 위한 관성적 선택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겁니다. 


처음 받아 본 시나리오는 다큐멘터리 같아서 사양했었다는 김성수 감독은 픽션을 가미해 시나리오를 다시 쓰면서 “관객들을 그 상황으로 밀.어.넣.고. 관심을 가져달라고 말하고 싶었다”고 밝혔습니다.


“끝까지 맞섰던 군인들 때문에, 비록 그들은 끝내 졌지만, 그들(의 저항) 덕분에 나중에 반란죄가 성립했습니다. 이 영화를 보면 (관객들이) 12.12.가 반란군의 승리의 역사가 아니라 이에 맞섰던 군인들의 역사로 인식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두광의 집에서 비밀 회합 중인 하나회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대통령 유고'라는 국가 최대의 비상 사태가 벌어졌는데도, 반란군의 본거지인 경복궁 30경비단에 모인 '원스타'부터 '쓰리스타'까지 대한민국의 즐비한 하나회 장군들은 내무반의 일개 사병들보다 못한 처신을 보여줍니다. 군인의 본분은 잊고 오로지 사익과 일신의 안위를 위해서 수도권은 물론 전방의 휘하 부대를 서울 광화문까지 진격시키는 그들.


저에게 인상적인 대사가 있었습니다. 극 중 반란군의 리더 전두광(황정민)이 막 하나회 멤버가 된 듯한 초급 장교로부터 충성 서약을 받는 장면입니다. 


“목숨을 바치겠습니다!”


(가볍게 받아 넘기며) “알았어 인마” 


이어 전두광은 신입 하나회 장교에게 자신의 ‘뽀대나는’ 의자에 앉아보라고 권하며 말합니다.


“이제부터 자네는 나야. 나는 자네고.”


일견 멋져 보이는 대사지만 카르텔은 이렇게 시작되지 않습니까. 영화에서 하나회 멤버끼리 대화할 때 서로 부르는 호칭은 협잡이 어떻게 싹트고 전개되는지 보여줍니다. 이들은 처음에는 서로 “사령관님”, “장군님” 등으로 부르며 시작합니다. 그러다 이따금 “선배님”이 튀어나오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상황이 좀 더 긴박해지면 “형님”이 되고 나중에는 아예 ‘님’자도 떼고 “형”이라고 부릅니다. 사령관님->장군님->선배님->형님->형의 카르텔. 12.12. 반란이 사적 패거리들의 범행에 불과했다는 점을 드러내는 디테일입니다. 


반면 진압군의 상징인 수도경비사령관 이태신 장군(정우성)은 독립적인 인간입니다. 중과부적인 상황에서도 전두광과 최후의 일전을 치르러 광화문으로 진격하겠다는 그를 부관이 막아서자 결연하게 말합니다. 


“너는 네 사령관이 전두광이한테 투항하는 꼴이 그렇게 보고 싶냐, 내 눈앞에서 내 조국이 반란군한테 무너지고 있는데 끝까지 항전하는 군인 하나 없다는 게… 그게 군대냐? 남들이야 내 알 바 아니야, 각자 소신대로 인생 사는 거니까."


부관은 사병들까지 무모하게 희생시킬 수 없다며 이태신 장군을 막아 서며 총을 겨눕니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어 더 쓰지는 않지만, 정체절명의 순간에 권총을 둘러싸고 전두광과 이태신이 후배 군인들과 벌이는 실랑이는 독립적인 인간과 패거리의 ‘클라스’가 어디서 갈리는지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이런 순간에 내리는 판단은 자신이 처한 위치가 아니라 자신이 살아온 삶의 연속성에서 나온다. 결정을 내리는 중요한 위치에 있었던 사람들, 엘리트 군인이라고 자부하는 사람들 대부분이 형편없었던 사람들이었던 것이다.” (김성수 감독 신문 공동 인터뷰. “한겨레”에서 재인용)


이태신 장군 캐릭터는 “서울의 봄”에서 가장 허구가 많이 들어간 인물입니다. 다큐멘터리와 극영화 사이에서 대체로 중심을 잘 잡고 있는 이 영화에서 (감정의) ‘과잉’을 느낀다면 그건 전두광이 아니라 이태신 장군 캐릭터와 그가 나오는 씬 때문일 겁니다.

  

이태신 장군 역의 정우성 /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하지만 김 감독의 말처럼, 이태신 장군이라는 캐릭터에는 정우성이 배우로서, 한 사람으로서 쌓아온 세월과 삶의 연속성이 고스란히 녹아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연기의 테크닉을 넘어서는 문제입니다. 사실 정우성의 본래 보이스 컬러는 결연함과는 거리가 있는 편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우성만큼 이태신 장군의 진정성을 보여줄 수 있는 배우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투 톱인 황정민과 정우성은 물론이고 대사가 있는 배역만 60여 명에 이르는 뛰어난 배우들이 “서울의 봄”을 한편의 ‘군무(群舞·軍舞)’를 보는 듯한 칼 같은 앙상블 연기로 미장센을 꽉 채우는데, 그중에는 "D.P."에서 나란히 좋은 연기를 보여줬던 김성균, 정해인 배우도 있습니다. 


특히 김성균 배우는 이 영화에서도 헌병입니다. 육군본부 헌병감(준장)으로서 반란군에 끝까지 맞섰던 삼인의 별 가운데 한 명으로, 고위급 장성들이 나부터 살자며 육군본부 벙커를 버리고 달아날 때 홀로 끝까지 남아 육본을 지킵니다. 고 김진기 헌병감을 실제 모델로 한 이 인물의 영화 중 이름은 ‘김준엽’입니다.


김.준.엽. 


독립운동가이자 사학자, 교육자로서 ‘고려대학교의 영원한 총장’으로 불리는 인물의 이름이기도 합니다. 일제 학도병으로 끌려갔다 탈출해 광복군에 합류한 김준엽 선생은 훗날 고대 총장 시절(1982~1985) 12.12.로 권력을 탈취한 전두환 정권에 맞서 학생들을 보호하고 소신있게 학사를 운영하다 사실상 강제로 3년 만에 총장직에서 물러나야 했습니다. 


박정희 정권부터 김대중 정권에 이르기까지 총리직을 포함해 도합 12차례나 입각을 제안받았지만 모두 사양했고, ‘어용 총장 물러가라’는 시위가 대부분이었던 군사독재정권 시절에 ‘총장 사퇴 결사 반대’라는 전무후무한 학생들의 시위를 이끌어낸 장본인인 김준엽 선생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현실에 살지 말고 역사에 살아라. 역사의 신을 믿으라. 정의와 선과 진리는 반드시 승리한다.”


역사는 반복됩니다. 그리고 역사는 현실의 패자를 승자로, 승자를 패자로 만드는 힘이 있습니다. “서울의 봄”은 어쩌면 이 이야기를 하러 역사가 불러 낸 영화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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