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다.
많은 이들이 ‘올해의 발견’ 중 하나로 꼽는 이 영화의 제목을 ‘조용한 아침의 나라(The Land of Morning Calm)’로 지었다면 영화 내용과 잘 어울렸을 것이다. (실제로 이 영화의 영어 제목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이 영화는 한국의 현실에 대한 강력한 풍자이고, ‘조용한 아침의 나라’는 한국의 현실에 대한 강력한 반어법이기도 하므로.
하지만 이 영화의 제목은 뜬금없게도 ‘아침바다 갈매기는’. 이 제목은 영화 내용과는 거의 상관이 없다. 이 말인즉슨 제목과 내용 간의 괴리를 관객이 상상으로 채워 넣어야 한다는 것이고, 제목의 뜻을 다양하게 해석할 여지가 크다는 것이다. 영화 제목을 정하는 데야 여러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1승》,《소방관》처럼 정공법으로 가는 방법과 《헤어질 결심》,《기생충》처럼 에둘러 가는 방법이 있는데, 이 영화 《아침바다 갈매기는》은 후자 중에서도 윗길이라 할만큼 은유의 농도가 짙다. 아니, 어쩌면 은유가 아니라 감독이 그저 자신의 심상에 따라 갖다 붙인 것일지도 모르겠다.
동해안의 한 작은 어촌에 사는 영국은 고기잡이배 선장이자 베트남전 참전 군인이다. 아직 해도 뜨지 않아 사위가 컴컴한 어느 날 새벽, 영국은 자신의 아들뻘인 유일한 선원 용수와 함께 고기를 잡으러 바다로 나서는가 싶더니 뱃머리를 돌려 몰래 어느 포구로 숨어 든 뒤 용수를 어디론가 떠나보낸다. 이로써 영국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보험사기극에 발을 들여놓게 된다.
용수는 고깃배에서 실족해 바다에서 실종된 -사실상 사망한- 걸로 기정사실화된다. 보험금은 그의 베트남인 아내가 받게 돼있다. 용수는 아무런 희망이 없는 어촌 생활을 접고 베트남으로 밀항해 부인과 새 삶을 살아가고자 한다.
문제는 베트남 아내인 영란(베트남명 카작)과 어머니 판례조차 용수의 이런 계획을 모른다는 것이다. 용수의 실종 소식을 들은 영란은 하혈해 병원으로 실려가고 판례는 매일 같이 항구에 나가 해경의 수색선을 하염없이 기다린다. 관객과 자신만 빼면 아무도 모르는 이 사건의 전말을 함구한 채 하루 빨리 용수의 사망을 국가로부터 인정받아야만 하는 영국은 한국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는 어촌 공동체-경찰-출입국관리사무소를 70대 독거 노인의 힘으로 맞부딪혀 나간다.
이유(理由): 어떠한 결론이나 결과에 이른 까닭이나 근거
사정(事情): 일의 형편이나 까닭
맨날 후줄근한 점퍼 차림으로 다니던 영국이 오랜만에 양복을 차려 입고, 자신의 트럭을 몰아 영란과 함께 출입국사무소에 왔다. 실종된 용수와 거동이 불편한 판례 대신 한국말이 서툰 영란의 입과 발이 되어준 것이다. “같은 동네 사람” 자격으로. (물론 이 자격은 요즘 사회에서는 ‘자격 미달’이다)
출입국사무소 여직원은 영란이 제출한 서류 더미를 슥슥 넘겨보더니 펜으로 툭툭 치며 대꾸한다. 남편 용수가 같이 와야 한다고. 제출한 불출석 사유서는 싸인을 위조한 거 아니냐고. 이윽고 이 직원은 자리에서 일어나 상사와 상의하고 돌아오더니 서류 통과를 못 시켜주겠다고 말한다.
-선생님, 외국인은 2년 지나면 귀화 신청 가능하세요. 그게 안 된다고요.
-결혼해서 2년을 살았는데 아직 한국 사람이 아니라고?
-법적으로요. 애도 없고.
-애를 안 가진 게 아니라 얼마 전에 유산을 한 건데.
-다들 이유가 있죠.
-이유가 아니라 사정이 있지 않나? 필요한 서류 다 가져온 거 아닌가? 이 말 못하는 애가 이렇게 준비를 많이 했는데 사람이 유도리가 있어야지.
-남편하고 같이 오라고 저희는 전달을 했고요.
-바다에 빠진 사람을 어떻게 데려오나?
-바다요? 허. 또 이유가 있네요.
사실 출입국사무소 직원이 잘못 한 건 없다. 그는 법대로 했다. 어려운 처지에 놓인 이주 외국인 여성과 촌로를 매우 ‘싸가지’없는 태도로 응대했을 뿐이다. 그런데 그 태도에서 실종된 것은 사람에 대한 예의와 연민뿐 아니라 상황을 총체적으로 이해해보려는 사고(思考)이고 생각이다.
맥락적 사고의 실종 시대다.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다'의 시대다. 단편적인 이유가 중요하지 종합적인 사정이나 맥락은 ‘알빠임’이다.
《아침바다 갈매기는》은 우리에게 ‘이유’를 넘어 ‘사정’을 한번 생각해보자고 말한다. 이주 외국인과 이주 노동자, 지방 소멸, 인구 감소, 노인 빈곤, 행정 편의주의, 빗나간 부성과 모성, 가족과 공동체 등등에 대해 그 속 사정을 한번 들여다보자고 말한다. 전작 《불도저를 탄 소녀》에서도 보여줬던 박이웅 감독의 특유의 강력한 ‘이야기’와 어촌계에서 막 튀어온 것 같은 윤주상(영국)의 연기가 영화를 흥미진진하게 끌고 간다.
아침바다 갈매기는 금빛을 싣고
고기잡이 배들은 노래를 싣고
희망에찬 아침바다 노저어가요
희망에찬 아침바다 노저어가요
‘아침바다 갈매기는’은 동요의 노랫말에서 시작해 소설 제목에도 등장한 적 '족보 있는' 문구이다. 작곡가 권길상(작사 문명호)이 한국전쟁 당시 상처 입은 동심에 희망을 주고자 만든 ‘바다’라는 동요의 첫 소절이고, 성석제 작가의 소설집 『재미나는 인생』(1997년 초판)에 실린 단편 「아침바다 갈매기는 금빛을 싣는다」의 일부이기도 하다.
이 단편의 화자(話者)는 “아침 바다 갈매기는 금빛을 싣는다는 것, 고기잡이 배들은 노래를 싣는다는 것. 어릴 때 배운 그 노래를 부를 때마다 이상하게 가슴이 아려왔다”고 속으로 중얼거린다. 성석제는 2011년에 펴낸 에세이집 『칼과 황홀』에서도 “‘아침 바다 갈매기는 금빛을 싣고 고기잡이배들은 노래를 싣고’, 문득 떠오른 노랫말이 주는 서정적인 느낌이 몸을 적셔왔다.”고 쓴 바 있다.
지나치게 서정적이지 않느냐는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박이웅 감독이 이 영화 제목을 《아침바다 갈매기는》으로 단 데는 이유가 아니라 사정이 있다. 어린 시절 성석제의 소설을 읽다가 이 구절의 정서가 뇌리에 박혔던 박 감독은 15년 전에 시나리오를 쓸 때부터 가사 내용은 밝은데 묘하게 서글픈 감흥이 드는 이 구절과 닮은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슬프지만 따뜻한 영화를.
영화 《아침바다 갈매기는》의 바다는 동해안에 있는 남애항의 바다다. 소설 『재미나는 인생』의 바다는 서해안 강화도의 바다이고, 『칼과 황홀』에 나오는 바다는 남해안 여수 앞 바다다. 그리고 동요 ‘바다’의 바다는 인천 앞바다다. 우연일 테지만 이 갈매기는 우리 바다 삼면을 한 바퀴 둘러가며 금빛을 싣고 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