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불공평하다. 세계 역시 불공평하다. 개인 차원에서도 그렇고 국가 차원에서도 그렇다. 소위 ‘지정학적 위치’ 이야기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우리는 역사적으로 많은 침략을 받고 고통을 겪었다. 중국 대륙을 차지하려는 세력들이 전쟁을 벌일 때도, 섬나라 일본이 대륙을 치러간다는 명분을 걸었을 때도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우리가 짓밟혔다. 병자호란, 임진왜란은 그렇게 일어난 전쟁이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 기사를 훑어보다가 러시아군이 진격했다는 도시 중 낯설지 않은 지명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오데사(Odessa).
오데사는 우크라이나 남부이자 흑해 북부에 위치한 항구 도시로 우크라이나의 문화, 관광, 해상 교통의 중심지다. 2020년 기준으로 우크라이나에서 3번째로 많은 1백만 명의 인구가 산다. 러시아 제국 통치 시기부터 '흑해의 진주'라고 불릴 정도로 아름다운 도시다. 그 아름다운 도시에 전쟁이 벌어졌다.
오데사가 나의 눈에 익은 것은 세계영화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걸작 "전함 포템킨(1925)"때문이었다. "전함 포템킨"은 구 소련의 저명한 영화감독 세르게이 에이젠슈테인이 1905년 오데사에서 벌어졌던 제정 러시아 흑해 함대 수병들의 반란을 다룬 실화 바탕의 영화이다. 구더기가 나오는 음식을 먹으라는 제정 러시아 장교들에게 화가 난 사병들이 들고 일어나자, 오데사 시민들이 동조에 나서는데 러시아 짜르의 군대는 병사들과 오데사 시민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발포한다.
여기서 세계영화사에 길이 남을 '오데사의 계단' 씬이 나온다. 발포하는 황제의 군대와 피를 흘리며 쓰러지는 시민, 엄마가 쓰러지면서 홀로 계단을 굴러내려가는 유모차, 깨친 채 바닥에 나뒹구는 안경, 공포에 질려 울부짖는 여인 등이 숨가쁘게 교차편집된다. 장면 그 자체가 아니라 장면과 장면의 결합, 즉 편집이 새로운 의미를 만들어낸다는 변증법적 ‘몽타쥬 이론’의 영화적 탄생이었다.
64년 뒤 "미션 임파서블" 1편을 연출한 당대의 할리우드 흥행 감독 브라이언 드 팔마가 숀 코네리, 로버트 드 니로, 케빈 코스트너를 출연시켜 만든 영화 "언터쳐블(1989)"에서 오마주한 것으로도 유명한 장면이다. "언터쳐블"이 한국에서 개봉한 1989년 당시 우진필림은 소련영화수출입공사와 계약하고 "전함 포템킨"을 비롯한 에이젠슈타인의 작품 9편을 국내에 들여왔다. 당시 한국과 정식 수교 전이었던 소련 영화의 첫 직수입이었다.
러시아의 새로운 짜르로 불리는 푸틴이 오데사로도 쳐들어갔다. 기사를 읽으면서 이 오데사가 그 오데사인가, 설마설마했다. 구 소련의 몰락으로 1991년 우크라이나가 독립하면서 오데사는 동유럽의 대표적인 관광 도시로 성장했다. 비극의 무대였던 오데사의 계단도 '포템킨 계단'으로도 불리며 유명 관광명소가 됐음은 물론이다.
오데사의 역사는 험난했다. 14세기부터 이탈리아 제노바 공화국, 오스만 제국, 스페인 등이 차례로 지배력을 행사했고, 19세기 중반 크림 전쟁 기간에는 영국과 독일 해군의 포격으로 시가지 상당 부분이 파괴됐다. 2차 세계대전 때는 나치와 루마니아군에 격렬히 저항하다 6만여 명의 시민이 죽거나 다쳤다. 우리도 식민지가 되거나 강대국 간의 패권 전쟁에 휘말려 아름다운 문화재를 약탈당하고 건축물들은 폐허가 되다시피한 아픔을 겪었다. 유형의 자산뿐 아니라 동족 상잔의 비극과, 세계에서 유일하게 같은 언어를 쓰는 동족끼리의 증오라는 어마어마한 상처와 손실을 낳았다. 물론 오데사는 우리와 달리 유대인, 우크라이나인, 러시아인이 함께 사는 다민족 도시다. 그래도 구 소련 체제 하에서도 가장 자유롭고 개방적인 도시였다고 한다.
이 아름다운 흑해 도시에 미사일이 날아들었다. 더이상 오데사의 비극 씬 같은 장면이 벌어지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그 비극이 일어난지 20년 뒤 “전함 포템킨”이란 영화가 만들어졌고, 117년 뒤인 오늘, 같은 도시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인류는 역사에서 배우는 것이 없는가, 아니면 역사에서 배워서 같은 비극을 되풀이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