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의 에밀리"와 프랑스 문화
시즌2까지 나온 넷플릭스의 세계적인 히트작 “에밀리 파리에 가다”(Emily in Paris)는 프랑스 문화와 프랑스인을 클리셰로 묘사합니다. 이를테면 직장인들이 점심 시간을 와인을 곁들여 길게 쓴다든가,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출근한다든가, 직업 이외의 삶을 중시한다든가 하는 것들이죠. 일례로 전형적인 프랑스 회사원 루크가 미국 본사에서 파견 나온 신입 직원 에밀리에게 말합니다. “너는 일하기 위해 사니? 우리는 살기 위해 일해(You live to work? We work to live)라고 하죠. “에밀리 파리에 가다”가 묘사한 프랑스 문화를 놓고 '사실과 비슷하다, 사실과 다르다’며 시청자들 사이에서 입씨름도 벌어지지만, 프랑스 문화가 에밀리의 모국인 미국 문화와 다른 지점이 있는 것 만큼은 분명합니다. 이 차이를 스테레오타입화한 “에밀리 파리에 가다”는 에밀리가 프랑스어를 제대로 배울 생각이 별로 없어 보이고, 미국적 마케팅 방식의 실용성과 효율성을 넌지시 드러내기도 하면서 ‘미국뽕’(American exceptionalism)이란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프랑스는 전통에 대한 경의 또는 고집스러움(또는 우월의식?)도 남달라서 칸 영화제는 세계 최고(最古)의 베니스영화제도 포기한 ‘경쟁부문 넷플릭스 영화 금지’를 아직도 고수하고 있습니다. “에밀리 파리에 가다”가 파리의 아름답고 낭만적인 '도시' 풍경을 잘 묘사해서 코로나 시대에 여행 못 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듯이, 지난 2018년 개봉했던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이란 영화는 프랑스의 유명한 와인 산지인 부르고뉴 지방의 한 와이너리와 포도밭의 '시골' 풍경을 스크린에 잘 옮겨놓았습니다. 이 영화는 가업인 와이너리, 그리고 미각적, 시각적, 후각적 아름다움의 대상인 포도주를 놓고 벌어지는 가족 간의 갈등과 화해, 치유를 그려냅니다. 와인과 포도밭, 이런 영화적 소재는 왠지 프랑스에서 가장 잘 뽑아내지 않을까 하는 느낌이 듭니다.
'장미 전쟁'
신작 프랑스 영화 “베르네 부인의 장미 정원”(원제 “la fine fleurt”)은 ‘장미’를 소재로 한 영화입니다. 프랑스하면 와인, 퀴진, 패션 같은 것들만 유명한 줄 알았는데, 장미도 그중 하나인 모양입니다. 하긴 “베르사유의 장미”라는 유명한 만화도 있으니까요. 정원 문화가 발달한 프랑스에서는 원예사란 직업도 대대로 이어받을 정도로 전문성을 인정받과 관련 시장도 꽤 규모가 있는 것 같습니다.
마담 베르네는 15년 전 작고한 아버지의 뒤를 이어 장미 정원을 운영하는 원예사입니다. 실력과 명성은 있지만 갈수록 장미가 팔리지 않아 살림살이는 쪼그라듭니다. 장미 콩쿠르에 부스하나 마련하지 못하고, 일꾼 한 명도 쓸 수도 없을 정도로 경영은 위태롭죠. 반면 업계의 큰손 라마르젤은 소규모 장미 원예 농가들을 속속 인수해서 몸집을 불리고 있습니다. 라마르젤에게 장미는 그저 상품에 지나지 않을 따름입니다. 그는 자본의 힘으로 장미 품종들을 싹쓸이해 8년 연속 장미 콩쿠르의 최고상을 받습니다(이름도 칸 최고상인 ‘황금종려상’과 비슷한 ‘황금장미상’입니다) 정원이 망해가는 걸 보다 못한 베르네 정원의 단 한 명의 충직한 직원 베라가 아이디어를 냅니다. 보호관찰 중인 사람들을 저비용으로 고용하는거죠. 사고뭉치인 이들을 가르치기도 하고 도움을 받기도 하면서 베르네 부인은 장미 콩쿠르 우승을 노릴만한 장미 품종 개발에 힘씁니다. 피고용인 중에는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청년 프레드도 있습니다. 장미 농장에 일하러 밭에 나온 첫날부터 핸드폰을 들여다보던 프레드는 베르네에게 한소리 듣습니다. “핸드폰은 치우고!” 문득 파리의 미국인 에밀리가 핸드폰을 신체의 일부처럼 들고 다니며 일거수일투족을 소셜미디어에 올리는 장면이 떠오릅니다.
아름다움 없는 삶이 무슨 의미가 있겠니?
베르네 부인은 고집스럽게 가업인 장미 정원을 지키려고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습니다. 베르네는 어머니의 패물도 팔고 집에서 쓰던 가구까지 팔아서 파산을 막아보려 안간힘을 씁니다. 영화의 한 대목에서 마담 베르네는 프레드에게 말합니다. “아름다움 없는 삶이 무슨 의미가 있겠니?” 마담 베르네 역을 맡은 프랑스의 국민 배우 카트린 프로(국제적으로는 카트린 드뇌브가 잘 알려져 있지요. 두 사람은 2017년작 "더 미드 와이프"에 함께 출연했습니다)의 입에서 이 대사가 흘러나올 때 어쩌면 이것이 바로 프랑스적 가치관 중 하나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프랑스 문화에 귀족적이고 사치스러운 부분도 분명 존재하지만 ‘아름다움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은 인간성의 중요한 부분이지요. 아름다움은 밥을 먹여주지 않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빵 만으로는 살 수 없는 존재입니다. ‘아름다움’ 대신에 장미, 문학, 영화, 음악, 예술을 넣을 수도 있겠지요. 일찌기 문학평론가 김현은 ‘문학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한국 문학의 위상”,1975) 라는 유명한 글을 통해 이렇게 밝혔습니다.
“문학을 함으로써 우리는 서유럽의 한 위대한 지성이 탄식했듯 배고픈 사람 하나 구하지 못하며, 물론 출세하지도, 큰 돈을 벌지도 못한다. 그러나 그것은 바로 그러한 점 때문에 인간을 억압하지 않는다. 인간에게 유용한 것은 대체로 그것이 유용하다는 것 때문에 인간을 억압한다 ...(중략)... 인간은 문학을 통하여 억압하는 것과 억압 당하는 것의 정체를 파악하고, 그 부정적인 힘을 인지한다. 그 부정적 힘의 인식은 인간으로 하여금 세계를 개조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당위성을 느끼게 한다.”
소울리스좌, 그리고 영혼의 몸부림
마담 베르네는 빵을 주겠다는 라마르젤을 거부합니다. “나는 그와 함께 일할 수 없어. 그에게 장미가 그저 상품이야. 나까지 팔 수는 없어. 장미는 내 인생이야.” 그러고 보니 광고회사 직원인 파리의 에밀리는 무엇이든 팔아야 하는 소셜미디어 중독자이고(생활이 곧 마케팅), 베르네 부인은 장미를 팔아서 생계를 유지하지만, 파는 것 자체가 목적이라기 보다는 부친의 가업과 장미의 아름다움을 지키고 싶어합니다. 우리 대부분은 노동력을 팔아서 살아갑니다. 베르네 부인은 직원들의 생계를 위해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정원을 팔지 말지 고민하지만, 같이 일하자는 라마르젤의 제안에 “나까지 팔 수는 없어”라고 나지막이 말합니다. 최소한 영.혼.은. 팔.지. 않.겠.다.는거죠.
최근 ‘소울리즈좌’라는 에버랜드 직원의 짧은 동영상이 천만 조회수 이상을 기록할 정도로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유명하다기에 찾아봤는데 한번 보기 시작하니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젊은 세대가 이 동영상에 환호하는 지점은 ‘영혼 없음. 주인의식 없음. 할 일은 함’이라고 하네요. 소울리스좌는 마치 입과 뇌의 네트워킹이 끊긴 듯 입은 끊임없이 안내멘트를 쏟아내고 있지만 표정은 무념무상이었고, 그 와중에도 눈동자는 계속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비단 젊은 세대뿐 아니겠죠. 현대인의 영혼없음은 역설적으로 영혼만은 팔지 않겠다는, 영혼만은 지키겠다는 몸부림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