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욱 감독과 탕웨이, 박해일 배우가 한꺼번에 들어왔다. 들이닥쳤다,라는 게 마음속의 더 정확한 느낌이었을 것이다. 살짝 당황스러웠다. 시사회에 앞서 열리는 인터뷰에는 대개 감독과 주연 배우가 차례로 한 명씩 들어와서 인터뷰를 하고 나간다. 감독이 일본인이라 통역이 필요했던 “브로커”도 그렇게 했다. 여러 명이 나란히 앉아있으면 아무래도 사람 별로 질문 시간이나 내용을 안배해야 해서 인터뷰어로서 마음 편한 환경이 아니다. 게다가 한국말을 거의 못 알아듣는 탕웨이 배우가 같이 앉아있으면 신경이 쓰일 수 밖에 없다. 그렇게 인터뷰는 시작되었다.
형사 영화인 '동시에' 로맨스 영화
박찬욱 감독의 제작사 이름은 ‘모호필름’이다. 그 모호가 이 모호인지는 확실치 않으나, 모호(模糊)란 ‘말이나 태도가 흐리터분하여 분명하지 않다’는 뜻이다. 박찬욱 감독의 신작 “헤어질 결심”이 그렇다. 박찬욱 감독은 그 모호함을 즐기는 것 같다. 그 모호함이야말로 박찬욱 감독이 바라보는 세계와 인생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헤어질 결심”은 거칠게 요약하면 형사 박해일이 남편을 살해한 것으로 의심되는 피의자 탕웨이를 심문하고 수사하다가 (서로) 좋아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칸 영화제에서 어느 기자가 물었다. “이 영화를 50%의 수사 드라마와 50%의 로맨스 영화라고 표현하면 되겠습니까?”(이 영화는 섞어찌개입니까?) 박찬욱 감독은 답했다. “그보다는 100%의 수사 영화와 100%의 로맨스 영화라는 말이 더 낫겠습니다.”(섞어찌개라니. 돼지고기와 김치가 혼연일체된 김치찌개에 더 가깝지) 이 말은 말장난이 아니다. 박 감독은 이 영화가 수사물인 동.시.에. 로맨스물이라고 칸에서부터 수십 번 말했다. 수사물인지 로맨스물인지 모호한 ‘동시에’ 모호하지 않다는 점이 중요하다. 아니, 모호함이야말로 본질에 가깝다는 주장으로 들린다. 박 감독의 ‘100/100’ 론을 100% 이해한다면서 물었다.
“그런데 감독님, ‘동시에’ 라는 점이 왜 중요하지요? 영화의 주제와도 관련이 있나요?”
“수사를 하는 한편 경찰서 밖에 나가면 연애도 하는 남자의 이야기가 아니라 수사의 과정에서 사랑의 감정이 싹트고, 유혹을 하고, 의심을 하고, 밀당을 하고, 이 모든 것들이 수사와 분리될 수 없다는 것, 직업적 자부심이 강한 형사 박해일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직업 세계와 사랑과 이별의 과정이 하나라는 것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피의자 탕웨이가 형사와 관계를 맺는 것도 사랑의 과정과 분리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현실에서 몇 개의 페르소나를 동시에 살아간다. 아버지인 동시에 아들, 아들인 동시에 오빠, 오빠인 동시에 후배, 후배인 동시에 선배, 선배인 동시에 연인 등등… 이런 역할극은 인간이 사회적 동물인 이상 어쩔 수 없는 것인데, 그러한 점을 얘기하는 것인가? 하고 어쩌면 쓸데없이 복잡하게 생각하고 있는데, 박찬욱 감독은 장르에 대한 이야기로 이어나갔다. ”수사관이 용의자와 맺는 관계를 다루는 필름 누아르를 보면 보통은 장르적 속성에 따라 어떤 결말로 가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 장르적 속성은 절반까지만 쓰고 그다음부터는 거기서 벗어나서 새로운 이야기로 가보려고 했던 제 의도와 관계가 있습니다.”
‘동시에’는 박찬욱의 영화는 장르의 관습에 충실히 복무하는 데서 그치는 영화가 아니라는 선언이었을까. “‘헤어질 결심’은 폭넓게 말해서 필름 누아르라고 할 텐데 이런 류의 영화가 사실 흔하잖아요. 형사와 아름다운 여성 용의자와 밀고 당기고 두뇌 게임을 한다, 이런 얘기는 ‘원초적 본능’도 있고 많지 않습니까. 장르의 관습이라는 것이 있고 관객이 기대하는 바가 있을텐데, 저는 이 영화가 절반 이상 지날 때까지는 관객은 자기가 보고 있는 영화가 그런 영화일 거라고 짐작하고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렇게 관객을 오도한 뒤에는 ‘아, 내가 가졌던 선입견과는 다르게 흘러가는구나’하고 관객이 깨닫게 했을 때 즐거움이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팜므파탈이라고 단정했던 탕웨이에 대해서는 미안한 마음까지도 들 것 같았어요.” (“헤어질 결심” 기자간담회)
'뱀과 전갈의 미인' 탕웨이
팜므파탈(femme fatale)은 필름 누아르 영화에 등장해 남성 주인공을 파멸로 몰아넣는 악녀 또는 요부로 불리는 여성 캐릭터이다. 칸에서 한 외국 기자가 탕웨이 배우에게 “팜므파탈로 나오셨는데, 소감이 어떠세요?”라고 물었던 적이 있다.
“형사가 나오는 수사극에서 그런 여자가 나오면 지금까지는 팜므파탈이라는 단어밖에는 형용이 안 됐었구나. 그래서 그분이 그렇게 물었구나 생각했어요. 제 역할이 팜므파탈이었나? 지금 생각해도 그렇다고는 생각 안 해요.” 중국에서는 팜므파탈을 ‘사갈미인(蛇蝎美人)’이라고 부른다고 알려주며 탕웨이가 말했다. 뱀과 전갈의 미인이라니, '치명적 여인'이라는 뜻의 팜므파탈보다 훨씬 더 치명적으로 들린다.
칸에서 귀국한 직후 엄청난 기자들이 몰렸던 제작보고회 때도 느꼈지만 탕웨이 배우는 당당하고 품위 있는 사람이었다. 한국 감독과 결혼해 살고 있지만 한국이 모국은 아니어서 위축될 수 있는 환경일텐데도 전혀 그런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다. 사실 십수 년 전 이안 감독의 “색, 계" 한국 개봉 때 따로 인터뷰한 적이 있는데 그때만 해도 신인이었던 그녀는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했었다. 이번 인터뷰와 기자간담회에서 탕웨이는 유머러스하고 유쾌한 답변도 곧잘 시도했는데, 언어적 장벽 때문에(마치 “헤어질 결심”에서 휴대폰 번역기 대화처럼 통역을 거쳐야 했으므로) 그녀의 의도가 잘 전달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녀가 인터뷰를 즐기고 제대로 소통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점은 충분히 알아챌 수 있었다. 탕웨이는 주로 중국어 통역을 통해 이야기하다 이따금 비교적 유창한 영어로 답했다. 중국, 할리우드, 한국에서 모두 작업해본 배우의 여유가 느껴졌다. “저는 지구인입니다. 그런데 밖에서 물어보면 저는 항저우(杭州)인이라고 답해요. 서호(西湖) 주변에서 태어나 거기서 어린 시절을 보냈어요. 누구나 뿌리는 있잖아요. 뿌리는 굉장히 중요해요.” 노마드처럼 사는 그녀에게 정체성을 물으니 이렇게 답했다.
“헤어질 결심”을 찍으면서 탕웨이는 각각 중국어, 영어, 한국어로 쓰여진 대본 3개를 가지고 다녔다. 영화에서 그녀가 말하는 한국어 대사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나온다. 먼저 중국어 대본을 보고 대사의 의미를 파악한 뒤 그걸 머릿속에 떠올리면서 한국어 대본으로 외워둔 한국어로 발성한다. 상대역인 박해일의 한국어 대사를 들으면서 중국어 대본에서 봤던 의미를 동시에 생각하면서 그에 맞춰 연기한다. “계속 변환하는 과정이었어요(It’s like switching switching)” 연기하는 탕웨이의 머릿속은 매우 복잡했을 것이다. 마치 답변을 들으면서 다음 질문을 동시에 생각해야 하는 기자의 머릿속처럼. 하지만 탕웨이는 그런 어려움을 딛고 때로는 ‘사갈미인’처럼 미스터리한 표정과, 때로는 순수하고 장난기 많은 여인의 미소를 자신에게서 교차해서 끄집어내며 감탄을 자아낸다. 마침내.
마.침.내.는 “헤어질 결심”에서 반복해서 나오는 중요한 단어다. 이 단어가 맨 처음 나오는 것은 남편이 죽은 뒤 경찰서에 출두한 탕웨이의 입을 통해서다. "산에 가서 안 오면 걱정했어요, 마침내 죽을까 봐." 남편의 죽음이 자살인지 타살인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어법상 잘못 사용된 이 부사는 묘한 감정과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박찬욱 감독과 정서경 작가는 이처럼 한국어 사용자가 느낄만한 독특한 언어적 이질감에서 발생하는 유머를 영화 곳곳에 심어 놓았다. (상영관에서 매번 싹을 틔울지는 알 수 없다. 이 영화를 두 번 봤는데 유머의 수율은 그리 높지 않았다) 탕웨이가 발음하는 '마침내'는 굉장히 탕웨이스럽게 들린다. 아니, '마침내'라는 단어가 곧 탕웨이 자신인 것처럼 느껴진다. 어딘지 모르게 강단 있고 주관이 뚜렷해 보이는 그녀처럼, 발음 끝에서 왠지 힘이 빠지고 마는 비슷한 의미의 ‘결국’과는 다르게 탕웨이의 '마침내'는 단호하고 우아하며, 글자의 조형성마저도 아름답게 느껴진다. ‘마침내’라는 단어가 탕웨이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순간, 그 음파는 박해일과 탕웨이 둘이 앉아있던 영화 속 공간은 물론이고 내 머릿속의 언어 구조에도 약간의 모호한 균열을 일으킨다.
웰컴 투 더 박찬욱 월드
“영화라는 것은 정말 수없이 많은 요소로 이루어져 있잖아요. 소품, 의상, 세트, 소리... 정말 어마어마한 숫자의 변수들로 이루어져 있고 그것 하나하나가 섬세하게 선택되고 배치되고 조화돼야 하는 건데, 그것이 아무렇게나 한 것이냐 아니면 심사숙고 끝에 나온 것이냐에 따라 분명한 차이가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 차이들은 결국 디테일에서 드러나는 거죠.” 영화 촬영 내내 탕웨이에게 한국어 대사의 발음과 성조를 디테일하게 시범했다는 박찬욱 감독이 말했다. “헤어질 결심”은 탕웨이로부터 시작한 영화라고 봐도 무방하다.
“정서경 작가가 여자 캐릭터는 중국인으로 합시다, 라고 제안을 했고, 제가 ‘왜 중국인으로 하지?’ 하자 ‘그래야 탕웨이를 쓸 수 있잖아요.’라고 답했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영화 만드는 방식은 좀 독특하다. 어.떤. 주.제.에.서. 출.발.한. 게.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먼저 박 감독은 스웨덴 추리소설 “마르틴 베크” 시리즈의 형사처럼 신사적인 형사가 나오는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그러다 유튜브에서 우연히 정훈희의 “안개”와 송창식의 “안개”를 잇달아 듣고는 너무 좋아서 이 노래가 나오는 영화도 만들고 싶어졌다. ‘그 사람은 어디에 갔을까 / 안개 속에 외로이 하염없이 / 나는 간다’ 같은 가사가 나오니 당연히 로맨스 영화일 수밖에 없다. “형사 이야기와 안개가 나오는 로맨스 이야기를 합쳐서 영화로 만들어보자. 여자 주인공은 탕웨이로 하고. 이렇게 시작된 거죠.” 요컨대 무슨 특별히 할 얘기가 있어서 만든 영화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 영화는 어쩌면 영화를 위한 영화다. 관객은 그 점을 알고 즐기면 된다.
영화를 위한 영화를 만들려면 그만큼 영화에 대해 많이 알아야 한다. 한때 평론가를 했을 만큼 영화적 식견이 풍부하고 예술 이해도가 높은 박찬욱 감독이니만큼 “헤어질 결심”을 보고는 다른 영화나 그림 등을 떠올리는 기자나 평론가가 많았다. 특히 히치콕의 걸작 “현기증(1959)”을 연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박해일이 탕웨이를 망원경으로 계속 훔쳐보는 장면에서는 히치콕의 “이창”도 생각난다) 고전적인 느낌의 디졸브 화면 전환이나 운전 중인 박해일을 향한 퀵줌, 배경으로 깔리는 클래식 음악 등도 할리우드 고전영화적 뉘앙스를 풍긴다. 칸에서 어떤 기자는 “헤어질 결심”의 파도 이미지에서 19세기 일본의 화가 카스시카 호쿠사이의 유명한 우키요에 작품 '가나가와 바다의 파도 아래'가 떠오른다고 했다. 또 다른 일본 기자는 마스무라 야스조 감독의 1961년작 “아내는 고백한다”(등산 중에 남편이 죽고 아내는 살인죄로 법정에 선다는 내용)와 유사성이 느껴진다고 박 감독에게 묻기도 했다. 이에 대한 박 감독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그런 느낌을 받는 것은 이해할 수 있으나 의식해서 인용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등산 장면에서 말러 교향곡 5번 4악장을 쓴 이유가 뭐냐는 질문도 나왔다. “사실 그 곡을 쓰고 싶지 않아서 오랫동안 도망 다녔어요. 그런데 편집과 어울리는 무드가 있어야 되고 여러 가지를 고려했을 때 아무리 도망쳐봐도 결국 이 곡으로 돌아오게 되더라고요. 제가 이 곡을 쓰고 싶지 않았던 이유는 다 아실 거예요. 루키노 비스콘티의 영화 “베니스에서의 죽음”에서 너무 잘 사용됐기 때문에 흉내 내는 것처럼 보일까 봐 그랬습니다.” (칸 영화제 공식 기자회견)
아는 만큼 보인다
이처럼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은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이 생각날 정도로 감독이 의도했든 안 했든 다양하고 풍부한 레퍼런스들이 존재하는 영화다. 봉준호 감독이 ‘봉테일’이라는 말로 디테일한 감독의 대명사처럼 됐지만, 박찬욱 감독 역시 “헤어질 결심”에서 놀랍도록 세심하게 세공된 화면 전환(효과)과 미장센, 현실과 허상을 넘나드는 연출, 정서경 작가가 함께 쓴 한 치밀한 대사의 조탁 등으로 자극적일 만큼 디테일하게 이성과 감성을 두루 애무한다. 곧 환갑인 감독이 이렇게 까지 탐미적일 필요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장면 장면을 마감했다. 애초에 취향에서 시작한 영화니 취향이 드러난 것일 뿐, 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주제곡이라 할 수 있는 “안개”(특히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나오는 함춘호 기타의 정훈희, 송창식 듀엣곡은 놓치지 않길 바란다)를 비롯한 음악은 인상적이었지만, 과감한 캐스팅이었고 성공적이었다고 감독이 자평한 조연은 개인적으로는 많이 어색했다. 연기자의 평소 이미지가 너무 겹쳐 보여서 영화에 몰입할 수 없었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처럼 보이게 해 달라고 주문했다는 인물 버전 영화 포스터와 마지막 바닷가 장면 연출에 쓰인 VFX와 색보정은 왠지 MSG맛이 느껴졌다. '대교약졸(大巧若拙)'이라는데 잘 다듬어진 것처럼 보이고, 실제로도 잘 다듬어진 이 영화의 뒷맛에는 살짝 그런 느낌이 없지 않았다.
인터뷰가 끝난 후에 알게 됐다. 세 사람이 함께 들어와서 인터뷰한 것이 괜찮은 선택이었다는 것을. 세 사람 모두 다른 사람이 질문을 받고 대답할 때 귀 기울여 경청했고, 답변이 부족하다 싶으면 추가 설명으로 거들었다. 탕웨이는 박 감독과 박해일이 뭐라고 답하는지, 한마디라도 더 알아듣고 싶어서 안달이었다. 인터뷰를 준비한 홍보사 쪽에서는 이런 경우가 흔치 않다고 했다. ‘씨네멘터리’ 23화에서 ‘헤어질 결심’이라는 제목에 대해 말한 바 있다. ‘헤어질 결심’은 멋진 영화 제목이고, 박 감독만이 관철할 수 있는 제목이라고. 마.침.내. 박 감독에게 직접 물어볼 수 있는 기회가 왔다.
“영화 제목을 직접 지으셨나요?”
“제가 지었습니다. 이 제목은 관객에게 ‘헤어질 결심? 정말 헤어질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유도하는 제목이예요. 우리는 다 알고 있잖아요. 예를 들어서 살 빼려는 결심을 한다고 해도 과연 그게 가능할까? 결심만 하고 실패하는 이야기가 아닐까? 하는 질문, 그런 호기심을 일으키는 제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관객이 한 번 듣고 '이런 영화인가 보다' 에서 머무르는 게 아니라 '어떻게 될까' 하고 궁금하게 만드는,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만드는 제목이어서 제 마음에 들었습니다.”
그리하여, 나도 이 칼럼의 제목으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이 제목이 이 글을 대표할 수 있는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탕웨이의 마침내’, 박찬욱의 ‘동시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