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훈 감독의 “외계+인 1부”가 드디어 개봉했습니다. ‘흥행불패’ 최 감독이 “도둑들”(2012)과 “암살”(2015)로 연이어 ‘천만영화’를 기록하며 소위 '쌍천만' 감독에 오른지 7년 만에 내놓은 신작입니다. SF액션영화인 “외계+인”은 카피나 줄거리 등에서 줄곧 ‘시간의 문이 열리고’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주인공들이 현대와 고려 시대를 타임머신처럼 왔다 갔다 하며 시공간을 넘나들기 때문이지요. 그런데 시간의 문은 열린다기 보다는 외계인 죄수를 관리하는 가드(김우빈 분)처럼 누군가가 여는 것으로 보입니다. 적어도 1부에서는요. “외계+인”이 개봉함으로써 역대 가장 치열한 여름 흥행 시장의 문도 활짝 열렸습니다.
극장가 최성수기인 매년 여름이면 대규모 개봉을 통해(와이드 릴리즈) 단기간 집중적인 흥행을 노리는 대작들이 두 세 편씩 개봉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올해는 특히 경쟁이 뜨겁습니다. 코로나로 개봉을 미뤄왔던 한국형 블록버스터 4편이 한꺼번에 여름 시장에 몰린 거지요. 이번 주부터 매주 한 편씩 제작비 2백억 원 이상 들인 한국영화 대작들이 4주 연속 개봉합니다. 영화를 매주 한편 이상 극장가서 보는 마니아 관객이 아니라면 대부분은 이 중 한 두 편을 골라서 보게 될텐데요, 여러분은 어떤 영화가 당기십니까? (참고로 우리나라 관객들은 연평균 4회 정도 영화 관람을 합니다.) 그나마 선택의 폭을 좁혀주는 것은 네 편의 영화가 모두 장르가 달라 취향껏 골라보기가 비교적 용이하다는 겁니다.
“외계+인”은 한국에서는 보기 드물게 외계인을 본격적으로 다룬 SF액션 활극으로 한국 최고의 VFX스튜디오라고 할 수 있는 덱스터 스튜디오가 참여해 외계 생명체와 우주비행선 등을 CG로 구현했습니다. 영화의 80-90%에 CG가 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그래픽과 실사가 얼마나 유기적으로 결합했는지, 비행선이나 에일리언, 로봇 등이 할리우드 프로덕션에 익숙해있는 관객들의 눈높이에 어느 정도 부합할지 관심사입니다. “도둑들”, “암살”처럼 한 영화에 7, 8명의 주연급 캐릭터를 늘어놓고도 지루하지 않게 결합해온 최동훈 감독의 특기가 “외계+인”처럼 시공간을 넘나들며 전개되는 복잡한 플롯에서도 성공할지, 공은 관객에게 넘어가 있습니다.
이번 주에는 “외계+인” 다음으로 “한산:용의 출현”이 출격합니다. “한산”의 김한민 감독은 “명량”(2014)으로 1,760만 명의 관객을 동원해 역대 최고의 흥행 기록을 갖고 있습니다. “한산”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순신 장군의 한산대첩을 다룬 “명량”의 프리퀄입니다. 배우들은 모두 바뀌었습니다. 왠지 사자후가 연상되는 최민식 씨가 맡았던 이순신 장군 역은 마.침.내. 상대적으로 차분하고 이지적인 이미지의 박해일 씨로 넘어갔습니다. 박해일 씨는 기자간담회 등에서 실제 자신의 캐릭터와 “한산”이 보여줄 '선비적인 이순신 장군'이 겹치는 부분이 있어 배역을 맡을 수 있겠다는 판단이 들었다고 말했습니다. 새롭게 해석된 이순신 장군에 관객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한데, 개인적으로는 클리셰로 해석된 이순신 장군보다는 박해일이 연기한 절제된 이순신 장군이 더 마음에 들었습니다. 조진웅이 연기했던 일본 장수 와키자카 역은 젊은 배우 변요한이 맡아 역시 새로운 모습을 보여줍니다. “한산” 역시 “외계+인”처럼 대규모 해전을 구현할 CG가 관건 중 하나입니다. 김한민 감독은 “‘한산’에서 배가 나오는 해전 장면은 물에서 찍은 컷이 단 한 컷도 없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물에서 해전을 찍게 되면 상황을 100% 통제할 수 없어 제약이 많습니다. 전작인 “명랑”은 물에서 찍은 장면과 CG를 합쳤지만 이번에는 모든 장면을 그린 스크린을 두르고 강릉 스피드스케이트장에 설치된 세트에서 찍었습니다. “명량”이후 8년의 세월이 흐른만큼 눈높이가 달라진 관객들에게 “한산”의 시각효과가 얼마나 설득력을 보여줄지 궁금합니다.
“한산” 개봉 다음 주인 8월 첫 주에는 ‘이보다 화려할 수 없다’고 할 만한 캐스팅의 항공재난영화 “비상선언”이 스크린에 걸립니다. 세계 최고 권위의 칸 영화제에서 남녀주연상을 받은 송강호(75회, 2022, “브로커”)와 전도연(60회, 2007, ”밀양”) 씨가 함께 나오고, 지난해 칸 영화제에서 한국 배우 최초로 시상자로 나섰던 이병헌 씨도 탑승했습니다. 여기에 김남길, 임시완 등 젊은 인기 배우들도 함께 나옵니다. “비상선언”의 ‘비상한 캐스팅’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재림 감독은 “마치 영화 몇 편을 동시에 찍는 것 같았다”며 자신도 믿기지 않는 캐스팅이라고 말했습니다. “비상선언”은 이미 지난해 74회 칸 영화제 비경쟁부문에서 상영된 바 있지만 코로나로 개봉일을 잡지 못하다가 결국 올해 여름시장에 착륙을 결정했습니다. “관상”으로 931만 명의 관객을 동원해 천만 감독 직전까지 갔던 한재림 감독의 신작으로 제작보고회에서는 전도연 씨가 “관객 2,000만은 들지 않을까요?”라고 농담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 영화에 이렇게 많은 스타 배우들이 관심을 가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배우마다 다양한 이유가 있겠지만, 저는 이 영화가 한국에서는 처음 제작되는 본격 항공재난영화인 것도 이유 중 하나이지 않을까 짐작합니다. 항공재난 영화인만큼 여객기가 하늘에서 요동치는 장면을 찍을 기술적 역량이 있어야 하고 여객기 동체 세트 등 미술의 완성도도 높아야겠지요. 제작사는 미국에서 보잉 777기의 동체를 공수해왔고, 여객기를 흔드는 특수효과는 국내 최고의 특수효과업체인 데몰리션이 맡았습니다. “비상선언”의 특수효과를 담당한 데몰리션의 류영재 실장은 “배우과 스태프 100여 명이 탄 비행기 동체 세트를 흔들고 비트는 규모의 촬영은 지금까지 세계 어디에서 없었던 것으로 안다. 대형 3축 짐벌과 6축 짐벌을 이용해 비행기가 심하게 요동치는 장면을 찍었고, 특히 동체가 360도 회전하는 장면에서는 지름 7m, 길이 12m의 회전 짐벌을 썼다”고 말했습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실화를 바탕으로 연출하고 톰 행크스가 주연한 항공재난영화 “설리:허드슨 강의 기적”(2016)을 보더라도 비행기 재난 특수효과 장면은 그리 많지 않은데, “비상선언”에서는 어느 정도 분량과 완성도의 항공재난 장면이 등장할지 주목됩니다. 참고로 데몰리션은 이번 여름 시장 빅4 영화의 특수효과에 모두 참여했습니다.
빅4 중에 마지막으로 개봉하는 영화는 이정재, 정우성 주연의 첩보액션드라마 “헌트”입니다. 이정재 씨와 정우성 씨가 “태양은 없다” 이후 23년 만에 함께 출연합니다. “태양은 없다”는 여러 스트리밍 서비스에서 볼 수 있으니 청춘에서 중년에 접어든 이들의 외모뿐 아니라 연기는 또 어떻게 달라졌을까 살펴보는 재미도 있을 것 같습니다. 특히 “헌트”는 이정재 씨의 감독 데뷔작입니다. “오징어게임” 이후 첫 영화이기도 하고요. 사실 장르적으로만 본다면 SF인 “외계+인”이나 항공재난영화인 “비상선언”에 비해 새로운 점은 별로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산”은 사극이라기 보다는 사실상 ‘이순신’ 장르 영화지요) 하지만 역으로 “헌트”는 어느 시장에 내놔도 무난한, 그래서 여름 시장에도 딱히 위험부담이 덜한 전통적 장르 영화라는 점이 관객들로 하여금 선택의 부담을 줄여 준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게다가 이정재와 정우성이라는 배우 이름이 가져다주는 안정감 또한 작지 않지요. 익숙함과 낯섦 사이에서 이 영화가 얼마나 줄타기를 잘 했느냐가 흥행의 관건일 것으로 보입니다. “헌트”도 “비상선언”처럼 칸에서 월드 프리미어를 했습니다. 지난 5월, 75회 칸 영화제 비경쟁부문인 미드나잇 스크리닝 부문에서 상영된 영화입니다.
이상 네 편의 영화 모두가 적게도 제작비 200억여 원, 많게는 300억여 원 이상 들었습니다. 최소 6~700만 명 이상은 들어야 손익분기점을 바라볼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라인업만 보면 그 어느 영화가 천만영화가 된들 이상하지 않은 라인업입니다. 감독만 봐도 (쌍)천만감독이 2명(최동훈, 김한민, 900만의 한재림 감독까지 하면 3명), 천만배우(송강호, 이병헌, 이정재)가 3명이 출전하는 흥행대전입니다. 영화도 영화지만 이 대결 자체가 볼거리이기도 합니다.
또 투자배급사들의 흥행감(感)과 마케팅력 역시 관심거리입니다. “외계+인”은 CJENM이, “한산”은 롯데엔터테인먼트, “비상선언”은 쇼박스, “헌트”는 메가박스중앙플러스M이 각각 투자배급했습니다. 여름 시장 전 “마녀2”를 배급한 NEW를 빼면 국내 5대 메이저 배급사중 4개사가 각축을 벌이는 겁니다. 이에 따라 각 배급사들은 기존 미디어와 뉴미디어 공간에서 영화와 관련해서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채널을 동원해 총력 홍보전을 펼치고 있습니다. 최근 TV를 켜고, 라디오를 틀고, 유튜브를 보면 항상 이 영화들의 주연배우들이 나오고 있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하지만 관객의 평가는 냉정하고 흥행은 아무도 모릅니다. 흥행은 만듦새만으로 결정되는 건 아니죠. 빅스타라고는 하기 어려운 감우성, 정진영이 주연하고, 역시 당시에 큰 이름을 얻지 못하고 있던 이준익 감독이 제작비 60억여 원을 들여 연출한 “왕의 남자”(2005)가 천만영화가 되리라고는 당시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왕의 남자”는 멀티플렉스 시대에 5백 개 미만 스크린에서 개봉하고도 천만영화에 오른 유일한 영화입니다. 마케팅 물량 공세와 스타 파워없이 입소문을 타고 언론 보도가 이어지면서 성공한 겁니다. 천만영화는 작품성은 기본이고, 개봉 당시의 시의성과 사회 분위기 등에 큰 영향을 받습니다. 또 개봉 즈음에 함께 상영하는 영화들로부터도 영향을 받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범죄도시2”가 천만관객을 휩쓸고 간 상황과 강력한 경쟁작이 4편이나 된다는 점은 이번 여름 시장 영화들에 결코 유리한 환경은 아닌 것 같습니다. 코로나가 재유행한다는 점도 위험 요인입니다. 하지만 이런 시국의 정서와 감수성을 건드려주는 영화가 있다면 또 모르죠. 흥행은 움직이는 것이고 영화는 대중예술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