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에 손수건을 달고 난생처음 입학식이란 걸 치르고 3년간 다녔던 나의 첫 초등학교 건물이, 어느 순간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걸 보았을 때 가슴 한켠이 무너졌다. 돌이켜보건대 이런 심정이었던 것 같다. “나는요, 완전히 붕괴됐어요.”
풍운의 뜻을 안고 대학교 입학식을 치렀던 해에는 여행스케치가 ‘별이 진다네’라는 노래를 발표했다.
어제는 별이 졌다네. 나의 가슴이 무너졌네.
별은 그저 별일 뿐이야, 모두들 내게 말하지만
별은 그저 별일 뿐이고 건축물은 그저 건축물일 뿐이다.
코고나다 감독이 “파친코”로 유명해지기 한참 전이다. 그의 장편 데뷔작인 “콜럼버스”를 보러 갔었다. 크레딧이 뜨는 것을 보며 어느 나라 사람인지 이름 참 특이하네, 라고 생각했다. 코고나다는 어렸을 때 이민 간 한국계 미국인이다. 콜럼버스는 미국 인디애나주의 작은 도시인데, ‘모더니즘 건축의 메카’로 불릴 정도로 유명한 근현대 건축물이 많다.
“나는 건축을 몰라요. 익.숙.한.것.에.는. 의미를 두지 않게 돼요.”
유명한 한국인 건축학자를 아버지로 둔 ‘진’은 ‘케이시’에게 위악적으로 말하지만, 실상은 다른 것 같다. 진은 아버지가 갑자기 쓰러지는 바람에 한국에서 부랴부랴 미국의 소도시 콜럼버스까지 오게 됐다. 마약중독에서 재활 중인 어머니를 둔 케이시는 콜럼버스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도서관에서 임시직 사서로 일하며 어머니를 돌본다.
건축밖에 모르는 아버지로부터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아들 진과 어린 나이부터 홀로 엄마를 챙겨야 했던 건축에 관심 많은 딸 케이시는 이 도시에서 우연히 만나 늘. 거.기. 존.재.했.던. 건축물을 매개로 하나둘 속내를 터놓기 시작한다. 이 영화에서 가장 빛나는 장면은 두 사람이 에로 사리넨이란 유명 건축가의 건축물인 ‘어윈 유니온 뱅크’ 앞에서 나누는 대화다.
- “이 건물은 미국 최초의 근대 은행 중 하나예요. 당시에는 통유리로 된 건물이 많지 않아 파격적이었죠. 당시 일반적인 은행들은 위압적이고 요새 같았어요. 하지만 이 건물은 1층 높이로 지어져서 계단을 오를 필요도 없고 친숙해요.”
- “가이드 노릇 그만해요. 이 건물이 좋다고 했죠?”
- “예, 제가 좋아하는 건축 중 하나예요”
- “왜요?”
- “그냥 마음에 끌려요”
-“바로 그거예요. 어떤 점에 마음이 끌려요? 건축이 어떻게 당신의 마음을 움직였나 궁금해요”
이 순간 은행 건물을 배경으로 롱샷으로 두 사람을 잡던 카메라는 은행 안에서 밖을 보는 시점 샷으로 바뀌면서 통창 너머 소녀의 얼굴을 잡는다. 잠시 머뭇거리던 소녀가 뭐라고 말을 시작하지만 소리는 소거된다. 하지만 소녀의 표정만으로도 우리는 알 수가 있다. 그녀가 이 건축물을 사랑한다는 것을. 아직 어린 그녀의 인생이 쉽지 않다는 것을.
한국계 미국인 배우 존조가 연기하는 진 역시 상처받은 인생이다. 그는 아버지가 의식 없이 누워있는 병실에도 잘 가보지 않고 케이시와 함께 콜럼버스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닌다. 역시 에로 사리넨이 설계한 콜럼버스시의 랜드마크인 노스 크리스쳔 교회 안에서 두 사람은 서로의 인생과 마음을 탐색한다. (로맨스 영화 아니다. 하지만 약간은 그럴지도)
- “아버지는 최근에 사리넨의 교회에 대해서 쓰고 있었다더군요.”
- “아버지의 종교는 뭐예요?”
- “아버지의 종교는… 모더니즘. 영혼이 깃든 모더니즘…”
미국 세인트루이스의 유명한 ‘게이트웨이 아치’를 유작으로 남긴 에로 사리넨은 모더니스트이자 '미시안(Miesian)'이라고 할 수 있다. ‘미시안’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 르 코르뷔지에와 함께 20세기를 대표하는 3대 건축가 중 한 명인 미스 반 데 로에(Mies van der Rohe)의 모더니즘 건축을 지향하는 건축가들을 일컫는 말이다. ‘신은 디테일에 있다’는 격언이 바로 미스 반 데 로에의 명언이다.
한국에도 정통 미시안이 있다. 건축가 김종성(1935~). 서울 공대를 다니다 1956년 미국으로 유학 가서 일리노이 공대 건축과에서 미스 반 데 로에를 사사했다. 졸업 후에는 미스의 사무실에서 10년 넘게 함께 일하고 일리노이 공대 건축학과장(서리)직도 물려받았으니 진정한 미스의 계승자라고 아니 할 수 없다.
김종성은 한국에서도 육군사관학교도서관(1982) 서울올림픽 역도경기장(1986), 서울역사박물관(1997), SK 서린동 사옥(1999) 등을 설계했는데, 귀국 이후 첫 작품이자 대표작은 서울 남산 자락의 힐튼호텔(1983)이다. 힐튼호텔은 조선호텔이나 롯데호텔처럼 일본인이 설계한 5성급 호텔과 달리 한국인이 설계한 첫 번째 서울 도심의 5성급 호텔이다.
김종성은 힐튼을 설계하며 미스 반 데 로에로부터 배운 모더니즘 건축을 마음껏 펼쳐 보였다.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알루미늄 커튼월 방식으로 외관을 축조했고, 호텔 로비에 해당하는 아트리움은 그때나 지금이나 보기 힘든 스케일과 최고급 자재로 독창성을 뽐냈다. 바닥에는 로마가 많이 사용하던 트래버틴 대리석을 깔고, 벽면은 알프스에서 채석한 녹색 대리석과 미국 켄터키산 오크로 마감했다. 미스의 사무실에서 일했던 김종성의 네트워크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한 자재 수급이었다. 무엇보다 남산 자락에 위치해 경사진 땅이라는 약점을 탁 트이고 깊이 있는 공간이라는 장점으로 바꿔 놓은 아트리움 설계는 무릎을 치게 만든다. 여러 가지 측면에서 동시대 세계 건축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한국 현대 건축의 아이콘 중 하나라는 게 건축계의 평가다. 대중들에게는 대우 김우중 회장의 집무실이 있었던 호텔, IMF의 구제금융안 서명이 이뤄졌던 치욕의 장소, 연말이면 대형 크리스마스 트리로 유명한 호텔 등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 힐튼 호텔이 연말이면 영업을 종료하고 재건축에 들어간다. 올해 초 1조 원이 넘는 돈으로 호텔을 매입한 이지스자산운용과 현대건설은 힐튼호텔을 허물고 그 자리를 호텔, 상업시설, 오피스 빌딩 등이 들어서는 복합단지로 개발할 것이라고 한다.
옛말에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고 했다. 언제나 그 자리에 있던 것들이, 아니 당연히 거기 있어야 하는 것들이 갑자기 사라지면 뭐라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된다. 실제로 사람은 자기가 어렸을 때 살던 곳이 재개발로 형해화되면 신체 일부를 잃은 것 같은 상실감을 느낀다고 한다. 미스의 걸작인 뉴욕의 시그램빌딩(1958)이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은 뉴욕의 랜드마크 보호법 덕분인데, 랜드마크 보호법은 뉴욕의 기차역이었던 펜 스테이션이 1965년 갑자기 철거되자 뉴욕 시민들이 상당한 상실감을 호소하면서 추진됐다고 한다
지금 김종성, 김중업, 김수근을 비롯한 1세대 근현대 건축가들의 유산이 4,50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보존이냐 철거냐의 기로에 서고 있다. 건축물의 보존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건축물은 그 자체의 건축적 가치도 있겠지만, 그 지역과 도시의 시각적, 공간적, 역사적, 경제적, 라이프스타일적 맥락 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또한 고정불변의 것이라기보다는 시대의 변화에 따라 바뀌는 것이고, 건축 문화에 대한 그 사회의 인식 수준을 반영하면서 현재 그 사회가 어디에 가치를 두느냐에 따라 판단의 기준은 달라질 것이다. 또한 건축(물)이란 것은 부동산적 가치를 떠나 시민들의 마음속에도 정서적 형태로 존재한다. 아무런 건축적 가치가 없는 동네 구멍가게 하나가 사라져도 마음이 허전하다. 하지만 제아무리 유서 깊은 건축물이라도 ‘오래된 미래’로서 가치를 증명하고 인정받으면 살아남지만 그렇지 못하면 사라질 운명에 처하기도 한다.
힐튼호텔의 운명이 다하더라도 이런 급의 건축물이 “힐튼호텔이 없어졌다구?”라고 어느 날 갑자기 사람들이 놀라서 묻는 풍경이 나올 만큼, 그냥 별일 없었다는 듯이 조용히 사라져서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우리에게 또 ‘보존이냐 철거냐’같은 똑같은 고민이 닥쳐올 때 조금은 진전된 곳에서 사회적, 제도적 논의를 시작할 수 있다. 건축계, 시민사회, 인허가권을 가진 행정기관, 소유주 모두에게 해당하는 얘기다.
존조의 차분하고 이지적인 연기와 헤일리 루 리차드슨의 풋풋하면서도 잔잔한 연기가 고요하게 마음속에 파동을 일으킨다. 콜럼버스시의 모더니즘 건축처럼 절제되고 정제되고 투명한 영화다. 영화를 보고 있으면 인디애나의 작은 도시 콜럼버스가 걷고 싶어진다. 일상 속에 늘 존재하는 건축물을 통해 위안을 얻고 마음을 나누는 두 남녀의 이야기. 레스 이즈 모어(Less is More). 일견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