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 맞추러 간 날

고목껍질 같은 아빠의 손

by Sinamongaroo

온 세상이 희뿌옇게 번져 보였다. 내 시력에 문제가 있다는 걸 초등학교 6학년 수업시간에 선생님께서 칠판에 적은 글씨가 안 보여 친구의 노트를 빌려 베껴 써야 했을 때 알게 되었다. 그전에는 모든 사람들이 나처럼 이렇게 뿌옇고 흐릿하게 세상을 보고 살아간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내 시력에 문제가 있다는 걸 부모님께 이야기해 본 적이 없다. 불편한 걸 불편하지 않게 생각했다. 불편한 게 나만의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며 지냈던 것 같다.

그래서 한참 뒤 중학교 1학년때 처음으로 부모님께 칠판의 글씨가 잘 안 보인다는 이야기를 했다. 엄마는 가게 일로 바쁘셔서 아빠와 함께 읍내 시장에 있는 안경원에 가야 한다고 했다. 아빠와 함께 한다는 게 너무 어색하고 불편했다. 그래도 지금 내가 의지해서 안경원에 가야 하는 어른이 아빠뿐이라는 생각에 어쩔 수 없이 아빠 차에 몸을 실은 채 가야 한다는 생각에 눈을 질끈 감고 갔다. 가는 동안 차 안은 침묵이 흘렀다. 어떤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어떤 말을 아빠에게 해야 할지 몰랐다. 아빠도 가는 내내 창가로 스쳐 지나가는 바깥 풍경을 보며 운전만 하고 가셨다.

그러다 내가 처음 꺼낸 말이 ‘아빠, 감사해요. 이렇게 제 시력이 안 좋은 줄 몰랐어요.‘ 였던 것 같다. 그렇게 침묵에 물꼬가 터져 그 뒤로 아빠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던 기억이 난다. 한 40여분을 달려 읍내 안경원에 도착했다. 아빠와 함께 있는 것도 어색한데, 내가 원하는 안경테를 고르는 일도 곤욕스러웠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골라보는 경험이 많지 않았고,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것을 시원하게 말하는 것도 어려워하는 아이였다. 주어진 대로 나는 받아들였다. 누가 그렇게 하라고 한 것도 아닌데, 나는 늘 내가 원하는 것을 말하면 나쁜 아이가 된다는 생각이 나의 어린 시절 머릿속에 가득 찼던 것 같다.

심지어 그 당시에 사춘기를 겪었는지 나는 늘 내가 너무 못생겼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어떤 안경테를 골라서 착용해 봐도 다 별로라는 생각이 컸다. 안경테 하나를 골라 착용한 뒤 거울을 보면 내 얼굴을 내가 보는 게 너무 어색하고 잠시라도 보고 있는 게 힘들 정도였다. 내가 쭈뼛쭈뼛 대며 안경 전시장을 들여다보고 있으니 안경원 주인분이 나에게 어울릴 만한 작은 원형의 은색 안경테 하나를 추천해 주셨다. 물론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도 괜찮다고 이걸로 하겠다고 아빠에게 말했다. 지금의 이 상황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어 마음에도 없는 대답을 했다. 안경테를 고르고 시력도 다시 측정하고 나니 안경테에 안경알을 끼워 넣는데 꽤 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대략 40분 정도 걸린다고 했다. 아빠는 그럼 시장 구경 좀 하다가 오면 된다며 안경점 밖으로 나를 데리고 나왔다.

안경원을 나와서는 나는 땅만 응시한 채 우두커니 서 있었다. 막상 나오니 아빠랑 단 둘이 서 있는 게 너무 어색해서 어디에 시선을 둬야 할지 몰라 신발로 땅만 툭툭치고 있었다. 그러다 아빠가 나의 손을 잡고 시장 쪽으로 향했다. 아빠의 손을 처음 잡아보는 것 같았다. 내 기억 속의 아빠는 항상 바깥에 볼일을 보러 가거나 친구들과 놀러 가기 바빠 나와 함께 보냈던 시간이 없었던 분이다. 하물며 아빠랑 손을 제대로 잡아본 기억이 없다. 그래서 그날의 장면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아빠는 내 손을 잡고 시장을 가는 동안 이런 말을 했다.

‘딸 손을 처음 잡아보는 것 같네.’ 그러면서 멋쩍은 지 잡고 있는 손을 앞뒤로 흔드셨다. 나도 어색해서 어깨가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순간 각목이 되었다. 손에 땀이 흥건하게 나기 시작했다. 아빠는 시장에 진열된 여러 가지 음식과 물건을 보며 즐거워하셨다. 그러다 메밀전 한 팩, 김치만두, 순대 등 집에 가져가서 나눠 먹을 주전부리를 한 아름 사셨다. 그러는 동안 내 손을 놓지 않으셨다. 그러다 아빠의 반대 방향의 손에 한아름 들려있는 검은 봉지들을 조금 나눠 들기 위해 잡고 있던 손을 놓았다. 그리고 더 많은 시간을 시장 안에서 보냈다. 안경이 완성될 시간에 맞춰 안경원으로 가서 새 안경을 받아 들고 집으로 갔다. 오묘한 하루를 보낸 것 같았다. 새 안경과 아빠와 처음으로 손 잡은 날. 모든 것이 새로워 어색했다.

집으로 돌아가는 차 안의 공기가 사뭇 달라졌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조금은 포근하고 온기가 더 느껴지는 듯했다. 지나가는 창 밖의 풍경을 보며 나는 아빠의 손 촉감을 다시 떠올려보았다. 아빠 손이 이렇게 두껍고 거칠었는지 싶어 마음이 좋지 않았다. 핸들을 잡고 있는 아빠의 손이 안쓰러웠다.

나는 아빠와 언제 또 손을 잡을 일이 있을까라는 생각을 하며 창 밖에 지는 석양을 보며 한참을 말없이 갔다. 그리고 내가 결혼식장에 들어가던 날 아빠의 손을 잡고 입장하게 되었다. 아빠의 손은 20여 년 전에 잡았던 더 거칠고 고목껍질처럼 더 단단해져 있었다. 입장하는 동안 많은 생각을 했다. 나는 조금 더 안경점에 같이 갔던 아빠의 나이가 되었고, 아빠는 조금 더 그 시간보다 멀어져 더 단단한 손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울컥했다. 간혹 안경점에 새 안경을 맞추러 가는 날이면 그날의 장면이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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