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막내가 중학생이 된 지도 벌써 2학기가 시작되었네요. 세 아이를 키우며 정신없이 앞만 보고 달려왔던 날들. 그 거친 숨이 잦아들 무렵, 예고 없이 주말의 여유가 제게 찾아왔어요. 조용하고, 느리고, 오롯한 시간. 어쩌면 오래전부터 간절히 꿈꿔왔던 순간이었죠.
그런데 막상 이 평온을 온전히 누리려 하면, 마음 한편이 자꾸만 소란스럽습니다.
"그래도 밥은 챙겨줘야지." "혼자 두면 안 되잖아." "같이 있어줘야 하는 거 아닐까…"
이미 훌쩍 자라 청소년이 된 아이인데도,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맴돌아요. 그러면서도 또 다른 제가 속삭입니다.
"이제 괜찮아. 애들 다 컸잖아." "나도 좀 쉬어야지." "밥도 알아서 챙겨 먹으라고 해!"
아이들을 위해 애써온 시간이 헛되지 않으려면, 이제는 나 자신을 돌봐야 한다는 걸 알아요. 그런데 말이죠… 마음은, 생각보다 그렇게 쉽게 따라주질 않네요.
나는 왜 이럴까요? 아이들이 나 없이도 잘 지낼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어쩌면
'나 없이도 괜찮은 아이들의 모습'이 싫은 건 아닐까? 그게 조금 서운한 건 아닐까?
오랜 시간 '엄마'라는 이름으로 아이들 곁에 머물렀습니다. 밥을 짓고, 학교 갈 준비를 챙기고, 보이지 않는 감정의 기류를 읽고, 모든 것을 미리 헤아리며 살아왔죠. 그 삶이 당연했고, 때로는 저만의 보람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자리를 조금씩 비워내야 할 때가 온 것 같아요. 그 변화가 낯설고, 허전하고, 때로는 깊은 외로움으로 다가옵니다.
이 마음이 집착일까요? 아니요, 저는 이제야 천천히 '이별'을 연습하는 중인 것 같습니다.
아이에게서 한 걸음 물러나, 내 자리로 돌아오는 법을 배우는 시기. 내가 꼭 필요하지 않아도 괜찮은 세상을 받아들여야 하는 시간.
이것은 사랑이 끝났다는 의미가 아니라, 사랑이 또 다른 아름다운 모양으로 변해가는 과정이라고 믿고 싶어요.
요즘 저는 조심스럽게 '나의 시간'을 새롭게 시도하고 있습니다. 홀로 카페에 앉아보기도 하고, 고요함 속에서 책을 펼치거나, 방해받지 않고 나만의 생각을 정리하는 시간들이죠.
처음에는 자꾸 핸드폰을 확인하고, 아이들의 안부를 물어야 할 것만 같고, 괜히 막내가 뭐하고 있을지 궁금증이 피어오릅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스스로에게 속삭여요.
"괜찮아. 아이들도 너 없이 잘 지낼 수 있어." "그리고 너도, 너 없이 살던 시절을 이제 끝내도 돼."
아이들이 자라는 만큼 저도 함께 자라고 있습니다. 아니, 이제는 '다시' 자라려고 합니다. 한 사람의 엄마가 아닌, 그저 '한 사람'으로서의 나로 돌아가는 길을 말이죠.
늦었다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지금이 가장 적절한 시작일지도 모르겠어요.
"이제 너를 좀 돌봐도 괜찮아." "조금 이기적이어도 괜찮아." "그것은 외면이 아니라, 온전한 회복이야."
아이들과의 거리를 조금씩 조율해나가는 이 섬세한 시기. 그 과정이 조심스럽지만, 저는 저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걷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