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날 같은 두 메시지: 어린 나는 그곳에서 죽어갔다
엄마의 이중적인 메시지는 어린 나를 매일같이 깊은 혼란 속으로 밀어 넣었다. 그 말들은 아이를 죽이기도, 또 어떤 날은 아주 짧게 살리기도 하는 날카로운 칼날과도 같았다.
"널 낳지 말았어야 했다"는 차갑고 시린 말과 "널 안 낳았음 어쩔 뻔했니, 네가 있어 다행이다"라는 순간의 따뜻한 말. 이 상반된 메시지 속에서 어린 나는 존재 자체를 부인당하는 것 같으면서도, 동시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는 모순된 믿음 사이를 오갔다. 그 줄타기 위에서 나는 매일 위태로웠다.
"네가 아들이면 좋았을 것"이라는 끝없는 기대와 "이젠 딸이 효도한다더라"는 애써 꾸며낸 위안. 아들로 태어나지 못한 죄책감과,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더 노력해야 한다는 강박이 내 안에 깊이 뿌리내렸다. 존재의 부족함을 메우기 위해 나는 늘 최선을 다해야만 했다.
그리고 "너까지 그러면 죽는다"는 잔혹한 협박과 "네가 있어 엄마가 산다"는 절박한 안도. 결국 어린 아이의 귀에는 "나 때문에 산다"는 엄마의 고백이, "나 때문에 힘들다"는 묵직한 절규로 들렸다. 내가 곧 엄마의 삶의 이유이자 동시에 버거운 짐이 되는 순간이었다. 감당할 수 없는 무게였다.
이처럼 존재를 부인당하고 이해할 수 없는 메시지에 혼란스러워했던 어린 아이는, 평생을 어둠 속에 갇혀 슬픔을 갉아먹으며 살아가야 했다. 나의 세계는 점점 작아지고 움츠러들었다.
세상의 긍정적인 모든 단어들... 기쁨, 희망, 사랑, 즐거움, 내 것일 수 없는 낯선 타인의 언어가 되어버렸다. 나에게 주어진 것은 오직 세상의 부정적인 모든 단어들... 슬픔, 절망, 외로움, 고통이었다. 그 단어들은 내 안 깊숙이 뿌리내려, 나의 정체성이자 삶의 방식이 되었다.
어려움 앞에 맞서 '극복'이라는 단어보다 '포기'가 먼저 떠오르고, 삶의 의지마저 희미해졌다. 살아 있는 것이 고통스러워, 삶보다 '죽음'이 더 친밀하게 느껴지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렇기에 이겨낼 의지도, 힘도 없는 아이는 그저 그렇게 오랜 시간 죽어갔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듯 살아가지만, 사실 나는 살아 있으되 죽은 자와 다를 바 없는 삶을 살아냈다.
머리와 배움을 통해 그것이 '거짓'임을 알게 될 때도 있었다. 하지만 무의식 깊숙한 어둠 속에 웅크린 나는 끊임없이 "아니, 그게 진실이야"라고 외쳤다. 그 내면의 목소리는 너무나 강렬해서, 쉬이 이겨낼 수 없었다.
기쁨, 즐거움, 행복이라는 감정은 마치 나와는 상관없는, 다른 세계의 언어이자 감정처럼 느껴졌다. 오직 슬픔, 절망, 외로움만이 내가 아는 세상의 전부였다.
나의 세계에서 기쁨은 오히려 더 큰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그 달콤하고 찰나의 기쁨이, 결국 나를 더 깊은 슬픔과 나락으로 밀어 넣을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 때문이었다. 행복은 언제나 빼앗길 준비가 된 불안한 존재였고, 나는 그 불안을 견딜 용기가 없었다. 그래서 스스로 행복으로부터 멀어지는 길을 택하곤 했다. 그것이 내가 아픔으로부터 나를 지키는 유일한 방식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어둠 속에서도 한 줄기 빛을 찾으려 애쓰고 있다. 그 오랜 시간이 내 안에서 무엇을 갉아먹었는지 직면하고, 다시 나의 온전한 빛을 찾아 헤쳐나가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