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년같았던 나의 이십대

가장 아팠고, 가장 빛났던 나의 20대

by Story Forest

“남들 4~50대에 겪을 일들을 나는 20대에 몽땅 다 겪는구나. 내 스물은 꼭 백 년을 사는 것 같아.

내 인생 왜 이러지 정말… 내 청춘을 돌려줘!”

스물 중반을 지나 후반으로 향하던 무렵, 아마 제가 가장 많이 되뇌었던 말이었을 겁니다.
그때부터 저는 ‘산전수전 공중전 다 겪었다’는 말 앞에서도 기죽지 않고 명함을 내밀 수 있을 것만 같았죠.

이 짧은 글에 그 모든 사연을 다 담을 수는 없겠지만, 분명 그 시절 차곡차곡 쌓인 경험들은 퇴적층처럼 제 인생의 무게와 깊이, 넓이를 키워 지금의 저를 만들었을 거예요.

번개와 폭풍이 쉼 없이 몰아치던 저의 20대는 과연 어떤 시간이었을까요.
이제 그 이야기를 조금 풀어보려 합니다.


갓 스물을 넘겨, 졸업도 하기 전에 남들보다 조금 이른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겉으로 보기엔 잘 굴러가는 삶 같았지만 마음은 늘 불안하고 공허했어요.

하루라도 술기운을 빌리지 않으면 잠들 수 없을 만큼 깊은 우울증에 시달렸고, 삶은 무료하고 의미 없이 느껴졌습니다. 그저 시간이 빨리 흘러가기만을 바라며 이 남자, 저 남자 스쳐 가는 인연들 속에서 잠깐의 재미를 붙잡아 보려 애썼죠. 그러다 우연히 한 남자를 만나게 됩니다.

늘 그렇듯, 잠시 스쳐 지나갈 인연이라 생각했는데 그는 고장 난 제 심장의 문을 조심스레 열며 ‘하나님’이라는 존재를 제게 소개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저는 한 번도 제대로 채워본 적 없던 ‘사랑’이라는 결핍을 조금씩, 아주 조심스럽게 채워가기 시작했습니다.


[선교, 그리고 너무 이른 결혼...]

신앙생활에 깊이 빠져 지내던 어느 날, 선교사적 소명에 대한 확신이 들었습니다.
스물셋, 지금 생각하면 참 어린 나이였지요.

그런데 그 무렵, 제 인생에 또 하나의 ‘두둥!’ 하는 사건이 찾아옵니다.
바로 결혼이었습니다. 한 번도 진지하게 상상해 본 적 없던 결혼.

왜 저는 그 무모한 결정을 했을까요. 지금 돌아보면 무언가에 홀린 듯 모든 일이 너무 빠르게 흘러갔던 것 같습니다. 당시 스물셋과 스물여섯이었던 우리는 둘 다 선교 소명을 품고 2년 단기 선교를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대학부 목사님께서 연인이 함께 선교지에 가는 것은 어렵다며, 같은 곳을 원한다면 결혼을 하고 가라고 권유하셨죠.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남편은 결혼을 설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연애 중에도 몇 번이나 결혼 이야기를 꺼냈지만 저는 늘 대수롭지 않게 넘겼거든요.
너무 어렸고, 경제적인 능력도 없었으니까요. 하지만 결국 저는 그 설득에 넘어가 버렸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지조 없는 선택이었죠. 혼자 선교지로 떠날 용기조차 내지 못했던 어린 저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그때 저는 집안의 막내였습니다. 여섯 살 많은 오빠와, 두 살 많은 언니. 우리 집에도 분명 날벼락 같은 이야기였을 텐데 왜 아무도 저를 붙잡지 않았을까요. 그 질문은 아직도 마음 한켠에 남아 있습니다.


[스물셋, 엄마가 되어버린 그녀...]

결혼 후 6개월 남짓한 짧은 신혼생활을 정리하고 2002년 12월, 우리는 선교지로 떠났습니다.

그리고 이듬해, 첫째 아이가 갑작스레 찾아왔습니다. 2년 동안은 오롯이 선교에 헌신하겠다고 다짐했기에

임신 소식은 제게 충격 그 자체였습니다. 아무 준비도, 아무 각오도 없이 저는 그렇게 엄마가 되었습니다.

지옥 같은 입덧과 임신 10개월, 낯선 타지에서의 외로움. 남태평양의 작은 섬에는 병원이 없어 만삭의 몸으로 홀로 한국에 나와 출산을 해야 했습니다.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었던 난산 이후, 우울과 분노는 다시 저를 집어삼켰습니다.
더는 내려갈 곳도 없는 지하 땅굴의 바닥에서 긴 육아의 시간을 버텨야 했습니다.

그 무렵, 남편의 외도가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그렇게 고통 속에서 조금씩 어른이 되어가고 있었습니다.
아이를 키우기엔 제 안의 상처가 너무 컸고 앞이 보이지 않는 터널을 하루하루 더듬으며 걸어야 했습니다.

혹시라도 아이를 해치게 되지는 않을지, 그 두려움 속에서 날마다 제 안의 전쟁을 치러야 했습니다.


[아이러니한 20대, 그 안에서 발견한 것들...]

돌이켜보면 저의 20대는 참 아이러니한 시간이었습니다.

고통의 한복판에서 남편을 만나고, 교회를 만나고,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선교를 통해 특별한 경험을 했고 임신과 출산을 통해 생명의 신비를 배웠습니다.

육아를 통해 다 자라지 못한 제 자신을 마주했고, 저를 살려줄 통로들을 하나씩 발견했습니다.
기도는 호흡처럼 제 삶에 스며들었습니다. 감히 말로 다 풀어낼 수 없는 수많은 사연을 품은 저의 20대는

스물아홉, 둘째 아들을 만나며 하나의 막을 내렸습니다.

그때 저는 간절히 바랐습니다. 30대만큼은 제가 미처 살지 못했던 행복한 20대를 대신 살아보게 해 달라고요.
물론, 30대 역시 만만치 않았지만요. 음하하하.


[20대의 나에게....]

만약 제가 다시 20대로 돌아간다면 이렇게 말하고 싶을지도 모릅니다.

“결혼은 하지 마. 선교지는 혼자 가. 더 많은 사람을 만나고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해.”

하지만 지금의 저는 압니다. 20대에 만난 교회와 사람들, 사랑을 알게 해준 동역자들, 인생의 쓴맛을 가르쳐 준 남편, 그리고 저를 사람답게 성장시켜 준 아이들 덕분에 지금의 제가 있다는 것을요.

그래서 저는 20대의 저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선정아, 넌 잘 해낼 수 있어. 거센 비바람과 폭풍이 몰아칠 거야. 그래도 넌 혼자가 아니야. 네가 손을 내밀면
그 손을 잡아줄 사람들이 정말 많아. 어두운 곳 말고, 밝은 곳을 바라봐. 넌 이겨낼 수 있고, 끝내 멋지게 살아낼 거야.”

그리고 지금의 나는 압니다. 그 백 년 같았던 스물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왔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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