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가 만든 생존 방식

인생 전체를 부정하던 습관에 대하여 :

by Story Forest

“인생이 왜 이 모양일까.” 이 말은 투정이 아니라, 어쩌면 가장 정직한 탄식일지도 모른다.

되는 일 하나 없다고 느껴질 만큼, 나는 요즘 연타로 몰아치는 고난의 시간을 지나고 있다.


마음은 롤러코스터를 탄 듯 요동친다. 하루에도 몇 번씩 괜찮았다가, 다시 속절없이 무너졌다가를 반복한다. 그럼에도 이 정도면 잘 버티고 있다고, 나는 나 자신에게 나지막이 말해준다. "이만하면 선방이야."


그러다 문득 깨달았다. 고난이 닥칠 때마다 나는 닥친 문제 하나가 아니라, 내 인생 전체를 통째로 부정해 왔다는 사실을...

‘내 삶 전체를 부인하는 습관이 있구나.’

어느 날, 이 생각이 선명한 문장이 되어 가슴에 박혔다. 이건 성격의 결함이 아니었다. 상처가 만들어낸 일종의 생존 방식이라는 걸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어린 시절, “나는 안전하다”, “나는 결코 버려지지 않는다”, “힘들어도 누군가는 반드시 나를 붙잡아준다”는 감각을 충분히 경험하지 못한 아이는 어른이 되어 고난을 마주할 때 길을 잃는다. 눈앞의 문제 하나를 해결하려 애쓰는 대신, 인생 전체를 부정해버리는 쪽을 택한다.

그래야만 설명이 되기 때문이다. “내 인생은 원래 이런 거야”라고 단정 지어야만, 지금의 이 지독한 고통이 견딜 수 있는 수준의 의미를 얻기 때문이다.


그동안 나는 스스로에게 수없이 물어왔다. 내 인생은 처음부터 끝까지 비극으로 정해진 것일까 하고.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 질문은 삶을 포기하고 싶어서가 아니라, 어떻게든 삶을 이해해 보려 했던 치열한 몸부림이었다는 것을.


“여유는 내게 사치일까”라는 생각도 자주 나를 괴롭혔다. 하지만 여유를 바라는 마음은 결코 욕심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으로서 생존하기 위한 최소한의 필요였다. 그 당연한 사실을 인정하기까지, 참 오랜 시간이 걸렸다.


분노가 밖으로 터져 나오지 않는 것도 낯설었다. 세상을 향해 화내고 억울해할 기운조차 남지 않은 것일까. 분노가 머물러야 할 자리에는 대신 자책과 책망, 깊은 우울과 슬픔이 불쑥불쑥 고개를 든다. 나를 보호하기 위해 세웠던 가시들이 도리어 나를 찌르고 있는 셈이다. 그 감정들을 밀어내고 다독이는 데에만 에너지를 쏟다 보면, 피로해진다.


오랜시간 나 자신과 지치도록 싸우다 보니, 역설적으로 내 안의 힘이 빠지기 시작한걸까. 무언가를 탓하거나 이유를 찾아내려는 치열한 저항 끝에 찾아온 것은, 완벽한 무력감과 함께 찾아온 기묘한 고요였다.


예전 같았으면 이 고난 앞에서 하나님을 가장 먼저 원망했을 것이다. “주님, 도대체 왜 저한테 이러세요.” “제가 무엇을 그렇게 잘못했나요.” 억지로라도 범인을 찾아내야 이 고통이 끝날 것 같았을텐데.. 이번에는 그러지 않았다. 나를 몰아세우던 자책의 끝에서, 내가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이 있음을 인정하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차분해졌다.


이유를 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주님을 향한 신뢰가 예전처럼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내 인생 전체를 부정하며 발버둥 치던 습관을 내려놓고 나니, 비로소 거센 폭풍 속에서도 묵묵히 자리를 지키고 있는 단단한 뿌리 하나가 보이기 시작했다. 그 뿌리는 내가 만든 것이 아니라, 이미 그곳에 깊이 박혀 나를 붙들고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백년같았던 나의 이십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