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는, 의미 없는 삶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
요즘 나는 자주 이런 질문 앞에 멈춰 선다.
“나는 왜 이렇게 살고 있을까.”
“왜 무엇 하나 손에 쥔 것 없이, 하고 싶은 것조차 희미할까.”
한번 시작된 생각은 멈출 줄 모른다. 머릿속에서 특정 회로가 쉴 새 없이 돌아가는 것처럼, 같은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나는 이것을 자기비난회로라고 부른다.
이 회로는 지독하리만큼 집요하다. 분주하게 하루를 보내고, 사람을 만나고, 일터에 가고, 밀린 집안일을 끝내고 나서 비로소 숨을 돌리려는 찰나, 회로는 다시 차갑게 돌아가기 시작한다.
“그래서, 너는 결국 뭐가 됐는데?”
“지금껏 네가 이룬 게 대체 뭐야?”
그 날카로운 질문 앞에 서면, 내가 지나온 시간들이 한순간에 하찮게 느껴진다. 뚜렷한 길도, 내세울 만한 재능도 없는 내가 세상에서 가장 못난 사람처럼 보여 초라해지곤 한다.
그러다보면, 문득 이런 생각이 스친다.
어쩌면 나는 ‘의미 없는 삶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 인지도 모른다고.
세상에는 흐르는 물처럼 그저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사람들이 있다. 하지만 어떤 이들은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왜 사는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나의 삶은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이 질문들은 삶을 깊게 만들지만, 동시에 영혼을 지치게도 한다.
나 또한 그렇다. 무의미한 시간을 그저 견디며 살기엔, 나는 조금 더 예민한 결을 가진 사람인가 보다. 그래서 끊임없이 고민하고, 때로는 스스로를 벼랑 끝으로 몰아세운다.
“더 가치 있게 살아야 하지 않나.”
“더 의미 있는 사람이 되어야만 하지 않나.”
하지만 이제는 생각을 조금 바꿔보려 애쓴다. 내가 못나서 이런 괴로운 질문을 던지는 게 아니라, 내 마음이 삶의 의미를 끝내 포기하지 않아서 그런 건 아닐까 하고.
어쩌면 내 안의 ‘자기비난회로’는 “너는 왜 이것뿐이니”라는 비난이 아니라, “네 삶은 반드시 의미 있어야 해”라고 외치는 나를 향한 가장 서툰 방식의 응원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오늘은 그 회로를 끊어내려 애쓰는 대신, 그저 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나는 오늘도 내 몫의 삶을 온전히 살았다.”
동시에 온전치 않아도 괜찮다. 대단한 사람이 아니어도 괜찮다. 명쾌한 답을 찾지 못했어도 괜찮다. 여전히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의 하루는 결코 헛되지 않았을 테니까...